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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고이 잠들어라, 아니 고이 잠들지 말라…
네 넋이 눈을 부릅떠서 늘 우리를 재촉하고…

등록 2011-12-05 20:47

1974년 복학한 뒤 어느날 서울 농대 교정에 선 김상진 열사.
1974년 복학한 뒤 어느날 서울 농대 교정에 선 김상진 열사.
그때 그 사람 추모시로 남은 김상진
1975년 4월11일 서울대생 김상진의 양심선언과 할복자결은 민주화운동 진영의 지식인, 특히 여러 시인들의 감성을 일깨웠다. 또한 엄혹한 유신의 서슬 탓에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까닭에 기일마다 추모시로나마 뜻을 기리고 넋을 달래야 했다.

가장 먼저 고은 시인은 75년 4월22일 조시 ‘고 김상진군의 영전에’를 올렸다.

‘…언제 오느냐, 그러나 그날은 온다 그날은 온다/ 그날이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너의 말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가/ 너의 갈채가 만천하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이 잠들어라, 아니 고이 잠들지 말라/ 네 넋이 눈을 부릅떠서 늘 우리를 재촉하고/ 우리와 함께 저주하며 사랑하자/ 그리하여 그날이 오거든 돌아오라/ 상진아 돌아오라.’

고은 시인은 훗날 <만인보>(13권) ‘70년대 사람들’ 편에도 ‘김상진’을 시로 읊었다.

75년 4월 당시 ‘인혁당 조작’ 사실을 폭로해 재수감중이던 김지하 시인은 옥중에서 소식을 전해듣고 추모시 ‘아아, 김상진’을 써내 몰래 내보냈다. ‘기인 겨울/ 얼음 뚫고 흐르는 맑은 한 줄기/ 시냇물 소리여/ 그대 죽음이여/…이 어둡고 가난한 나라 곳곳이 힘없고/ 의지할 곳 없는 우리들 가슴 가슴에, 손과 손에/ 파도로! 함성으로! 해방의 불기둥으로/ 부디부디/ 아하! 님아 돌아오소서.’

이 시는 75년 4월24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민주회복국민회의가 주최한 인권회복 기도회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쓴 사람을 밝히지 않은 채 낭독되었다. 95년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펴낸 <김상진의 삶과 죽음-긴 겨울 얼음 뚫고>의 제목을 따 온 시이기도 하다.

75년 5월22일 서울대에서 열린 ‘김상진 추모집회’에서도 2편의 추모시가 울려퍼졌다. 먼저 당시 영문학과 4학년이던 김정환 시인이 직접 ‘4월 진혼가’를 낭송했다. ‘벌거벗은 함성이 들려오리라/ 억눌림 속에서 오색환희와 해탈의 눈물이 흐르고/ 일어나는 소리, 아, 아, 맨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오리라/ 너는 순진한 피 한 방울로 오려마/ 서러운 이야기를 뒤에다 두고/ 그때는 너의 알몸으로 오려마’

그날 단상 아래에서는 신경림 시인의 ‘곡 김상진’도 뿌려졌다. ‘친구여 잘 가거라/ 너는 외롭지 않다/ 네 뒤를 따르는 피의 노랫소리가 들리리라’ 신 시인이 당시 김근태와 신동수의 부탁을 받고 썼던 이 추모시는 그동안 ‘전문’을 잃어버렸다가 이번에 김정남 선생의 자료철에서 찾아냈다.

이른바 ‘522 사건’으로 기록된 이날 추모집회는 유신악법의 절정으로 불리는 5월13일의 ‘긴급조치 9호’를 비웃듯 터져나온 대규모 시위로 박정희 정권을 아연실색케 했고 강경진압이 뒤따랐다. 법학과가 포함된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적당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신학자이자 통일운동가이기 앞서 시인이었던 문익환 목사도 2편의 추모시로 김상진을 애도했다. 76년 4월11일 1주기 추모 때는 ‘아직도/ 우리의 무딘 귀에 들리는 것은/ 강바람에 서걱이는/ 갈대잎 소리뿐이로구나.’(‘갈대피리의 가락’ 중에서)로 한탄했던 그는 80년 4월11일 5주기 때 치러진 공식 장례식에서 ‘살자 살자 죽음을 살자’고 노래했다.

정리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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