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폭로’ 고승덕, 지역구 공천 경쟁자 압박?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이 2009년 12월15일에 열린 ‘재경박씨문중 송년회와 박희태 회장 국회의원 6선 당선 축하의 밤’ 행사에서 박 의장 왼편에서 다정히 건배하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박희태 후배’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 “정치적 탄압받아”
고 의원 “언급할 가치 없어…기회 틈탄 노이즈 마케팅”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과 공천 갈등을 겪는 당사자로 지목받은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이 “고 의원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고 의원의 이른바 ‘돈봉투 사건’ 폭로 배경에 지역구 공천 갈등이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박 전 구청장은 13일 <한겨레>와 만나 “서초구청장을 마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모금회) 사무총장을 지냈던 2011년 5월 고 의원이 모금회 고위 인사에게 1~2차례 전화해 나를 사퇴시키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사퇴압력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해 그는 “저녁 시간에 친박모임인 ‘서울희망포럼’에 참석한 것을 안 고 의원이 ‘왜 친박모임에 나가느냐, 쫓아내야 한다’고 했고, ‘기부금을 제멋대로 사용했다며 잘라야 한다고 했다’고 하더라”며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나를 짓밟으려 했다. 노골적인 정치탄압”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당시 대표후보한테서 돈봉투를 받았다고 폭로한 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보좌진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오르고 있다. 고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박희태 이름 석자만 적힌 명함을 돈봉투와 함께 받았다"고 말하고 이시간 돈봉투를 받은 보좌진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고 확인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e-mail]

　이에 대해 고 의원은 “임기가 보장된 사람의 사퇴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고 의원은 “(박 전 구청장이) 지역에서는 근무시간 중에 지역 행사마다 참석하고 다녀 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정치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 이 시기에 개인 장사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의원은 모금회 고위 인사와 전화 통화를 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모금회 고위 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나는 정치와 무관한 사람이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고 의원에게 “전화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질 기억이 안 난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고 의원과 박 전 구청장의 관계가 주목받는 것은 돈봉투 폭로를 놓고 불거지고 있는 공천갈등설 때문이다. 박 전 구청장은 고 의원이 돈봉투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한 박희태 국회의장과 친한 고향 후배다. 두 사람은 80년대 초반 ‘재경남해박씨종친회’에서 처음 만났으며 박 전 구청장은 박 의장에 대해 “평소 존경하는 고향 선배”라고 말했다.

　박 전 구청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주로 서울시에서 공직생활을 했으며 2003년 서초구부구청장을 거쳐 2006년 한나라당 후보로 서초구청장에 당선됐다. 구청장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1월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에 재직하다가 지난 12월30일 고 의원의 지역구인 서초구을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당 안에서는 고 의원의 폭로와 관련해 공천갈등설이 끊이지 않았다. 경쟁자인 박 전 구청장이 박희태 국회의장과 친밀해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고 의원이 박 의장을 겨냥해 돈봉투 사건을 폭로했다는 것이다.

　박 전 구청장은 “고 의원이 공천에서 100% 유리하다면 그런 행동을 했겠느냐”며 “내가 언급할 입장은 아니지만, 조급하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천갈등설’과 관련해 “돈봉투를 받았던 시점에 바로 폭로를 했거나 지금 폭로를 하더라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면 (공천 때문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 의원과 박 전 구청장이 정치적으로 라이벌 관계였다는 것은 여러 정황을 통해 확인된다. 두 사람은 우면산 산사태, 마권장외발매소 허가, 고속도로 덮개공원 사업 등 서초구 지역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우면산 산사태 수해복구 예산과 관련해 고 의원이 “전임 구청장 시절에 없었던 국가 예산 등 469억원을 추가 확보했다”고 의정보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박 전 구청장은 지난해 10월 누리집에 “공무원들에게 조금만 확인하면 ‘쇼’라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고 맞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예비 후보자 등록 사이트에 올라 온 박성중 예비 후보 프로필. 2010년 12월30일자로 예비후보자에 등록했다. 중앙선관위 누리집 갈무리

　고 의원은 지난해 12월 낸 의정보고서 일부를 박 전 구청장을 비판하는데 할애했다. 고 의원은 고속도로 덮개공원과 관련해 “민선 4기 서초구청이 시장과 제대로 협의하지 않아 기대심리만 키웠다”고 주장했다. 또 ‘경마도박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서초구 지역 최대의 현안이었던 마권장외발매소와 관련해서도 “민선 4기 서초구청에서 회의장 명목으로 건축심의를 해주었다”며 박 전 구청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박 전 구청장은 “퇴임 직전까지 이 사업과 관련된 인사들이 ‘마권발매소 용도로 허가를 내달라’며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거절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두 사람이 사사건건 대립한 데는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을 놓고 빚어진 갈등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위원장 남경필)가 서초구청장에 진익철씨를 영입했고, 한나라당이 전략 공천하자 박 전 구청장은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진 구청장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논란 당시 내곡동에 테니스장을 짓기로 해 ‘지나친 MB 챙겨주기’로 물의를 빚었던 당사자다.

　박 전 구청장은 “당시 나는 주민들로부터 40% 안팎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전략 공천한 사람은 나와 공직 경력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며 “누군가가 나를 겨냥한 표적 공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지역갈등설은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고,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박 전 구청장은 저와 인지도·지지도 등에서 전혀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 기회에 이름을 알리려는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