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밝힌 과거 행태
박정희때 대공수사 명분 첫발
노태우때 미림팀에 특수임무
아날로그 휴대전화는 YS때 국가정보원이 5일 발표한 ‘과거 불법감청 실태보고’는 지난 40여년 동안 역대 정권들이 불법도청을 어떤 방식으로 자행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불법도청을 처음으로 자행한 국가기관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였다. 1961년 중정 창설 당시 설치된 유선전화 감청기구는 20명 내외의 ‘과’ 조직으로 운영되다 68년 5월 업무 증가에 따라 60명 내외의 ‘단’ 규모로 커졌다. ‘국가안보를 위한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설치된 것이지만, 각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유선전화 불법도청도 이 조직의 주요 임무였다. 감청기구를 이용한 유선전화 불법도청은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도 꾸준히 지속됐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이와는 별도로 60년대 중반에는 ‘미림팀’의 전신인 ‘여론조사팀’이 중정 안에 설치됐고, 90년대 초까지 주요 인사의 동향 파악 등 단편적인 정보수집을 담당했다.
그러다 노태우 정권 말기인 91년 7월, 김영수 당시 안기부 1차장의 지시로 ‘미림팀’에 특수도청 임무가 부여됐다. 공운영씨 등 5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1차 미림팀’이, 유명 음식점들의 종사자를 돈이나 선물 등으로 매수해 예약 사실을 빼낸 뒤 송신기를 설치해 근처에 세워둔 차량에서 주요 정치인이나 측근들의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방식으로 ‘도청 공작’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도청 중 송신기가 적발되는 사고가 이따금 생겼고, 이를 대비해 당시 국장은 공씨에게 “일이 발각되면 공 팀장이 공명심에서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이때 공씨는 “언제든지 문제가 되면 조직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93년 2월,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민간정부라는 뜻의 ‘문민정부’가 출범했지만, 안기부의 대규모 감청조직을 기반으로 한 불법적인 유선전화 도청은 이어졌다. 안기부는 96년 1월, 아날로그 휴대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감청장비 네 벌을 이탈리아에서 사들여 99년 12월 아날로그 휴대전화 서비스가 중단될 때까지 불법감청에 써먹었다. ‘초원복국집 도청 사건’으로 대선 정국에서 위기에 몰렸던 김영삼 대통령이 “도청 피해자는 바로 나”라며 93년 12월 불법도청을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을 만든 뒤에도, 정권은 휴대전화까지 도청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게다가 ‘미림팀’은 문민정부 출범 이듬해인 94년 6월, 오정소 안기부 국내 담당 국장의 지시로 부활한다. 대선전이 격화하던 92년 말 활동이 중단됐다가 93년 7월 해체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공씨 등 3명으로 구성된 ‘2차 미림팀’은 97년 11월까지 여당 정치인, 김영삼·김대중씨 측근, 이회창씨 등 정치인 및 관료·재계·언론계 인사들을 상대로 무차별 도청을 하면서 이번 삼성 관련 내용 등 외에 주요 기업의 빅딜 관련 내용 등까지 수집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 미림팀이 완전 해체되면서, 음식점 사람을 꾀어 현장에 나가 도청장비를 설치하는 비교적 ‘원시적’인 방법의 도청은 자취를 감췄지만, 국정원의 휴대전화 도청은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는데도 2002년 3월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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