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토요판 커버스토리]
90년대 팬클럽 전쟁, 야권단일화서 재현될까
90년대 팬클럽 전쟁, 야권단일화서 재현될까
치열한 학생운동 경험한 40대,
피끓는 20대를 제치고
가장 진보세대로 떠오른 30대 기존 세력과 리더를 따르기보단
스스로 판을 짜려는 경향
집회ㆍ시위 등 선도투쟁 보단
팬클럽ㆍ모바일서 놀이로 정치참여
90년대 팬클럽 전쟁은 과연
야권단일화에서 재현될 것인가 다시 30대다. 위로는 ‘386세대’와 아래로는 ‘88만원 세대’가 각각 대체로 40대와 20대를 가리킨다면, 이제부터 말하는 30대는 그들 사이에 낀 세대를 가리킨다. 30대를 소개하며 굳이 ‘다시’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가 있다. 30대에 관한 담론은 낯설지 않다. 올해 들어 큰 인기를 모은 한국 영화 <건축학개론>과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이 포착한 세대가 바로 지금의 30대였다. 1990년대에 그들은 가수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을 따라 부르던 대학생이었거나, 아이돌 그룹 ‘에이치오티’(H.O.T.)나 ‘젝스키스’가 좋아 1997년 ‘전설의 대전쟁’ 참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고등학생이었다. <응답하라…> 10회의 제목이기도 한 ‘전설의 대전쟁’은 그해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을 앞두고 두 그룹 팬클럽이 벌인 신경전을 가리킨다. 왜 ‘리모델링 세대’이고 ‘3불 세대’인가
1990년대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은 30대에 접어들었다. 1977년생 가수 싸이는 최근 ‘77학개론’(6집 앨범 <싸이 육갑 파트원> 수록곡)에서 1990년대의 자신을 떠올리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의 모습 찾을 수가 없어”라고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를 돌아봐줘 그대여/ 나를 돌아봐”라고 말하고 있다. 싸이는 별 뜻 없이 당시 히트곡의 가사 일부를 옮겨부른 것이었을지 몰라도, 실제로 30대는 이제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에 대한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 1990년대의 그들이 정치보다 대중문화에 좀더 관심을 가졌다면, 30대가 된 지금 그들은 정치에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은 거의 매번 가장 진보적이었고, 그들의 정치 참여 방식은 파격적이라 할 만큼 낯선 것이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곧 출간할 <30대 정치학>에서 30대를 가리켜 ‘리모델링 세대’라고 명명했다. 김씨는 이 책에서 “그들은 과거(20대 시절)의 탈정치 속성을 버리고 정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있으며, 동시에 정치권이 짜놓은 판세나 정치권 위주의 구조, 기존의 정치 리더십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정치적 가치와 요건을 설정한 다음 그에 맞는 인물을 찾아 앉히려는 태도를 견지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그들은 (연예인 팬클럽 활동 등) 과거에 보였던 문화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기조를 새 용도로 활용한다”며 “놀이문화를 소비 차원에서 생산 차원으로 재활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리모델링 세대”라고 말했다. 리모델링 세대, 곧 30대가 가장 진보적이라는 명제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여론조사다. <한겨레>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8일 전국 19살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30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진보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6.4%)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성향을 ‘진보’라고 말했다. 자신을 진보라고 인식하는 20대 및 40대 응답자는 각각 35.9%, 36.1%에 그쳤다. ‘나이가 젊은 유권자일수록 진보적’이라는 속설을 배반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난 10년간 주요 전국 단위 선거의 여론조사 결과도 참고할 만하다. 세대간 대결이 본격적으로 선거 판세를 좌우하기 시작한 2002년 대선 이후 2004년 총선과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2년 총선까지 모두 5차례의 선거 때(선거 하루 전이나 당일) 한국갤럽이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들은 386세대로부터 떨어져 나와 30대의 상당수를 점유하기 시작한 2008년 총선 때부터 뚜렷한 진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30대는 범야권이 한나라당의 기세에 밀려 참패하는 상황에서도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 47.0%의 지지를 보냈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범진보 진영이 30대로부터 얻은 지지도는 58.0%였다. 20대의 45.0%나 40대의 52.0%보다 많았다. 20대만큼 피가 끓을 나이도 아니고, 바로 위 386세대처럼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경험한 것도 아닌 이들 30대가 가장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지난해 5월 ‘안티 한나라당 세대, 30대의 정치행태 분석’ 보고서에서 한때 ‘엑스(X)세대’로 불렸던 30대를 ‘3불 세대’로 명명했다. 30대가 갖는 계층적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들의 정치적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정 부소장은 12일 “정치·사회의식에 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나는 하위계층이다’, ‘계층상승 기회가 닫혀 있다’라는 대답이 30대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들의 정치적 냉소가 한국 사회의 주류와 이들을 대표하는 현 집권여당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보건사회연구원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20대·30대·40대에서 각각 500명씩 모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항목 가운데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여기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대에서 27.0%, 40대에서 24.4%로 나타났다. 30대는 이보다 더 낮은 22.5%만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30대의 응답률은 77.5%로 가장 높았다.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하층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30대(59.3%)에서 20대·40대(각각 54.8%)보다 많았다. 자신을 경제적 상층으로 인식하고 있는 30대는 6.2%에 불과했다. 힘든 현실에 대한 30대의 불만은 복지 확대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조사에서 30대의 63.6%는 우리 사회의 핵심적 해결과제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복지 확충’을 꼽았다. 20대보다 11.2%포인트, 40대보다 6.5%포인트 높은 응답률이었다. 30대는 경제민주화(18.6%)나 언론 개혁(9.2%), 검찰 개혁(4.4%)보다 더 시급한 문제로 ‘복지 확대’를 지적한 것이다.
4대대란과 양극화 진하게 경험한 ‘생활진보’
김종배씨는 지난 10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당시의 20대에게 특히 혹독했던 취업대란과 2000년대 초의 벤처대란, 2003년께 찾아온 카드대란, 그리고 2006년 정점을 찍은 부동산대란 등 4차례의 경제대란은 지금의 30대에게 이전 세대에 견줘 부를 축적할 기회도, 축적한 부의 양도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만들었다”며 “자산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더 많은 복지와 경제구조 개혁을 꼽는 이들 30대가 이 문제에 관한 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범진보 진영을 더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4대 대란 속에서도 ‘상층’의 지위를 잃지 않은 6.2%와 달리 59.3%의 ‘그들’은 세대 내 양극화를 가장 먼저 경험한 ‘생활 진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 진보라는 열쇳말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30대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386세대의 진보성은 다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386세대의 진보성이 이념적 배경이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콤플렉스에 기반했다면, 지금의 30대는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에 이은 경제적 양극화를 경험하며 진보적 성격을 띠게 됐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정치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낸 자유기고가 노정태(30)씨는 386세대와 현재 30대가 지닌 정치의식의 차이에 대해 “자신들이 엘리트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이른바 386세대의 기본적인 정서라면, 특히 나처럼 갓 30대에 속한 세대는 학벌이 높더라도 스스로를 무한 경쟁에 노출된 ‘루저’(패배자)로 보는 태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에 눈을 뜬 계기도 다르다. 386세대의 대다수는 정치의식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꼽는다. 반면 올해 32살인 진보신당 당직자 김슷캇(본명 김성일)씨는 정치의식을 형성한 계기로 “삼성전자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투입한 사건”을 들었다. 김씨는 “두 사건 모두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을 맡고 있는 김영경(34)씨는 “너무 가난한 집안 환경 탓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계급의식이 싹텄지만, 본격적인 정치적 각성은 대학 시절 운동하는 선배들을 만나 토론이나 세미나를 하며 찾아왔다”고 말했다. 인터넷신문 <슬로우뉴스>의 편집장 민노(필명·30대 후반)씨는 자신의 정치적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신문이나 잡지, 책 등 (고전적인) 매체와의 만남”을 꼽기도 했다. 386세대가 광주로부터 정치를 빚졌다면 30대는 운동권 선배나 미디어의 영향, 자신이 접한 불합리한 노동 현실 등 개인적 관심이나 환경 등을 통해 정치에 눈을 떴다. 정치 참여 방식의 변화는 두 세대 간 차이를 가장 도드라지게 하는 지점이다. 엘리트 운동권 집단을 형성한 386세대는 각종 집회나 시위 등을 통해 대중보다 한걸음 앞선 자리에서 ‘선도투쟁’을 했다. 대중을 동원 대상으로 삼았다는 측면에서 제왕적 리더십이 작동하던 ‘3김 시대’의 정치 문화와 그들의 투쟁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권은 이후 ‘젊은 피’ 수혈이라는 이름으로 386세대를 대거 정치에 끌어들였다. 반면 지금의 30대는 정치적 리더십의 약화와 정치질서의 이완 혹은 개방화 흐름 속에서 기존 정치 리더를 좇기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설정한 뒤 이에 맞는 인물을 앉히려고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정치인 팬클럽과 안철수 현상이다. 지금의 30대는 유권자 정치 참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2002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문국현·정동영·유시민·이해찬·정봉주에서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인을 찾아 팬클럽을 만들었다. 30대 정치 상징하는 팬덤·놀이·게임의 키워드
14일까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1위를 기록중인 문재인 후보는 ‘문사모’와 ‘젠틀재인’, ‘문풍지대’, ‘문워크’ 등 팬클럽을 가장 많이 가진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다. 문 후보가 조직력의 열세를 딛고 12일 대구·경북까지 지역경선 11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모바일투표에 활발히 참여한 팬클럽의 역할이 컸다. 문 후보 팬클럽의 연령 분포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학생 지지자의 모임인 문워크를 빼면 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캠프의 관측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경우 대선 출마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도 팬클럽이 생긴 경우다. 언론에 한번이라도 이름을 올린 온·오프라인 팬클럽만 꼽아봐도 ‘안사모’와 ‘나철수’ ‘철수처럼’ ‘철수산악회’ ‘씨에스(CS)코리아’ 등이 있다. 다만 현재 경선을 치르고 있는 문재인 후보와 달리 안 원장의 팬클럽은 상대적으로 활동이 뚜렷하지 않다.
김종배씨는 이들 30대가 보이는 정치 참여 방식의 기원을 1990년대 대중문화에서 찾았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혹은 그보다 좀더 뒤에 등장한 ‘에이치오티’와 ‘젝스키스’의 팬클럽에서 활동하면서 팬덤과 놀이 등에 익숙해졌다는 분석이다. “정치세력보다는 정치인을 우선시하고, 결의에 찬 운동보다는 흥겨운 놀이를 선호하고, 정치권이 짜놓은 판 안에서 수동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판을 짜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정치 참여 방식은 팬덤·놀이·게임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30대 정치학>에서)
실제 30대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 김영경씨는 “최근 또래 친구들과 대선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 진보·보수 진영이나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보다는 문재인이나 안철수 등 인물을 중심으로, 정책에 관한 내용을 따지기보다 이들의 인간적 매력을 중심으로 호감도를 따질 때가 많다”며 “<응답하라 1997>이 소개한 것처럼 연예인 팬클럽끼리 ‘누가 더 멋진가’를 놓고 경쟁하던 1990년대의 팬덤현상에, 정치에 대한 열망이 인물로 수렴되는 현상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는 “30대의 이런 정치적 의사 표현을 놓고 ‘경박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1990년대 연예인 팬덤문화에 익숙한 그들에게 이는 가장 자연스런 그들의 언어이자 문화, 소통의 방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들 30대가 팬덤·놀이 등의 방식으로 진보성을 나타낸다고 해서 이를 폄훼할 필요는 없다는 쪽이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10년 전 30대였던 386세대는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며 진보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고, 그 결과 보수 정당에 대한 반대 및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지지 등 특별한 방향성을 가졌다면 상대적으로 이념적 기반이 약한 지금의 30대는 반새누리당·비야당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연구위원은 “대신 이들은 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생활 진보이기에 진보를 지향하는 강도와 지속성은 견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30대가 오는 12월 대선에 앞서 등장할 주요 정치 무대는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이 될 전망이다.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는 민주통합당에서는 16일 서울지역 경선을 앞둔 현재 누적 득표율 50.81%로 과반을 유지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결선투표 없이 대선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이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 8일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원장과 민주당 대선 후보 가운데 누가 단일 후보로 적합한가를 묻는 질문에 안 원장을 선택한 응답자(40.9%)는 민주당 후보(42.6%)를 꼽은 사람보다 적었다. 대신 30대에서는 안 원장(51.6%)이 민주당 후보(43.2%)를 앞섰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2040세대에서도 가장 진보적이라 할 만한 이들 30대가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면 단일화 승부는 거기서 갈릴 가능성이 높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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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보세대로 떠오른 30대 기존 세력과 리더를 따르기보단
스스로 판을 짜려는 경향
집회ㆍ시위 등 선도투쟁 보단
팬클럽ㆍ모바일서 놀이로 정치참여
90년대 팬클럽 전쟁은 과연
야권단일화에서 재현될 것인가 다시 30대다. 위로는 ‘386세대’와 아래로는 ‘88만원 세대’가 각각 대체로 40대와 20대를 가리킨다면, 이제부터 말하는 30대는 그들 사이에 낀 세대를 가리킨다. 30대를 소개하며 굳이 ‘다시’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가 있다. 30대에 관한 담론은 낯설지 않다. 올해 들어 큰 인기를 모은 한국 영화 <건축학개론>과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이 포착한 세대가 바로 지금의 30대였다. 1990년대에 그들은 가수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을 따라 부르던 대학생이었거나, 아이돌 그룹 ‘에이치오티’(H.O.T.)나 ‘젝스키스’가 좋아 1997년 ‘전설의 대전쟁’ 참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고등학생이었다. <응답하라…> 10회의 제목이기도 한 ‘전설의 대전쟁’은 그해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을 앞두고 두 그룹 팬클럽이 벌인 신경전을 가리킨다. 왜 ‘리모델링 세대’이고 ‘3불 세대’인가
1990년대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은 30대에 접어들었다. 1977년생 가수 싸이는 최근 ‘77학개론’(6집 앨범 <싸이 육갑 파트원> 수록곡)에서 1990년대의 자신을 떠올리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의 모습 찾을 수가 없어”라고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를 돌아봐줘 그대여/ 나를 돌아봐”라고 말하고 있다. 싸이는 별 뜻 없이 당시 히트곡의 가사 일부를 옮겨부른 것이었을지 몰라도, 실제로 30대는 이제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에 대한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 1990년대의 그들이 정치보다 대중문화에 좀더 관심을 가졌다면, 30대가 된 지금 그들은 정치에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은 거의 매번 가장 진보적이었고, 그들의 정치 참여 방식은 파격적이라 할 만큼 낯선 것이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곧 출간할 <30대 정치학>에서 30대를 가리켜 ‘리모델링 세대’라고 명명했다. 김씨는 이 책에서 “그들은 과거(20대 시절)의 탈정치 속성을 버리고 정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있으며, 동시에 정치권이 짜놓은 판세나 정치권 위주의 구조, 기존의 정치 리더십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정치적 가치와 요건을 설정한 다음 그에 맞는 인물을 찾아 앉히려는 태도를 견지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그들은 (연예인 팬클럽 활동 등) 과거에 보였던 문화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기조를 새 용도로 활용한다”며 “놀이문화를 소비 차원에서 생산 차원으로 재활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리모델링 세대”라고 말했다. 리모델링 세대, 곧 30대가 가장 진보적이라는 명제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여론조사다. <한겨레>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8일 전국 19살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30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진보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6.4%)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성향을 ‘진보’라고 말했다. 자신을 진보라고 인식하는 20대 및 40대 응답자는 각각 35.9%, 36.1%에 그쳤다. ‘나이가 젊은 유권자일수록 진보적’이라는 속설을 배반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난 10년간 주요 전국 단위 선거의 여론조사 결과도 참고할 만하다. 세대간 대결이 본격적으로 선거 판세를 좌우하기 시작한 2002년 대선 이후 2004년 총선과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2년 총선까지 모두 5차례의 선거 때(선거 하루 전이나 당일) 한국갤럽이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들은 386세대로부터 떨어져 나와 30대의 상당수를 점유하기 시작한 2008년 총선 때부터 뚜렷한 진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30대는 범야권이 한나라당의 기세에 밀려 참패하는 상황에서도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 47.0%의 지지를 보냈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범진보 진영이 30대로부터 얻은 지지도는 58.0%였다. 20대의 45.0%나 40대의 52.0%보다 많았다. 20대만큼 피가 끓을 나이도 아니고, 바로 위 386세대처럼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경험한 것도 아닌 이들 30대가 가장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지난해 5월 ‘안티 한나라당 세대, 30대의 정치행태 분석’ 보고서에서 한때 ‘엑스(X)세대’로 불렸던 30대를 ‘3불 세대’로 명명했다. 30대가 갖는 계층적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들의 정치적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정 부소장은 12일 “정치·사회의식에 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나는 하위계층이다’, ‘계층상승 기회가 닫혀 있다’라는 대답이 30대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들의 정치적 냉소가 한국 사회의 주류와 이들을 대표하는 현 집권여당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보건사회연구원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20대·30대·40대에서 각각 500명씩 모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항목 가운데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여기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대에서 27.0%, 40대에서 24.4%로 나타났다. 30대는 이보다 더 낮은 22.5%만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30대의 응답률은 77.5%로 가장 높았다.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하층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30대(59.3%)에서 20대·40대(각각 54.8%)보다 많았다. 자신을 경제적 상층으로 인식하고 있는 30대는 6.2%에 불과했다. 힘든 현실에 대한 30대의 불만은 복지 확대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조사에서 30대의 63.6%는 우리 사회의 핵심적 해결과제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복지 확충’을 꼽았다. 20대보다 11.2%포인트, 40대보다 6.5%포인트 높은 응답률이었다. 30대는 경제민주화(18.6%)나 언론 개혁(9.2%), 검찰 개혁(4.4%)보다 더 시급한 문제로 ‘복지 확대’를 지적한 것이다.
김종배씨는 지난 10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당시의 20대에게 특히 혹독했던 취업대란과 2000년대 초의 벤처대란, 2003년께 찾아온 카드대란, 그리고 2006년 정점을 찍은 부동산대란 등 4차례의 경제대란은 지금의 30대에게 이전 세대에 견줘 부를 축적할 기회도, 축적한 부의 양도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만들었다”며 “자산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더 많은 복지와 경제구조 개혁을 꼽는 이들 30대가 이 문제에 관한 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범진보 진영을 더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4대 대란 속에서도 ‘상층’의 지위를 잃지 않은 6.2%와 달리 59.3%의 ‘그들’은 세대 내 양극화를 가장 먼저 경험한 ‘생활 진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 진보라는 열쇳말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30대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386세대의 진보성은 다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386세대의 진보성이 이념적 배경이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콤플렉스에 기반했다면, 지금의 30대는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에 이은 경제적 양극화를 경험하며 진보적 성격을 띠게 됐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정치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낸 자유기고가 노정태(30)씨는 386세대와 현재 30대가 지닌 정치의식의 차이에 대해 “자신들이 엘리트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이른바 386세대의 기본적인 정서라면, 특히 나처럼 갓 30대에 속한 세대는 학벌이 높더라도 스스로를 무한 경쟁에 노출된 ‘루저’(패배자)로 보는 태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에 눈을 뜬 계기도 다르다. 386세대의 대다수는 정치의식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꼽는다. 반면 올해 32살인 진보신당 당직자 김슷캇(본명 김성일)씨는 정치의식을 형성한 계기로 “삼성전자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투입한 사건”을 들었다. 김씨는 “두 사건 모두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을 맡고 있는 김영경(34)씨는 “너무 가난한 집안 환경 탓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계급의식이 싹텄지만, 본격적인 정치적 각성은 대학 시절 운동하는 선배들을 만나 토론이나 세미나를 하며 찾아왔다”고 말했다. 인터넷신문 <슬로우뉴스>의 편집장 민노(필명·30대 후반)씨는 자신의 정치적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신문이나 잡지, 책 등 (고전적인) 매체와의 만남”을 꼽기도 했다. 386세대가 광주로부터 정치를 빚졌다면 30대는 운동권 선배나 미디어의 영향, 자신이 접한 불합리한 노동 현실 등 개인적 관심이나 환경 등을 통해 정치에 눈을 떴다. 정치 참여 방식의 변화는 두 세대 간 차이를 가장 도드라지게 하는 지점이다. 엘리트 운동권 집단을 형성한 386세대는 각종 집회나 시위 등을 통해 대중보다 한걸음 앞선 자리에서 ‘선도투쟁’을 했다. 대중을 동원 대상으로 삼았다는 측면에서 제왕적 리더십이 작동하던 ‘3김 시대’의 정치 문화와 그들의 투쟁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권은 이후 ‘젊은 피’ 수혈이라는 이름으로 386세대를 대거 정치에 끌어들였다. 반면 지금의 30대는 정치적 리더십의 약화와 정치질서의 이완 혹은 개방화 흐름 속에서 기존 정치 리더를 좇기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설정한 뒤 이에 맞는 인물을 앉히려고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정치인 팬클럽과 안철수 현상이다. 지금의 30대는 유권자 정치 참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2002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문국현·정동영·유시민·이해찬·정봉주에서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인을 찾아 팬클럽을 만들었다. 30대 정치 상징하는 팬덤·놀이·게임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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