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시작한 광장의 정치
나꼼수·SNS·스마트폰 만나
놀이와 결합 새롭게 진화
나꼼수·SNS·스마트폰 만나
놀이와 결합 새롭게 진화
중소기업 대표 신아무개(43)씨는 지난해 11월30일 오후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저 일찍 퇴근합니다. 나꼼수 여의도 집회 갈 거예요. 급한 일 없는 분들은 일찍 퇴근해도 됩니다. 저랑 같이 가도 좋고요.” 젊은 직원 10여명이 “사장님 짱!”을 외치며 따라나섰다. 서울 여의도공원 강바람은 추웠지만 재미있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신씨는 <나는 꼼수다>를 들으며 ‘압축성장’했다. 정치와 거리가 멀었던 그는 이제 찜해둔 대선 후보를 도울 방법이 없는지를 찾을 정도로 정치와 사귀기 시작했다.
1989년 여름, 서울 보라매공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수십만명이 모였다.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 규탄 집회였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공안통치를 끝장내기 위해 이 자리에 100만명의 시민이 모였다”며 사자후를 토했다. 연단 위에도, 아래에도 엄숙함이 흘렀다.
2008년, 촛불시민들이 차지한 광화문 광장. 엄숙함보다는 재미와 춤, 흥이 넘쳐났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부터 언론의 자유, 4대강, 공기업 민영화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 논의됐지만 연단 중심에서 주변까지 유쾌함과 웃음, 춤사위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광장의 정치였다.
‘촛불’은 진화를 거듭했다. 인터넷을 만나 꽃피기 시작한 정치놀이, 놀이정치 시대는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만나 진화의 폭과 속도를 달리했다. 소통 방식이 바뀌자 새로운 시민이 출현했다.
회사원 이수연(37)씨에겐 법륜 스님이 ‘나꼼수’였다. 스님의 일방적 강연이 아닌 쌍방향 문답식 대화를 보면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덤으로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눈을 떴다. 안철수의 청춘콘서트까지 이어졌다.
신씨와 이씨 등 ‘개념시민’이 많아진 것은 정치가 놀이와 만나면서부터다. 촛불의 ‘유희적 저항’의 상징이던 요리·패션·성형·야구 사이트(82쿡·소울드레서·쌍코 등 ‘삼국카페’와 엠엘비(MLB) 사이트) 팬들 상당수는 이제 정치인 팬클럽에도 참여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과거 이익단체·노동조합·정당 등에 귀속감을 느끼던 개인이 사라진 반면 이제는 원자화된 개인이 놀이의 재미를 만나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참여한다”고 분석했다.
이젠 정치권도 ‘유희적 시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시대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쪽은 민주통합당이다. 야권통합 운동을 벌이면서 놀이의 ‘유쾌함’과 엄혹한 ‘민란’ 개념을 이어붙인 ‘유쾌한 민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는 현재 민주통합당의 ‘서열 2위’ 최고위원이다. 80만명이 신청하고 50만명이 참여한 모바일 투표의 ‘엄지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15 전당대회 이후 한명숙 대표 등 새 지도부가 자주 언급하는 대목도 온오프 정당, 에스엔에스 정당이다. 에스엔에스를 규제하겠다던 한나라당도 총선 후보 공천에 ‘에스엔에스’ 지수를 반영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수없이 많이 열리는 출판기념회 양상도 과거와 달라졌다. 북콘서트와 토크쇼 등 스토리 중심에 문화가 곁들여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요새는 ‘재미없으면 지는 거’다. 재미와 웃음과 해학이 분노보다 힘이 세다. 전파력이 강하다. 널리 확산된다. 전혀 다른 세계였던 정치의 엄숙함과 놀이의 유희가 만나면서 생긴 변화다. 사실 정치와 놀이의 만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왕과 양반들을 가지고 놀았던 마당놀이가 있었고,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민중들은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를 하면서 즐겼다. 정치를 소재로 비꼬고 풍자하고 패러디를 하는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된 시기는 시민들이 ‘줄’(온라인)로 연결되면서다. <딴지일보>(1998년)와 ‘디시인사이드’(1999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 만남이 격렬해지고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정치를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놀이 시대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4월 총선을 앞두고 수없이 많이 열리는 출판기념회 양상도 과거와 달라졌다. 북콘서트와 토크쇼 등 스토리 중심에 문화가 곁들여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요새는 ‘재미없으면 지는 거’다. 재미와 웃음과 해학이 분노보다 힘이 세다. 전파력이 강하다. 널리 확산된다. 전혀 다른 세계였던 정치의 엄숙함과 놀이의 유희가 만나면서 생긴 변화다. 사실 정치와 놀이의 만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왕과 양반들을 가지고 놀았던 마당놀이가 있었고,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민중들은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를 하면서 즐겼다. 정치를 소재로 비꼬고 풍자하고 패러디를 하는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된 시기는 시민들이 ‘줄’(온라인)로 연결되면서다. <딴지일보>(1998년)와 ‘디시인사이드’(1999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 만남이 격렬해지고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정치를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놀이 시대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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