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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론만 따랐는가

등록 2013-03-29 20:27수정 2013-03-29 22:12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민주당 의원 15명, 자격심사의 자격을 묻다

▶ 김관영 박기춘 박범계 박수현 부좌현 서영교 신장용 우원식 유기홍 윤관석 이상직 이언주 이윤석 정호준 한정애. ‘국회의원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에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린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 15명입니다. 민주당과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속한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총선까지만 해도 야권연대 짝이었습니다. 이들 15명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니 ‘자격심사’의 자격은 있는 걸까요. 한겨레가 직접 물어봤습니다.

“앞으로 두고 보시면 우리가 의도한 게 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크게 만드는 거 아닙니까. 이미 이뤄진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오히려 여야가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이 안 돼요.”(박기춘 원내대표)

“그 문제(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논란)에 관심을 가진 적 없습니다. 원내부대표들이 일괄 서명하니까 참여한 겁니다.”(부좌현 원내부대표)

“내가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논란) 관련자도 아니고, (검찰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 때문에 수사했는지 이런 거 잘 모릅니다.”(이상직 원내부대표)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무혐의 처분한 검찰 수사 결과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도저히 확인할 방법이 없더란 말입니다. 기자님들은 어떻게 파악하고 계십니까?”(신장용 원내부대표)

“검찰이 무혐의 한 거 아니냐…, 그건 검찰이 수사를 잘못한 거죠.”(유기홍 원내부대표)

이석기·김재연 두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 발의 사태’가 빚어진 지 29일로 일주일이 됐다. 그 일주일간, 새누리당 의원 15명과 함께 자격심사 발의안에 이름을 올린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단 소속 의원 15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주로 이런 발언을 내놓았다. 요약하면, ‘당이 하니까 같이 했다’ ‘두 사람이 자격심사 대상이 되는지 잘 모른다’ 등이다. “검찰이 입장정리를 분명히 해줘야 한다”거나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지난해 11월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에게 혐의가 없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두 의원 자격심사안을 제출하며 정작 심사의 이유와 그 정당성에 관한 기본적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지난 22일 ‘국회의원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을 제출하자, 통합진보당은 25일 자격심사 청구자로 나선 여야 국회의원 30명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는 것으로 맞섰다. 자격심사안을 제출한 이들 여야 국회의원이 “고소인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부정경선’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자격심사 청구안에)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 발의를 주도한 것은 분명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19대 국회 개원 당시부터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을 시도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선거 시비를 빌미로 두 의원을 내쫓고자 했다. 보수 언론은 두 의원을 ‘종북’으로 몰며 새누리당을 부추겼다. 두 의원에게는 ‘부정선거의 배후’, ‘골수 종북’ 등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이석기·김재연 제명 요구를 외면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두 당의 이번 자격심사안 발의와 관련한 통합진보당의 분노는 주로 민주당 쪽으로 향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자격심사를 빌미로 ‘종북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겠다고 나서는데도, 지난 17일 자격심사안 공동발의 약속을 통해 두 의원을 사상검증의 ‘심판대’ 위에 세운 민주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통합진보당의 태도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총선 당시 야권연대의 짝이었다.

<한겨레>는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 발의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 15명 전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15명의 의원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은 ‘이석기·김재연 두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 발의는 정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 결과를 알고 있습니까’ ‘두 의원의 대북관 및 안보관은 자격심사 대상에 포함됩니까’ ‘자격심사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면 찬성(자격박탈)할 계획입니까’ 등 모두 4개였다. 15명 가운데 자격심사안 발의 직후 제128차 국제의원연맹(IPU) 총회 참석을 이유로 남미 에콰도르로 출국한 윤관석, 한정애 의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두 의원은 30일 오전 귀국할 예정이다.

발의는 정당했나 
“정당성 따지면 곤혹스러워…
새누리당에 밀렸고
불가피한 측면 있어…
그냥 총대 멘 건데…
개인 양심 문제로 물으면
답하고 싶지도 않아”

검찰 수사 결과 알았나
<한겨레> 인터뷰 시점까지도
수사결과와 그 의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의원들 많아
“검찰이 입장 정리하라”는
엉뚱한 답변을 한 의원도

■ 발의는 정당했나

‘내키지 않았지만, 여야 합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자격심사안 발의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원내부대표단이었던 우리 15명은 총대를 멘 것이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 발의에 참여한 민주당 소속 의원 15명은 자격심사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에 대체로 이렇게 입을 모았다. 두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가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두 당이 ‘원래 하기로 했던 것’이었고, ‘민주당도 약속했던 것’이었므로 민주당을 대표해 발의안에 서명했다는 설명이다.

법조인 출신의 김관영 의원은 지난 2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여야가 합의한 사안이고 어쨌든 그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발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부좌현 의원은 “정당성을 따지면 곤혹스러운데, 당연히 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정부조직법 협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세게 나오고 이걸 매듭짓지 않으면 전체 협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영교 의원은 “새누리당 쪽에서 강력히 요구해서 밀렸던 감이 없지 않다”고, 이윤석 의원은 “그 사람들(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대표로서 당론에 따른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모든 당론은 옳고, 그렇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일까. 부당한 당론이라면 맞서야 하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 유기홍 의원은 “때로 당론이 부당할 수 있는데 올바른 방향으로 사람들을 강제해왔던 면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당의 입장에 따른 걸 자꾸 이렇게 개인들의 양심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별로 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영교 의원은 “(당론보다) 자신의 소신에 따라 문제제기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맞다. 만약 이번 자격심사안이 종북에 대한 검증이었다면 우리도 끝까지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으니, 오히려 (부정선거 시비를) 털고 갈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통합진보당이 아쉽다. 새누리당은 계속 우리를 향해 ‘왜 종북을 감싸느냐’고 압박하는데 자격심사안 발의 합의했을 때 통합진보당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등 강력 대응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느냐.”

자격심사가 통합진보당을 위해 오히려 필요했다는 주장이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경선부정 의혹 때문이라면 자격심사는 부당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건 맞는 이야기”라면서도 자격심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유는 역시 ‘통합진보당을 위해서’였다.

“(두 의원의) 자격을 박탈할 만한 확정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자격심사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들의 인식이다.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건이 국민적 지탄을 받지 않았나. 그 일 때문에 분당 사태까지 빚어져 국민들에게 지금의 통합진보당은 ‘악의 화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찰의 법률적 판단은 있었지만 국민적 판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 자꾸 묻어놓으려고만 하지 말고 아예 까놓고 따져보면, 그게 통합진보당도 누명을 벗는 길 아니겠는가.”

서영교·우원식 의원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새누리당 등이 지난 22일 함께 제출한 자격심사안의 ‘주문’과 충돌한다. 자격심사안은 그 들머리에서 이렇게 못박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64조 2항 및 국회법 제138조(자격심사의 청구)에 의거하여, 국회의원 이석기·김재연은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자격심사가 통합진보당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한 것이라는 민주당 쪽 주장과 달리 심사안은 두 통합진보당 의원의 ‘자격 박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은 자격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견해도 있었다. 민주당 법률위원장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 및 자격심사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범계 의원은 “국회의원 되는 과정에 불법이 있었고 그것이 국회의원 당선 여부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건 자격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출신 이언주 의원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두 당이 이미 지난해 6월 19대 국회 개원에 합의하며 비례대표 경선부정 의혹과 관련한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 처리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들어 자격심사안 발의의 불가피성을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지난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엄청난 부정이 저질러졌고, 이에 따라 두 당이 자격심사안 발의를 함께 약속했다. 당시 이런 사실을 언론과 국민도 모르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그때 합의한 사항을 이행한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건 궤변이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격심사 발의는 지난해 원 구성 당시 이미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곧바로 본회의 처리를 요구한 새누리당에 맞서 국회 윤리위원회에서 먼저 다루기로 하는 등 심사 강도를 많이 낮춰 여기까지 왔다. 저쪽(새누리당)에서는 그렇게라도 합의를 지키라고 하는데, 계속 묵살하기에는 부담이 컸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원내수석부대표인 우원식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과의 정부조직법 협상을 담당했다. 자격심사안 발의 합의에 대한 최종 책임을 져야 할 박 원내대표는 자격심사 논란과 관련해 “이미 이뤄진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여야가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며 오히려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정호준 의원은 자격심사 발의의 정당성을 묻자 “내가 정당하지 않은 것을 발의했다는 건가. 그런 질문은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석기(오른쪽 두번째)·김재연(오른쪽 세번째) 통합진보당 의원이 자신들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다루기로 합의한 이한구 새누리당,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고소하기 위해 18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이석기(오른쪽 두번째)·김재연(오른쪽 세번째) 통합진보당 의원이 자신들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다루기로 합의한 이한구 새누리당,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고소하기 위해 18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 검찰 수사 결과 알았나

새누리당 등이 제출한 자격심사안의 ‘자격심사 사유’를 보면 자격심사를 벌이는 근거는 ‘미투표 현황 부정 취득’ ‘동일 아이피 중복투표’ ‘대리투표와 같은 절차적 하자’ 등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6월 한창 뜨거웠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건, 그리고 지난 17일 여야의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 발의 ‘재합의’ 사이에는 검찰의 통합진보당 수사가 있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15일 같은 해 3월 치러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과 관련한 7개월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애초 수사의 핵심 대상이었던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두 사람 당선은 경선부정 의혹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검찰도 인정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 요구에 응한 민주당 의원 15명은 검찰의 이런 수사 결과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민주당 법률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의 말이다.

“자격심사를 청구한 뒤 문제가 커지자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경선부정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모두 입수해서 살펴봤다. 자료를 보니까 김재연 의원은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무관했다.

그동안 다른 정당 일이라 (신문) 헤드라인만 봤으니 심사안을 청구한 뒤에야 안 것이다. 이석기 의원도 문제가 되는 동일 아이피 중복투표 등을 모두 무효로 한다고 해도 당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심사는 앞으로 해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선거 논란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 경선부정을 이유로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를 하자고 합의해놓고, 정작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라 할 수 있는 검찰 수사 결과는 뒤늦게 파악했다는 이야기다.

자격심사안에 이름을 올린 민주당 의원 가운데 한겨레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까지도 검찰 수사 결과와 그 의미를 전혀 모르는 의원도 많았다. 부좌현, 이상직, 이윤석 의원은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혹은 “(검찰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 때문에 수사했는지 잘 모른다”, “깊이 있게 모른다”고 답변했다. 신장용 의원은 “검찰 수사가 종결된 건지, (이석기·김재연 의원) 무혐의가 확실한 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검찰이 분명히 입장정리를 해줘야 한다”며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김관영, 박수현 의원은 “검찰 수사 발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에게 혐의가 없다는 부분은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국회 개원을 할 때부터 새누리당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 당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광범위한 부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11월 검찰 발표를 보니 그렇지는 않았던 것 아니겠나. 새누리당 의원에게도 이런 사정이 정확히 주지가 안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언주 의원은 검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자격심사의 필요성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는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이 직접 부정경선에 개입해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 하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462명이 기소될 만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광범위한 부정경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부정경선이 드러나며 엄청난 폭력사태 등도 빚어졌는데 이런 행태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는 면에서도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태흠(오른쪽)·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자격심사 청구안을 접수시키고 있다. 청구안은 새누리당 의원 15명과 민주통합당 의원 15명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태흠(오른쪽)·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자격심사 청구안을 접수시키고 있다. 청구안은 새누리당 의원 15명과 민주통합당 의원 15명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상검증으로 흐를 가능성

통합진보당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가 부정경선 논란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상 검증의 수단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25일 통합진보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색깔론으로 (통합)진보당을 제거하려는 그들의 속내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자격심사안 발의에 이름을 올린 여야 의원 30명을 싸잡아 비판했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22일 자격심사안 발의를 계기로 이미 종북 논란에 불을 댕겼다. 이날 대표발의자로 나선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히틀러의 나치당은 독일에서 소수 극렬집단에 불과했지만 의석을 차지한 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런 우려를 하는 이유는 우리 국회 안에 김정은과 북한을 공공연히 두둔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통합진보당의 종북적 행태가 당장 중단되지 않으면 국회는 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자격심사 발의를 앞둔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필요성을 강조하며 “통합진보당이 국회의 북핵 규탄 결의에 불참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유감을 표했다. 북한이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데 통합진보당은 안보위기 책임이 북한이 아닌 미국과 우리 정부에 있다면서 북한 감싸기로 노골적으로 종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북관도 심사 대상인가
새누리당이 의도하는
사상검증엔 대다수가 반대
경선부정이 초점이라면서
종북논쟁은 차단하라는 입장
‘매카시즘’ 빗대 비판도

국회 본회의 처리되나
국회 윤리특별위 거친 뒤
본회의 상정돼 2/3 찬성하면
두 사람은 의원직 잃게 돼
“통과되지 않을 것”의견에
일부는 “심사 지켜본 뒤 판단”

새누리당이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를 계기로 종북 논란 등 사상 검증 의도를 보이는 데 대해 자격심사안 발의에 참여한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반대의 뜻을 보였다. 서영교 의원은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태흠 의원이 통합진보당의 “종북적 행태”를 거론할 때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김 의원 발언을 “매카시즘”에 빗대 비판한 바 있다. 서 의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도 “종북몰이에 합의한 것이 아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대북관 및 안보관 검증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박범계 의원은 이와 관련해 26일 보도자료를 내어 “이번 자격심사안은 비례대표 경선부정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른바 종북의 ‘종’자도 나오지 않았고, 좌파의 ‘좌’자도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번 자격심사 절차에서 종북 논쟁, 더 나아가 사상 검증을 할 추호의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의 ‘사상 검증’ 반발과 새누리당의 종북 공세를 동시에 차단하고자 했다는 것이 박 의원의 설명이다.

“새누리당은 적어놓기는 비례대표 부정경선이라고 해놓고 실제로 종북논쟁 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새누리당 의도가 그렇다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거기에 휩쓸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단히 강하게 못박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서 통합진보당에서 자꾸 ‘매카시즘’ ‘사상 검증’ 이러고 (새누리당에) 박자를 맞춰주니 논란이 커지는 거다.”

우원식 의원은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가 사상 검증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은 민주당의 몫이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새누리당은 지지층을 향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지만 자격심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가 나서서 논쟁이 그쪽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자격심사안 처리와 관련해 종북 논란이 불거진다면 앞장서서 막겠다는 민주당의 다짐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참고로 이번 자격심사안 발의와 관련해 한겨레와 인터뷰한 의원들은 이런 말을 했다.

“지난해 이미 여야간 합의를 해놓은 자격심사안 발의를 계속 미루면 새누리당은 ‘너희들이 종북주의자를 감싸는 거냐’고 압박해 왔다. 우리로서는 계속 그런 딜레마가 있었다.”(서영교 의원)

“새누리당은 자격심사 안 받아주면 ‘약속했으니 지켜라’ ‘(민주당이) 종북 세력 비호한다’고 언론에 떠들어댔다. 민주당만 그것 때문에 계속 상처를 받아온 것 아닌가.”(우원식 의원)

한편 이상직 의원은 자격심사안과 관련한 새누리당의 사상 검증 공세에 대해 “이번 자격심사에 (종북 논란은) 안 들어가 있다고 하던데,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언주 의원은 “국회의원이라도 안보관 등에 문제가 있다면 국민은 그들의 국회의원 자격에 의문을 품을 수는 있지만, 그런 부분은 다음 총선 때 국민들이 표로 심판해야지 우리가 직접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회 본회의 처리전망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은 앞으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거친 뒤, 여기서 통과되면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전체 299명 국회의원 가운데 3분의 2인 200명이 찬성하면 두 사람은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강하게 요구해온 새누리당 전체 의원 152명이 ‘가결’(자격 박탈)을 선택한다 해도 약 50명이 더 넘어와야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다.

자격심사안 발의 직후 통합진보당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발의안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청구가 처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격심사 논란과 관련해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해서 처리하겠다는 걸 자꾸 이러면 오히려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오히려 논란을 소개하는 언론에 대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크게 만들고 있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자격심사안 발의에 참여한 다른 의원들도 심사안이 본회의까지 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았다. 유기홍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심사안이 윤리위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신장용 의원은 “예를 들어 그분들이 무혐의를 확실히 입증할 수만 있다면 본회의에 상정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수현 의원은 자격심사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해도 “찬성표를 던질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 전개될 자격심사 과정을 보며 최종 입장을 결정하겠다는 답변도 있었다. 이상직 의원은 “자격심사 보고서가 올라오면 이를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석 의원도 “본회의에 상정된다면 자격 박탈 쪽에 찬성표를 던지겠냐”는 질문에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설명을 들어보고 당론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부좌현, 이언주 의원은 자격심사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면 비례대표 당선과 부정경선의 인과관계 등을 따져 찬반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부 의원은 “심사 과정에서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과 당선 과정, 검찰 수사 결과 등은 물론 당사자 반론까지 모두 들어본 뒤 모든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찬반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언주 의원은 “자격심사를 하는 것 자체가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심사 결과 부정경선이 광범위했고, 실제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이 나오면 과연 입장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김관영 의원은 “노코멘트”라며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최성진 최우리 윤형중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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