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력화 새방안 목소리”
“지금 노동계 지도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진보정치 발전에 크게 걱정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천영세(69·사진)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경선 투표 부정 사건과 관련해 “진보정치 전반에 대중의 근본적 의문을 불러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7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면서도 “당원 중심의 정당민주주의라는 원칙은 움켜쥐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통합진보당이 노동자와 기층 민중 중심의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려면 노동현장, 민생현장과의 밀착도를 한층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전 대표는 1970년대 한국노총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지도위원을 거쳐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종북주의’ 논란 끝에 진보신당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당대표를 했다.
-노동계 출신 당 원로로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창당의 중심주체였다. 또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런 만큼 노동현장은 더 충격이 크다. 현장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총체적 냉소가 광범위하게 번져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텃밭인 울산, 창원 등 ‘영남 진보벨트’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이미 당의 노동자 중심성이 많이 후퇴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공약이나 정책 등에서 노동자들의 요구와 기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민생 현장과 밀착하지 못했고, 비례대표 구성 등 인적 구성에서도 노동계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노동 쪽에서 통합진보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고 있던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현장과 멀어진 건 무엇 때문인가?
“2008년 분당되면서 정치의 분열이 현장의 분열로 이어졌다. 절실한 요구로 통합이 이뤄졌지만, 이번에도 원래 헤어졌던 진보신당이 아니라 진보 색채가 애매한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면서 노동자 중심성이 크게 약해졌다. 노동당이란 이름도 바뀌지 않았나. 노동자들 사이에 ‘우리 당’이란 인식이 희미해졌다.”
-대안이 있다면?
“일단 이번 사태를 잘 풀어야 한다. 투표 부정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고, 현대적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다만 당원 중심의 정당 민주주의 원칙까지 버려선 안 된다. (그는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선 “아직 조사보고서를 다 읽어보지 못했다”며 말을 아꼈다.) 중·장기적으론 노동자 중심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투표 부정을 떠나 현재 통합진보당 방식과는 다른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현장에서 이미 나오던 상황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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