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강행하려 하자 최루탄을 터뜨린 뒤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있는 의장석에 최루가스를 뿌리고 있다. 노컷뉴스 제공
정치권력 향한 공공의 모욕 대변
한나라당 맛본 최루탄은 직격탄·토끼몰이·구속 등 공포의 애피타이저
한나라당 맛본 최루탄은 직격탄·토끼몰이·구속 등 공포의 애피타이저
나의 기억 속에서 80년대 한국 주요 도시의 대기는 차량 배기가스가 아니라 최루탄 가스로 오염됐다. 1960년대 4·19 혁명 시기에 이미 등장했던 한국의 최루탄은 1980년대 들어 ‘더 가공할 성능’을 갖췄다. 80년 광주항쟁에 놀란 전두환 정권이 시위진압용으로 더 치명적인 최루탄을 수입했다. 최루탄의 주 성분은 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C10H5ClN2)이다. 이것의 화학식을 풀어 그 성분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 너머의 일이다.
그것은 상온에서 고체(가루)로 존재하는데, 가루 상태의 그것을 뿌려봐야 바람에 날려 목표물 조준에 효과가 없다. 그래서 용매제인 디클로로메탄에 녹인 뒤 기체(근접거리에선 액체) 형태로 방사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CS 가스라는 간단한 이름도 생겼다. CS는 1928년 이를 개발한 미국인 벤 코손(Corson)·로저 스토턴(Stoughton)의 성씨 첫 글자다. 액체건 기체건 멀리 날아갈 수 없으니 일련의 탄두에 남아 날려보내는 기술도 발전했다. 우리는 ‘최루 가스’보다 ‘최루탄’에 더 익숙하다.
CS 가스는 살상용이 확실히 아니다. 최루액·최루가스·최루가루에 노출됐다 하여 현장에서 죽지는 않는다. (곧바로 죽음에 이르진 않지만, 그 성분이 치명적 발암물질이라는 분석은 오래 전에 나와 있다. 그 즉각적 고통이 너무 강력하므로 ‘언젠가 이것 때문에 암에 걸릴지도 몰라’ 따위의 걱정을 하는 이가 드물었을 뿐이다.) 다만 그것은 인간의 오감을 마비시킨다.
[관련 영상] 근접 촬영한 김선동 의원 최루탄 투척 순간(민중의소리 제공)
■ 직격탄 맞아 이한열이, 경찰 폭력에 강경대 김귀정이 죽었다
우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떠도 아프고 눈을 감아도 아프다. ‘아프다’는 말로 그 고통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코와 목에 대바늘 수백 개를 집어 넣어 함부로 쑤셔대는 고통과 함께 폐 전체를 먹물로 채운 듯 숨을 쉴 수가 없다. 노출된 피부 전체, 즉 얼굴·목·팔·다리가 불에 데인 듯 따갑고 뜨겁다. 최루탄에 노출된 손으로 사타구니라도 만지면 종족 번식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최루탄은 사람을 완전히 무릎 꿇린다. 개가 되라면 기꺼이 개가 된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상의 설명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최루탄은 ‘하나의 최루탄’이 아니라 ‘일련의 폭력체계’로 구성된다. 우선 그것은 실제로 ‘탄환’의 구실을 했다. 경찰은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지 않고, 정면을 조준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그것을 맞으면 최루 가스와 상관없이 그 충격 때문에 죽는다. 1987년 연세대생 이한열이 그렇게 죽었다. 최루탄이 등장하면, ‘직격탄’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부터 시작된다. 설령 그것이 ‘곡사포’의 형태로 발사된다 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탄환은 중력가속도의 레일을 따라 언제든지 시위대의 정수리를 타격할 수 있다. 최루가스·최루액·최루가루에 노출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무기력이 곧 죽음은 아니다. 그러나 ‘백골단’으로 불리던 무장경찰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은빛 투구에 날렵한 청재킷을 입은 그들은 군화와 곤봉과 주먹으로 시위대를 무차별 가격했다. 태권도·유도·합기도 등으로 단련된 그들의 육체는 치명적 흉기다. 그들에게 얻어맞다가 죽을 수 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와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그렇게 죽었다. 그들의 모진 매질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체포·구금·구속의 공포가 남아 있다. 최루탄을 마시고 널브러져 시위 현장에서 잡히면 그들의 마음대로(그들은 ‘법대로’라고 주장하지만) 인신을 요리한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몇 년씩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정신, 양심, 육신에 대한 한시적 사망선고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러한 일련의 공포 체계를 종합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탄환’이 아니라 ‘거대하고 무자비하고 체계적인 폭력’이다. 과거 시위현장에 단골로 등장했던 것은 ‘지랄탄’이다. ‘페퍼포그’(Pepper Fog)로 불리는 장갑차의 정수리에서 다연발로 발사돼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지랄탄’은 먼 거리에서 시위대를 무력화시키는 경찰의 무기였다. 일단 땅에 떨어지면 반경 수십 미터를 미친x 지랄하듯 요동치며 노란 최루가스를 끝없이 게워냈다. 아스팔트 위를 쏜살같이, 그러나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튀어다니는 그것에 맞아 발목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아 전경에 되던지려다가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지랄탄이 쏟아지면 그것으로 그날의 시위는 끝장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더 공포스러워 했던 것은 ‘사과탄’이었다. 한 주먹에 잡히는 사과탄은 오직 가까운 거리에서만 사용됐다. 그들은 시위대를 ‘토끼몰이’ 방식으로 거리 구석에 몰아놓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사과탄을 툭툭 까넣었다. 땅에 엎드려 개처럼 기면서 두 손으로 머리와 목덜미를 감싸 쥐는 것이 시위대가 취할 수 있는 방어의 전부였다. 백골단은 우리의 어깨와 허리와 머리를 지근지근 군화발로 밟으며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듯 툭, 툭, 툭 끝도 없이 사과탄을 까서 아비규환의 틈바구니에 굴려 넣었다. 눈에 파편이 박히고, 고막이 터지고, 얼굴에 화상을 입는 이들이 있었으나, 심지어 죽어 나가기도 하는 시절에 그들의 희생은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 ■ 대학 시절, 사실 최루탄에, 곤봉에 맞아 죽을까봐 무서웠다 대학 시절, 나는 어떤 논쟁에 격렬히 가담한 적이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쇠파이프·화염병 등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리 싸움이 붙었다. 나는 ‘비폭력투쟁’은 말도 안 된다는 쪽이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피가 뜨겁다 못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무모했다. 집회·시위의 목적은 우리의 뜻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인데, 경찰의 폭력으로 집회·시위 자체가 원천 봉쇄되는 상황에서 ‘비폭력’을 고집하다 고스란히 잡혀 들여가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나는 떠들었다. 시민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공간을 확보하고, 시위대의 핵심역량을 공권력의 폭력에서 지켜내려면,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 필요하다고, 나는 떠벌렸다. 실은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 대의명분은 나중의 일이고, 나는 시위를 하다가 직격탄, 지랄탄, 사과탄, 그리고 곤봉과 군화에 맞아 죽을까봐 무서웠다. 그것이 개죽음인 것 같아 더욱 두려웠다. 나중에 ‘물대포’가 등장했을 때, 나는 ‘최소한의 자위 수단’에 대한 주장을 거둬들였다. 노즐을 조정해 자유자재로 직사·곡사를 넘나들고, 형광액을 묻혀 시위참가자를 색출하며, 한번 맞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무기력해지는 그 가공할 장갑차의 최루액 살포를 맞닥뜨린 뒤, 나는 우리의 무기가 사소한 자위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내려놓고, 그저 책만 읽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2011년 11월은 최루탄 역사의 대단원 또는 또 하나의 절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찰은 국내 등장 20년이 지난 CS 최루액을 “내년 중에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만약에 있을지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보관하던 것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염두에 뒀던 ‘비상사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비상사태’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했다. 경찰 발표 이튿날인 11월22일, 김 의원은 FTA 날치기 처리 현장에 최루가루를 뿌렸다. 기자 출입까지 봉쇄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태이므로 그가 사과탄을 터뜨렸는지, 그냥 최루가루를 뿌렸는지는 아직 정확치 않다. 어쨌건 그것은 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이 공개 장소에서 사용된 마지막 사건이 될 것이다. 같은 날 저녁, FTA 날치기 통과 반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다. 그 물대포에 최루액이 포함됐는지, 그것이 구래의 CS 가스인지, 덜 유해하다는 ‘켑사이신’ 성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일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최루탄은 맞아봐야 안다. 국회 날치기 현장에서 터진 사과탄 또는 최루가루에 대해 조중동은 일제히 ‘테러’라고 1면 머릿기사를 썼다. <위키백과> 한국어판은 테러에 대해 “정치·종교·사상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한테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 김선동의 행위는 폭력일지라도 테러는 아니다 국회의원은 민간인인가? 민간인은 대대손손 국민 모두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FTA를 날치기 통과시킬 권능이 없다. 미국·유럽의 정치인들은 종종 토마토·계란·오물·신발·밀가루·쓰레기 등을 끼얹는 시민들에게 곤욕을 치른다. 그것은 모욕이고 아마도 폭력이겠지만, 그렇다고 테러는 아니다. 김 의원은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날치기를 시도하는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특수 집단’을 겨냥했다. (겨냥이 정확치 않아 제 몸에 더 많은 최루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자폭 테러’인 것인가?) 그것은 분명 폭력이겠지만, 자신이 위해를 당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가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날치기 의원들은 위협을 분명히 인지하여 경호권을 발동하고 언론을 봉쇄하고 야당 의원의 단상 진입을 봉쇄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욕설과 드잡이를 포함한 ‘어떤 폭력’이 자행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게 최루탄일줄은 몰랐겠지만, 그게 토마토이건 쓰레기이건 똥물이건 예상치 못한 수단이 동원됐다 하여 폭력이 곧 테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진화는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입각해 발전해왔다. 이젠 누구도 사사로이 폭력을 행사해선 안된다. 합법적인 폭력은 오직 ‘정당 방위’와 ‘국가의 폭력’에 국한된다. 현대 문명은 이제 ‘국가의 폭력’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발전해 나갈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 때,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를 ‘정권’으로 가격한 것은 (먼저 맞았다고 주장하는 김 의원의 말처럼) 정당방위인가 그저 사사로운 폭력인가 국회 질서를 해치는 테러인가. 수많은 폭력이 난무한 예산안 날치기 통과 이후, 김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청와대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물리력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으니 김 의원의 행동이 폭력인 것은 맞지만, 그건 ‘테러’가 아니다. 테러가 현대 인류 문명 최대의 적인 이유가 있다. 테러는 분노와 적개의 대상이 아닌 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에서 9·11 사건이 일어났지만, 실제로 희생당한 것은 미국에서도 가장 리버럴한 뉴욕 시민들이었다. 테러는 나찌 인종청소의 연장선에 있는 폭력이다. 명분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죽인다.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의 품격은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해 날아갔던 어느 이라크 기자의 신발과 같다. 당시 미국 어느 언론도 그 신발이 ‘대통령 암살 시도’라고 선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폭력이었으나 정치권력을 향한 공공의 모욕을 대변하는 개인의 행위였고, 그는 그 폭력에 어울리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 이 날씨에 물대포 맞는 공포에도 시위 나오는 국민 마음 모르나 김 의원의 의도가 무엇이건, 덕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최루탄의 맛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맛본 것은 겨우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직격탄, 지랄탄, 토끼몰이, 사과탄, 구타, 체포, 구속, 전과자의 낙인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폭력체계를 모두 겪어봐야, “아, 이래서 최루탄 최루탄 하는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경까지 겪지 못하였으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그날 저녁 명동 성당 앞에서 물대포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도 FTA 반대를 외치던 3천여 명의 시위대를 끝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과탄에도 불구하고 날치기 하는 국회의원과 물대포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를 규탄하는 시민 사이에 아직 공감을 위한 경험의 공유가 부족하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최루탄 맞아봐서 아는데” 국회 의사당에 지랄탄 몇 개쯤 터져야 힘없는 이들이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광장으로 광장으로 밀려나오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분노 없는 폭력이야말로 비인간화의 전형”이라고 설파했다. 국가 권력이 폭력을 휘두를 때, 그것은 비록 합법을 가장할지언정 비인간의 편에 서있다. 권력을 향해 분노하는 이들이 불복종·항의·위력시위 등을 벌일 때, 그것은 인간의 편에 선 폭력을 향한다. 물론 아렌트는 “폭력으로 권력을 창출할 수는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국회 의사당에 사과탄을 터뜨리는 폭력으로 의회 독재를 무너뜨리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폭력은 날치기를 위한 경호권이나 명동성당 앞 물대포보다 ‘정의롭다’. 적어도 경호권과 물대포를 앞세운 이들이 까짓 사과탄에 호들갑 떨 일은 결코 아니다.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지랄탄 몇개 한달음에 흡입해 보시던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우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떠도 아프고 눈을 감아도 아프다. ‘아프다’는 말로 그 고통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코와 목에 대바늘 수백 개를 집어 넣어 함부로 쑤셔대는 고통과 함께 폐 전체를 먹물로 채운 듯 숨을 쉴 수가 없다. 노출된 피부 전체, 즉 얼굴·목·팔·다리가 불에 데인 듯 따갑고 뜨겁다. 최루탄에 노출된 손으로 사타구니라도 만지면 종족 번식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최루탄은 사람을 완전히 무릎 꿇린다. 개가 되라면 기꺼이 개가 된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상의 설명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최루탄은 ‘하나의 최루탄’이 아니라 ‘일련의 폭력체계’로 구성된다. 우선 그것은 실제로 ‘탄환’의 구실을 했다. 경찰은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지 않고, 정면을 조준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그것을 맞으면 최루 가스와 상관없이 그 충격 때문에 죽는다. 1987년 연세대생 이한열이 그렇게 죽었다. 최루탄이 등장하면, ‘직격탄’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부터 시작된다. 설령 그것이 ‘곡사포’의 형태로 발사된다 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탄환은 중력가속도의 레일을 따라 언제든지 시위대의 정수리를 타격할 수 있다. 최루가스·최루액·최루가루에 노출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무기력이 곧 죽음은 아니다. 그러나 ‘백골단’으로 불리던 무장경찰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은빛 투구에 날렵한 청재킷을 입은 그들은 군화와 곤봉과 주먹으로 시위대를 무차별 가격했다. 태권도·유도·합기도 등으로 단련된 그들의 육체는 치명적 흉기다. 그들에게 얻어맞다가 죽을 수 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와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그렇게 죽었다. 그들의 모진 매질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체포·구금·구속의 공포가 남아 있다. 최루탄을 마시고 널브러져 시위 현장에서 잡히면 그들의 마음대로(그들은 ‘법대로’라고 주장하지만) 인신을 요리한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몇 년씩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정신, 양심, 육신에 대한 한시적 사망선고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러한 일련의 공포 체계를 종합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탄환’이 아니라 ‘거대하고 무자비하고 체계적인 폭력’이다. 과거 시위현장에 단골로 등장했던 것은 ‘지랄탄’이다. ‘페퍼포그’(Pepper Fog)로 불리는 장갑차의 정수리에서 다연발로 발사돼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지랄탄’은 먼 거리에서 시위대를 무력화시키는 경찰의 무기였다. 일단 땅에 떨어지면 반경 수십 미터를 미친x 지랄하듯 요동치며 노란 최루가스를 끝없이 게워냈다. 아스팔트 위를 쏜살같이, 그러나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튀어다니는 그것에 맞아 발목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아 전경에 되던지려다가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지랄탄이 쏟아지면 그것으로 그날의 시위는 끝장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더 공포스러워 했던 것은 ‘사과탄’이었다. 한 주먹에 잡히는 사과탄은 오직 가까운 거리에서만 사용됐다. 그들은 시위대를 ‘토끼몰이’ 방식으로 거리 구석에 몰아놓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사과탄을 툭툭 까넣었다. 땅에 엎드려 개처럼 기면서 두 손으로 머리와 목덜미를 감싸 쥐는 것이 시위대가 취할 수 있는 방어의 전부였다. 백골단은 우리의 어깨와 허리와 머리를 지근지근 군화발로 밟으며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듯 툭, 툭, 툭 끝도 없이 사과탄을 까서 아비규환의 틈바구니에 굴려 넣었다. 눈에 파편이 박히고, 고막이 터지고, 얼굴에 화상을 입는 이들이 있었으나, 심지어 죽어 나가기도 하는 시절에 그들의 희생은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 ■ 대학 시절, 사실 최루탄에, 곤봉에 맞아 죽을까봐 무서웠다 대학 시절, 나는 어떤 논쟁에 격렬히 가담한 적이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쇠파이프·화염병 등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리 싸움이 붙었다. 나는 ‘비폭력투쟁’은 말도 안 된다는 쪽이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피가 뜨겁다 못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무모했다. 집회·시위의 목적은 우리의 뜻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인데, 경찰의 폭력으로 집회·시위 자체가 원천 봉쇄되는 상황에서 ‘비폭력’을 고집하다 고스란히 잡혀 들여가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나는 떠들었다. 시민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공간을 확보하고, 시위대의 핵심역량을 공권력의 폭력에서 지켜내려면,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 필요하다고, 나는 떠벌렸다. 실은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 대의명분은 나중의 일이고, 나는 시위를 하다가 직격탄, 지랄탄, 사과탄, 그리고 곤봉과 군화에 맞아 죽을까봐 무서웠다. 그것이 개죽음인 것 같아 더욱 두려웠다. 나중에 ‘물대포’가 등장했을 때, 나는 ‘최소한의 자위 수단’에 대한 주장을 거둬들였다. 노즐을 조정해 자유자재로 직사·곡사를 넘나들고, 형광액을 묻혀 시위참가자를 색출하며, 한번 맞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무기력해지는 그 가공할 장갑차의 최루액 살포를 맞닥뜨린 뒤, 나는 우리의 무기가 사소한 자위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내려놓고, 그저 책만 읽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2011년 11월은 최루탄 역사의 대단원 또는 또 하나의 절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찰은 국내 등장 20년이 지난 CS 최루액을 “내년 중에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만약에 있을지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보관하던 것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염두에 뒀던 ‘비상사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비상사태’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했다. 경찰 발표 이튿날인 11월22일, 김 의원은 FTA 날치기 처리 현장에 최루가루를 뿌렸다. 기자 출입까지 봉쇄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태이므로 그가 사과탄을 터뜨렸는지, 그냥 최루가루를 뿌렸는지는 아직 정확치 않다. 어쨌건 그것은 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이 공개 장소에서 사용된 마지막 사건이 될 것이다. 같은 날 저녁, FTA 날치기 통과 반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다. 그 물대포에 최루액이 포함됐는지, 그것이 구래의 CS 가스인지, 덜 유해하다는 ‘켑사이신’ 성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일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최루탄은 맞아봐야 안다. 국회 날치기 현장에서 터진 사과탄 또는 최루가루에 대해 조중동은 일제히 ‘테러’라고 1면 머릿기사를 썼다. <위키백과> 한국어판은 테러에 대해 “정치·종교·사상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한테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 김선동의 행위는 폭력일지라도 테러는 아니다 국회의원은 민간인인가? 민간인은 대대손손 국민 모두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FTA를 날치기 통과시킬 권능이 없다. 미국·유럽의 정치인들은 종종 토마토·계란·오물·신발·밀가루·쓰레기 등을 끼얹는 시민들에게 곤욕을 치른다. 그것은 모욕이고 아마도 폭력이겠지만, 그렇다고 테러는 아니다. 김 의원은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날치기를 시도하는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특수 집단’을 겨냥했다. (겨냥이 정확치 않아 제 몸에 더 많은 최루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자폭 테러’인 것인가?) 그것은 분명 폭력이겠지만, 자신이 위해를 당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가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날치기 의원들은 위협을 분명히 인지하여 경호권을 발동하고 언론을 봉쇄하고 야당 의원의 단상 진입을 봉쇄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욕설과 드잡이를 포함한 ‘어떤 폭력’이 자행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게 최루탄일줄은 몰랐겠지만, 그게 토마토이건 쓰레기이건 똥물이건 예상치 못한 수단이 동원됐다 하여 폭력이 곧 테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진화는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입각해 발전해왔다. 이젠 누구도 사사로이 폭력을 행사해선 안된다. 합법적인 폭력은 오직 ‘정당 방위’와 ‘국가의 폭력’에 국한된다. 현대 문명은 이제 ‘국가의 폭력’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발전해 나갈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 때,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를 ‘정권’으로 가격한 것은 (먼저 맞았다고 주장하는 김 의원의 말처럼) 정당방위인가 그저 사사로운 폭력인가 국회 질서를 해치는 테러인가. 수많은 폭력이 난무한 예산안 날치기 통과 이후, 김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청와대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물리력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으니 김 의원의 행동이 폭력인 것은 맞지만, 그건 ‘테러’가 아니다. 테러가 현대 인류 문명 최대의 적인 이유가 있다. 테러는 분노와 적개의 대상이 아닌 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에서 9·11 사건이 일어났지만, 실제로 희생당한 것은 미국에서도 가장 리버럴한 뉴욕 시민들이었다. 테러는 나찌 인종청소의 연장선에 있는 폭력이다. 명분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죽인다.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의 품격은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해 날아갔던 어느 이라크 기자의 신발과 같다. 당시 미국 어느 언론도 그 신발이 ‘대통령 암살 시도’라고 선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폭력이었으나 정치권력을 향한 공공의 모욕을 대변하는 개인의 행위였고, 그는 그 폭력에 어울리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 이 날씨에 물대포 맞는 공포에도 시위 나오는 국민 마음 모르나 김 의원의 의도가 무엇이건, 덕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최루탄의 맛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맛본 것은 겨우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직격탄, 지랄탄, 토끼몰이, 사과탄, 구타, 체포, 구속, 전과자의 낙인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폭력체계를 모두 겪어봐야, “아, 이래서 최루탄 최루탄 하는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경까지 겪지 못하였으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그날 저녁 명동 성당 앞에서 물대포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도 FTA 반대를 외치던 3천여 명의 시위대를 끝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과탄에도 불구하고 날치기 하는 국회의원과 물대포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를 규탄하는 시민 사이에 아직 공감을 위한 경험의 공유가 부족하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최루탄 맞아봐서 아는데” 국회 의사당에 지랄탄 몇 개쯤 터져야 힘없는 이들이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광장으로 광장으로 밀려나오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분노 없는 폭력이야말로 비인간화의 전형”이라고 설파했다. 국가 권력이 폭력을 휘두를 때, 그것은 비록 합법을 가장할지언정 비인간의 편에 서있다. 권력을 향해 분노하는 이들이 불복종·항의·위력시위 등을 벌일 때, 그것은 인간의 편에 선 폭력을 향한다. 물론 아렌트는 “폭력으로 권력을 창출할 수는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국회 의사당에 사과탄을 터뜨리는 폭력으로 의회 독재를 무너뜨리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폭력은 날치기를 위한 경호권이나 명동성당 앞 물대포보다 ‘정의롭다’. 적어도 경호권과 물대포를 앞세운 이들이 까짓 사과탄에 호들갑 떨 일은 결코 아니다.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지랄탄 몇개 한달음에 흡입해 보시던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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