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선자금 수사때 채권 매입과정 못밝혀
귀국한 핵심참고인 조사땐 실체 규명 가능성
귀국한 핵심참고인 조사땐 실체 규명 가능성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삼성이 사채시장에서 사들인 800억원대 채권의 비밀을 쥐고 국외로 나갔던 삼성증권의 전 직원들이 돌아옴에 따라, 베일에 가려졌던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드러낼 새로운 실마리가 마련됐다.
삼성의 ‘800억 채권’은 1998년 ‘세풍’ 수사 당시 드러났던 단서들과 함께 삼성 비자금의 비밀을 풀 열쇠로 꼽혔다. 검찰은 지난해 5월 대선자금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삼성 채권과 관련해 이학수 그룹 부회장과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참고인 중지’ 처분했다. 채권 매입의 심부름꾼이라고 볼 수 있는 전직 직원 최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가 이미 국외로 나간 상태여서 이 부회장 등 ‘윗선’의 범죄행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검찰은 명동의 사채시장을 저인망식으로 뒤져 삼성이 800억원대의 채권을 사들인 사실을 알아냈고, 삼성이 정치권에 건넨 대선자금 385억원 가운데 302억원이 이 중 일부라는 것도 파악했다. 당연히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500억원대 채권의 행방과 함께 전체 매입 채권이 누구의 지시에 따라 어떤 자금으로 사들인 것인지가 수사의 핵심 과제였다.
그러나 김인주 사장은 “박 아무개 구조본 상무가 매입을 지시했다”고 주장했고, 박 상무는 김씨·최씨를 실무자로 지목하면서 이들에게 책임을 미뤘다. 그러나 최씨는 검찰이 삼성 채권 문제에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직전 외국으로 나가 도피의혹을 샀다. 핵심인물을 조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검찰은 최씨 등을 ‘입국시 통보’ 조처하고 이 부회장 등을 참고인 중지하면서 일단 수사를 멈췄다. 겉으로만 보면, 검찰이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 비자금 사건 때 국외로 도피하거나 이민 간 실무자 2명의 진술을 들어봐야 한다며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린 것과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이 부회장 등이 채권을 이용한 범죄행위에 연루됐을 의심을 품고 ‘참고인 중지’ 처분했다”며 “최씨 등이 돌아오면 수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어쨌든 최씨 등이 모두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 만큼, 검찰이 이들을 상대로 채권 매입의 모든 과정을 캐물으면 삼성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검찰이 ‘세풍’ 수사에서 찾아낸 삼성의 정치자금 수십억원도 삼성 비자금 수사의 좋은 단서다. 검찰은 당시 삼성이 최소 60억원을 정치권에 건넨 사실을 파악했지만, 국세청이 개입하지 않은 사안이라는 이유로 처벌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이 중 10억원은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마련한 헌 수표라는 사실 등 자금의 출처와 조성 경위의 일부는 파악했다. 비자금 수사의 단서를 잡은 것이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 의지다.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결과 발표 당시에는 최씨 등에 대한 조사를 향후 주요 수사과제로 공언했지만, 정작 최씨가 들어오자 석 달 동안 소재 파악도 못하는 등 석연찮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 또다시 삼성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