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미숙한 조문외교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알려진 다음날인 20일 ‘조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민간 차원의 조문 방북을 허용했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없는 미숙한 조문 외교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판의 가닥은 세 가지다.
첫째,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조문단을 파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익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우선 남북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2007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비핵 개방 3000’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잘살게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핵 포기와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만남과 대화가 필요한데 이 과정은 생략된 채 갈등과 긴장이 고조됐고 급기야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일어났다. 조문은 말문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또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김정일 이후 새로 들어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정상회담을 비롯해 활발해진 남북교류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에 대한 정보가 늘었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확연해진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1976년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이 사망했을 때 한국전쟁 당시 적이었음에도 미국은 전·현직 대통령이 조문단으로 가서 외교를 했다”며 “북의 새로운 지도부의 면면을 익히고 남북관계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찬 셈”이라고 말했다.
둘째, 조의 담화문의 적절성에 대한 비판이다. 담화문은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로 시작한다. 담화문의 발표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인데 위로를 받는 쪽은 ‘북한 주민’이다. 국상을 치르고 있는 북한 정권과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한 상주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서는 북 정권과 새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남북이 대화를 하면 북의 지도부와 하지 주민과 마주앉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대북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발언이다. 원 원장은 20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북한 사망 발표가 사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북의 공식 발표에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조의 표명 효과마저 반감시키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는 인터넷매체 <데일리안>에 기고한 글에서 “조문 외교를 통해 나라 간에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나갈 꼬투리를 모색하고 상대국의 정세와 의중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싫고 좋고를 떠나 무조건 조문사절을 보내야 했다”며 “현재 집권당에서는 박근혜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다. 그를 조문특사로 임명해 정계·재계·종교계 대표들로 공식적인 조문단을 꾸려 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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