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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태생설·오너설·발병설 분분…깨져봐야 바뀔까

등록 2013-03-15 21:04수정 2013-03-16 10:49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 셋째)와 이한구 원내대표(오른쪽 셋째) 등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대표단의 회동을 위해 청와대 비서진과 함께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 셋째)와 이한구 원내대표(오른쪽 셋째) 등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대표단의 회동을 위해 청와대 비서진과 함께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토요판] 뉴스분석 왜?/ 여당 업신여기는 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원이다. 새누리당 당헌 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요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완전히 따로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대통령은 왜 새누리당을 무시하는 것일까?

아버지에게 제왕학을 물려받아
원래 타협은 잘 모른다는 설
당을 위기 때마다 구했으니
내가 주인이라 여긴다는 설
대통령병은 2년차에 걸리는데
취임하자마자 걸렸다는 설…

정부조직법과 인사 과정 보며
여당은 침묵하고 있지만
불만은 이미 위험수위 넘었다
원조친박 자처하는 의원들이
청와대 앞 시위를 논하는 지경

“저는 앞으로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당과 국회를 중요한 국정의 축으로 삼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긴밀히 상의하고 머리를 맞대겠습니다. 여러분도 국정을 이끄는 한 축으로서 적극 도와주길 부탁합니다.”(박근혜 당선인, 2월6일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황우여 대표를 비롯해 새누리당의 어느 정치인도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 전혀 개입하지 못한다. 친박계인 서병수 총장이 실무자 몇 사람을 추천했다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 바람에 크게 낙담한 것 같더라.”(새누리당 당직자)

“원안대로 통과시켜달라” 사실상 지시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다. ‘다른 정치인의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박근혜의 말은 믿을 수 있다’고 많은 유권자들이 생각했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을 대하는 태도는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수위원회 사람들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만들 때 새누리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법안을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시켜 달라는 사실상의 지시를 받았을 뿐이다. 그 뒤 야당과의 협상에서 재량권을 부여받지도 못했다.

인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무총리와 17명의 장관 후보자 중에 ‘새누리당 몫’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진영·조윤선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발탁한 ‘박근혜의 사람’으로 봐야 한다. 청와대의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수석,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도 ‘새누리당 사람’이 아니라, ‘박근혜의 사람’들이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확실히 ‘새누리당 정권’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알파요 오메가다. 새누리당은 없다.

집권 여당의 몫을 배려하지 않는 박근혜 정권의 인사는 역대 다른 정권의 경우와 비교하면 매우 특이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초대 내각에 이해구(내무), 박희태(법무) 등 6명의 정치인을 발탁했다. 디제이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국무총리, 이종찬 안기부장 이외에도 장관 17명 가운데 무려 12명을 정치인으로 채웠다.

정당 기반이 취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초기에는 정치인들을 별로 쓰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천정배(법무), 정동영(통일), 김근태(보건복지), 정세균(산업자원) 등 열린우리당의 거물들에게 장관 자리를 배려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초기에는 정치인 장관을 거의 임명하지 않았는데, 결국 맹형규(행정안전), 전재희(복지), 최경환(지식경제), 유정복(농림수산식품), 정병국(문화체육관광) 등 꽤나 많은 정치인들을 장관직에 앉혔다.

박근혜 대통령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새누리당 사람들을 기용할 수 있다. 그건 두고 봐야 안다. 그런데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밀어붙이기식 임명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의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김병관 장관 후보자를 교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자꾸 묻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어떤 사람이 그 분야를 맡아서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지 대통령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인데, 누가 뭐라고 말한들 생각이 바뀌겠는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장관 인사를 잘못하면 민심 이반이 일어나고 각종 선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비판을 눈곱만치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집권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정치 오래 했지만 정치인은 아니었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무시하는 이유가 뭘까?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본래 그렇다는 ‘태생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의 딸이었기 때문에 정치, 특히 정당정치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다는 설명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지내지 않았는데도 공화당의 총재였다. 그에게 공화당은 정당이 아니라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기구에 불과했다. 따라서 아버지에게 ‘제왕학’을 전수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당정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대 퍼스트레이디 시절 노인들에게 충효사상을 강의하고 다녔다.

박근혜 대통령을 꽤 가까이에서 겪어본 인사들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마워할 줄을 모른다. 누군가 자신에게 충성을 바쳐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절대권력을 체험한 사람만이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절대권력을 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충성을 애국심으로 해석한다. 자신이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은 뭔가 좀 이상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명히 정치인이다. 1998년 보궐선거부터 내리 5선을 지낸 국회의원 출신이다. 상임위원회 활동도 꽤 충실히 했다. 당 대표를 두 차례나 지냈다. 정치와 정당을 모를 수가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 대목에 대한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싸우는 정치인’이다. 이회창과 싸웠고, 노무현과 싸웠고, 이명박과 싸웠다. 강한 남자들과 싸워서 모두 이겼다. 잘 싸우는 정치인이다. 언제나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선거의 여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투쟁보다 절충과 타협이 더 중요하다. 상대방의 진정성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정치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정치를 오랫동안 했지만 사실은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긴 박근혜 대통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눈으로 ‘레이저 광선’을 쏘거나, 안철수 전 교수에 대해 집요한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병 걸렸어요?”라고 쏘아붙이는 등 가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태생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준다.

둘째, 새누리당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오너설’이 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고 강한 역풍을 맞았다. 4·15 총선에서 100석 이하로 주저앉을 위기에 처했다. 박근혜 의원이 대표를 맡아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박근혜 대표 덕분에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회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총선을 치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런 회고를 했다.

“딱 세 가지를 주문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였다. 박근혜 대표는 시키는 대로 했다. 엄청난 강행군을 군말 없이 소화했다. 악수를 하도 많이 해서 오른손에 탈이 났고 붕대를 감아야 했다. 붕대가 좀더 잘 보일 수 있도록 한 바퀴 더 감는 게 어떠냐고 요구했지만 박근혜 대표가 거절했다. 가식은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근혜 대표가 아니었으면 한나라당은 주저앉았을 것이다.”

2011년 말 한나라당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박희태 국회의장의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한나라당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8년 만에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다급해진 한나라당 지도부는 당헌·당규를 고쳐 박근혜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앉히고 전권을 부여했다. 박근혜 위원장은 당명을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는 승부수를 걸었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했다.

당을 한 번 구하기도 힘든데,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정당을 두 번씩이나 구한 것이다.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고위 당직을 지낸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2012년 총선에서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수도권과 부산·경남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상당수가 낙선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해 오너 의식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너는 사원들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10·2 공화당 항명파동’ 재현되는가

셋째, ‘발병설’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예외없이 걸렸던 대통령병 증상이 조기에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 걸리는 대통령병은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걸리는 대통령병과 종류가 전혀 다른 질병이다.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집권 여당은 안중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미국의 대통령에 비해 훨씬 큰 권한을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하지 않은 수많은 권한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힘의 원천은 청와대라는 독특한 권력기관의 존재, 그리고 정보의 독점 두 가지다. 우리나라 고유의 대통령중심제라는 제도 자체가 질병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 실세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은 이런 회고를 했다.

“대통령이 되면 처음엔 겸손하게 시작한다. 그런데 1년쯤 지나 국정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면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때부터 대통령이 오버하기 시작하고 국정은 위험해진다.”

역대 대통령 중에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소속 정당과 당원들에게 신세를 크게 지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립정부였다. 따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출발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다르다. 본래 ‘대통령의 딸’이었다. 또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태생’과 ‘오너 의식’이 대통령병을 조기에 발현시켰을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새누리당 안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점점 두텁게 쌓여가고 있다.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정권 초기에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석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원조친박을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이 기자들에게 “지금처럼 일방주의적 국정운영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청와대 앞에 가서 시위를 할 수도 있다”고 할 정도다. 불만의 요체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인사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을 너무 무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권 초기 인사에서 밀려난 ‘친박’들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을까?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새누리당 사람들의 진단이다. 친박 성향의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천천히 바뀌는 사람이다. 경험주의자다. 자기가 직접 해보고 깨져야 그다음에 바뀔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하게 임명한 장관이 문제를 일으키면 야당이 국회에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 현재 국회 의석은 새누리당 152, 민주통합당 127, 통합진보당 6, 진보정의당 6, 무소속 6이다. 여당 의원들 중 10명만 야당에 가세하면 해임건의안은 가결된다.

1971년 10월2일 야당이 낸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일부 공화당 의원의 가세로 가결됐다. 이른바 ‘10·2 공화당 항명파동’이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를 시켜서 국회의원들을 남산 지하실로 끌고 가 두들겨팼다. 야만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2013년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그런 중앙정보부가 없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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