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전 대선 후보가 지난 1월28일 통합진보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차기 당대표 후보로 합의추대됐다.(위)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아래) 뉴스1
[토요판] 뉴스분석 왜?/ 진보정당의 오늘
▶ 지난 대선을 두고는 진보 대 보수 구도였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정작 진보를 당명에 포함시키고 있는 진보정당들은 존재감을 찾기 어려웠다. 민주통합당이 진보의 몫까지 모두 차지했다. 야권의 대선 패배 뒤, 진보정당들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 보인다. 패배한 민주당은 그래도 관심을 받지만, 진보정당들은 아예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유달리 추운 이 겨울, 진보정당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디고 있을까?
숫자는 무소불위다. 수치는 지지율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규정한다. 정치란 몫이 없는 자가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것, 보이지 않는 자를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진보라는 이름은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한테 돌려야 한다. 그럼에도 수치는 냉혹하게 모든 것을 빨아들여 희석한다. 정치부로 옮긴 지 한 달, 진보정당 기사는 단 한 건, 그것도 원고지 2장. 얄궂게도 해당 정당의 지지율보다 조금 높은 수치다. 숫자는 힘이 세다. 분명 정답은 아니다.
세 정당 합해도 ‘지지율 한자릿수’
1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중앙홀. 진보정의당 국회의원 7명이 농성을 중단했다. “쌍용자동차 국정조사가 제외된 채로 임시국회가 열리는 최악의 사태를 막아낸”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에서 성취의 기쁨을 읽을 수는 없었다. 농성 중단은 ‘잠정’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그 말 속에서 피로감이 짙게 묻어났다.
야당은 쌍용차 국정조사를 요구해 왔다. 국정조사는 ‘약속은 꼭 지키는’ 박근혜 당선인, 김무성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장, 황우여 대표가 대통령 선거 전 약속한 사항이다.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31일. 농성 중단 일주일 만에 여야는 임시국회 개원 합의를 했다. 쌍용차 국정조사는 더이상 개원의 조건이 아니었다. 진보정당을 제외한 ‘야’는 국정조사를 여야협의체라는 카드로 바꿨다. 협상을 맡은 민주당 우원식 수석부대표는 ‘긴 이닝 체력 안배를 위한 구질 변경’이라고 비유했다. 돌직구를 변화구로 바꿨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구도 구질에 따라 어깨나 팔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애써 간과했다.
쌍용차 사태의 해결 과정은 소외된 진보정당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들의 존립 기반인 노동의 문제임에도 진보라는 이름을 단 각 당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여야 합의 직후 김재연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카메라 앞에 섰다. “쌍용차 국정조사를 포기한 것은 기만”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한 당직자는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진보정의당도 마찬가지다. 박원석 대변인은 “민주당은 국정조사에 대해 어떤 진전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봉합했다. 국정조사만이 해법”이라며 “변화구로 바꿨다는데 새누리가 아닌 노동자들에게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묘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진보신당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은
새 대표 선출로 몸 추스르기
진보정의당은 간부 98%가
‘진보정치 위기’에 공감하면서
정체성 고민에 나섰지만
여전히 절망과 희망은 엇갈린다 최대 적은 무력감과 무관심
쌍용차 국정조사 불발때
그들은 각자 입장을 내놨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었고
언론도 그것을 비판하지 않았다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한 게 2004년. 10년차 진보정당은 다음 총선에서 소멸을 우려한다.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한자릿수를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진보 대 보수의 구도였다고 입을 모으는 대선에서도 정작 진보의 본류를 자처하는 이들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새누리당이 불과 몇해 전만 해도 공상에 불과하다고 폄훼하던 ‘무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의제를 들고나왔다고, 진보정당이 위안을 받지는 못한다. 1월25일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가 주최한 집담회에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이 한 발언을 보자. “2010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내세웠던 무상보육 공약보다 이번 박근혜 후보 공약이 더 적극적인 복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년을 허송세월했다는 통렬한 고백이다. 외부의 상황은 더 엄혹하다. 2013년 의회민주주의 안에 서고자 하는 진보정당은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며 벼랑 끝에 섰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김선동, 이석기, 오병윤 등 4명의 의원이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린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2월14일 대법원 판결(삼성 X파일 사건)을 앞두고 있다. 이들이 재판을 거쳐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위기는 안팎으로 다가와 있다. 위기 속에서 각 당이 보여주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우리 사회 진보정당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소통보다는 내부 결속을 앞세우면서 희망을 얘기하기도 하는가 하면, 때이른 절망을 말하면서 뿌리부터 흔들리기도 한다. “우는소리 안한다” “밟힐 만큼 밟혔다” “우는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우는소리 하는 사람 없다.”(통합진보당 한 당직자) 통합진보당은 2월18일부터 22일까지 투표를 해 새 대표를 선출한다. 아니 확정한다는 표현이 맞다. 현재 이정희 전 대표로 합의추대된 상황이다. 이 전 대표는 1월28일 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대선 후보로 인준받으면서 당원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겠다는 말을 올렸다. 당원들의 마음이 민중과 통해 있으니 그런 믿음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발언에서는 유독 ‘당원’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합의추대에 대한 언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당 내부에서도 잘 안다. 책임론은 차치하고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물러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당에서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이미지 찾고 피하고 비킨다고 해서 영향력이 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내부의 정서다. 문제는 외부의 상식과 괴리다. 당내 결속을 위한 의지에서 연유하는 각종 평가와 전망은 고집스럽다. 통합진보당 하면, 4·11 총선에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 중앙위 폭력사태 등을 떠올리지만, 당내 주류적 분석은 “지난해는 보수언론, 새누리당과의 여론전이었다”고 한다. 한 당직자는 종북 논란에 대해 “야권 연대와 진보 통합이라는 가치를 추동하기 위한 당 내부의 힘이 모자라 종북으로 매도당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신뢰를 얻지 못해 종북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다는 것이다. 대선 평가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러 나왔다” “다카키 마사오” “박근혜 후보 6억 논란” 등의 카타르시스를 제외하고도 문재인·박근혜 후보를 향한 전략적 태도, 티브이 토론 뒤의 사퇴결정 등 논의는 다양하게 나올 법하지만, “이정희의 재발견”이라는 쉬운 결론에 다다른다. 1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제9차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는 “이번 대선을 통해 당과 이정희 후보가 부활했다”는 평가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정희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추대된 것은 이런 흐름 속에서 가능했다. 이 전 대표의 당 대표 추대에 이은 통합진보당의 결정은 김재연 의원의 원내대변인 내정이다. 지난 31일 김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 뒤 기자가 뒤따랐다. 20여m 뒤따르는 동안 김 대변인의 백브리핑을 듣겠다는 기자는 없었다. 참고로 진보정의당 박원석 대변인 백브리핑 뒤 그를 따른 기자는 3명, 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경우 20여명이었다. 이쯤 되면 통합진보당은 내부를 향한 진정성이나 정당성 입증과는 별개로 이미지 회복에 대한 전략은 고려 대상이 아닌 듯하다. 이미지는 메시지라는 사실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일까.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은 “밟힐 만큼 밟혔다. 밟혀서 땅으로 들어가, 싹을 틔우려는데, 또 밟으면 어떡하냐”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해 4·11 총선으로 시작된 통합진보당 내부 갈등과 분열, 탈당 뒤 10월 진보정의당 창당, 문재인 후보 지지 등으로 이어진 과정에서 나온 고민들이 여전한 듯했다.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한쪽이 이미지를 허상으로 보고 애써 무시한다면, 한쪽은 그 이미지를 되새김질하면서 허덕이고 있다. 내부의 목소리를 살펴보면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다른 이유도 감지된다. 좀더 본질적인 문제에 가닿는다. 지난 1월14일부터 17일까지 진보정의당 주요 간부 263명의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진보정치의 위기를 공감하는 사람이 97.5%였다. 이 조사를 주도한 진보정의연구소에서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고, 미래에 전망이 없다는 당 간부가 대부분”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7명의 국회의원과 40명의 지방공직자를 보유한 정당의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자기부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대표인 노회찬 의원이 들고나온 건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다. 노 의원은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하면서 그 사회의 국가모델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노동과 복지와 관련된 총체적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너무나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파편적인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며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점검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정책이나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예외없이 사회민주주의의 경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자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의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참여계의 천호선 최고위원처럼 내부의 역량을 제고하자는 신중론이 대표적이다. 사민주의 자체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반론 또한 유력하다. 정책 쪽에서 일하는 한 당직자는 “사민주의 논의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나온 얘기다. 영국 노동당을 롤 모델로 주장했지만, 당시 반향은 적었다”고 말한다. 외부의 시선 “너무 한가해 보인다” 지난달 초 진보정의당에서 연 집담회에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민주당이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성 실천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 것에 비한다면, 새누리당이 천막당사라도 치듯 변화를 위해 몸부림쳐야 할 것 같은데, (평론가 집단의 진단처럼) 너무들 한가하고 편안해 보인다”며 “책임윤리의 측면에서 진보정의당은 민주당보다 못하다고 말한다고 해도 반박하기 어렵다”고 날을 세운다. 박 대표의 다소 가혹해 보이는 듯한 비판은 그나마 애정이 담긴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적은 무관심이다. 다시 쌍용차 사태를 말하자면 진보정의당의 실책을 탓하는 언론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앞으로 또 5년 동안, 익숙해지는 것에 대한 성찰이 더욱 필요할 듯. 소중한 것에 익숙해지면 소홀히 하기 쉬운 한편, 부정적인 것에 익숙해지면 더 부정적인 걸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오늘의 야만적인 교육 현실의 궤적이 그랬듯이.”(지난해 12월26일 진보신당 전 대표 홍세화 트위터 @hongshenx) 진보신당은 2월1일 새 당 대표를 선출하지만 당원을 제외하고 이에 관심을 갖는 시선은 드물다. 김현우, 이용길, 금민이라는 후보의 존재에 대해 언론은 외면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당시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던 진중권 교수나, 2009년 용산참사 현장을 지키던 진보신당의 칼라TV 카메라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진보신당이 왜 관심에서 멀어졌는지 궁금할 것이다. 통합을 주장하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을 비롯한 명망가들을 떠나보냈고, 당을 추슬렀다. 여전히 1만5천여명의 당원이 있고, 당비를 납부하는 당권자도 7천여명이다. 7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진보정의당도 부럽지 않다. 여전히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의 현장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만큼은 진보신당 당원들의 활약을 무시하지 못한다. 녹색당. 지난해 4·11 총선에서 10만3811명의 표를 얻었다. 지난 1월15일 기준 당비를 납부하고 있는 5300명의 당원.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그리고 20대 당원이 전체 13%다. 당헌에 따라 모든 조직의 위원장은 남녀 같은 수로 구성한다. 지난 30일 쌍용차 여야협의체를 제안하기 전 민주당 한 당직자는 기자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진보정당 쪽에서 쌍용차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원내 127석의 거대 야당이 여전히 진보정당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진보정당이 어디에 기반하고 다시 살아나야 하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지난달 말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내년 지자체 선거나 3년 뒤 총선에서 진보정당과의 관계를 다시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불쑥 꺼냈다. 타협의 지점을 찾지 못해 수백표 차이로 여당에 자리를 내준 쓰린 경험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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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절망과 희망은 엇갈린다 최대 적은 무력감과 무관심
쌍용차 국정조사 불발때
그들은 각자 입장을 내놨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었고
언론도 그것을 비판하지 않았다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한 게 2004년. 10년차 진보정당은 다음 총선에서 소멸을 우려한다.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한자릿수를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진보 대 보수의 구도였다고 입을 모으는 대선에서도 정작 진보의 본류를 자처하는 이들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새누리당이 불과 몇해 전만 해도 공상에 불과하다고 폄훼하던 ‘무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의제를 들고나왔다고, 진보정당이 위안을 받지는 못한다. 1월25일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가 주최한 집담회에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이 한 발언을 보자. “2010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내세웠던 무상보육 공약보다 이번 박근혜 후보 공약이 더 적극적인 복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년을 허송세월했다는 통렬한 고백이다. 외부의 상황은 더 엄혹하다. 2013년 의회민주주의 안에 서고자 하는 진보정당은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며 벼랑 끝에 섰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김선동, 이석기, 오병윤 등 4명의 의원이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린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2월14일 대법원 판결(삼성 X파일 사건)을 앞두고 있다. 이들이 재판을 거쳐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위기는 안팎으로 다가와 있다. 위기 속에서 각 당이 보여주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우리 사회 진보정당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소통보다는 내부 결속을 앞세우면서 희망을 얘기하기도 하는가 하면, 때이른 절망을 말하면서 뿌리부터 흔들리기도 한다. “우는소리 안한다” “밟힐 만큼 밟혔다” “우는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우는소리 하는 사람 없다.”(통합진보당 한 당직자) 통합진보당은 2월18일부터 22일까지 투표를 해 새 대표를 선출한다. 아니 확정한다는 표현이 맞다. 현재 이정희 전 대표로 합의추대된 상황이다. 이 전 대표는 1월28일 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대선 후보로 인준받으면서 당원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겠다는 말을 올렸다. 당원들의 마음이 민중과 통해 있으니 그런 믿음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발언에서는 유독 ‘당원’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합의추대에 대한 언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당 내부에서도 잘 안다. 책임론은 차치하고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물러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당에서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이미지 찾고 피하고 비킨다고 해서 영향력이 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내부의 정서다. 문제는 외부의 상식과 괴리다. 당내 결속을 위한 의지에서 연유하는 각종 평가와 전망은 고집스럽다. 통합진보당 하면, 4·11 총선에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 중앙위 폭력사태 등을 떠올리지만, 당내 주류적 분석은 “지난해는 보수언론, 새누리당과의 여론전이었다”고 한다. 한 당직자는 종북 논란에 대해 “야권 연대와 진보 통합이라는 가치를 추동하기 위한 당 내부의 힘이 모자라 종북으로 매도당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신뢰를 얻지 못해 종북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다는 것이다. 대선 평가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러 나왔다” “다카키 마사오” “박근혜 후보 6억 논란” 등의 카타르시스를 제외하고도 문재인·박근혜 후보를 향한 전략적 태도, 티브이 토론 뒤의 사퇴결정 등 논의는 다양하게 나올 법하지만, “이정희의 재발견”이라는 쉬운 결론에 다다른다. 1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제9차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는 “이번 대선을 통해 당과 이정희 후보가 부활했다”는 평가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정희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추대된 것은 이런 흐름 속에서 가능했다. 이 전 대표의 당 대표 추대에 이은 통합진보당의 결정은 김재연 의원의 원내대변인 내정이다. 지난 31일 김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 뒤 기자가 뒤따랐다. 20여m 뒤따르는 동안 김 대변인의 백브리핑을 듣겠다는 기자는 없었다. 참고로 진보정의당 박원석 대변인 백브리핑 뒤 그를 따른 기자는 3명, 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경우 20여명이었다. 이쯤 되면 통합진보당은 내부를 향한 진정성이나 정당성 입증과는 별개로 이미지 회복에 대한 전략은 고려 대상이 아닌 듯하다. 이미지는 메시지라는 사실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일까.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은 “밟힐 만큼 밟혔다. 밟혀서 땅으로 들어가, 싹을 틔우려는데, 또 밟으면 어떡하냐”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해 4·11 총선으로 시작된 통합진보당 내부 갈등과 분열, 탈당 뒤 10월 진보정의당 창당, 문재인 후보 지지 등으로 이어진 과정에서 나온 고민들이 여전한 듯했다.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한쪽이 이미지를 허상으로 보고 애써 무시한다면, 한쪽은 그 이미지를 되새김질하면서 허덕이고 있다. 내부의 목소리를 살펴보면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다른 이유도 감지된다. 좀더 본질적인 문제에 가닿는다. 지난 1월14일부터 17일까지 진보정의당 주요 간부 263명의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진보정치의 위기를 공감하는 사람이 97.5%였다. 이 조사를 주도한 진보정의연구소에서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고, 미래에 전망이 없다는 당 간부가 대부분”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7명의 국회의원과 40명의 지방공직자를 보유한 정당의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자기부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대표인 노회찬 의원이 들고나온 건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다. 노 의원은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하면서 그 사회의 국가모델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노동과 복지와 관련된 총체적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너무나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파편적인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며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점검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정책이나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예외없이 사회민주주의의 경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자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의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참여계의 천호선 최고위원처럼 내부의 역량을 제고하자는 신중론이 대표적이다. 사민주의 자체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반론 또한 유력하다. 정책 쪽에서 일하는 한 당직자는 “사민주의 논의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나온 얘기다. 영국 노동당을 롤 모델로 주장했지만, 당시 반향은 적었다”고 말한다. 외부의 시선 “너무 한가해 보인다” 지난달 초 진보정의당에서 연 집담회에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민주당이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성 실천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 것에 비한다면, 새누리당이 천막당사라도 치듯 변화를 위해 몸부림쳐야 할 것 같은데, (평론가 집단의 진단처럼) 너무들 한가하고 편안해 보인다”며 “책임윤리의 측면에서 진보정의당은 민주당보다 못하다고 말한다고 해도 반박하기 어렵다”고 날을 세운다. 박 대표의 다소 가혹해 보이는 듯한 비판은 그나마 애정이 담긴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적은 무관심이다. 다시 쌍용차 사태를 말하자면 진보정의당의 실책을 탓하는 언론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앞으로 또 5년 동안, 익숙해지는 것에 대한 성찰이 더욱 필요할 듯. 소중한 것에 익숙해지면 소홀히 하기 쉬운 한편, 부정적인 것에 익숙해지면 더 부정적인 걸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오늘의 야만적인 교육 현실의 궤적이 그랬듯이.”(지난해 12월26일 진보신당 전 대표 홍세화 트위터 @hongshenx) 진보신당은 2월1일 새 당 대표를 선출하지만 당원을 제외하고 이에 관심을 갖는 시선은 드물다. 김현우, 이용길, 금민이라는 후보의 존재에 대해 언론은 외면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당시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던 진중권 교수나, 2009년 용산참사 현장을 지키던 진보신당의 칼라TV 카메라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진보신당이 왜 관심에서 멀어졌는지 궁금할 것이다. 통합을 주장하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을 비롯한 명망가들을 떠나보냈고, 당을 추슬렀다. 여전히 1만5천여명의 당원이 있고, 당비를 납부하는 당권자도 7천여명이다. 7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진보정의당도 부럽지 않다. 여전히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의 현장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만큼은 진보신당 당원들의 활약을 무시하지 못한다. 녹색당. 지난해 4·11 총선에서 10만3811명의 표를 얻었다. 지난 1월15일 기준 당비를 납부하고 있는 5300명의 당원.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그리고 20대 당원이 전체 13%다. 당헌에 따라 모든 조직의 위원장은 남녀 같은 수로 구성한다. 지난 30일 쌍용차 여야협의체를 제안하기 전 민주당 한 당직자는 기자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진보정당 쪽에서 쌍용차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원내 127석의 거대 야당이 여전히 진보정당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진보정당이 어디에 기반하고 다시 살아나야 하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지난달 말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내년 지자체 선거나 3년 뒤 총선에서 진보정당과의 관계를 다시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불쑥 꺼냈다. 타협의 지점을 찾지 못해 수백표 차이로 여당에 자리를 내준 쓰린 경험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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