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박근혜 대통령
from 곽병찬 기자
님께, 하필 이 계절에! 엊그제 바람은 거칠고 비는 심란했습니다. 게다가 추위까지 겹쳤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입니다. 오늘 햇살은 화창했지만, 남녘의 꽃대궐은 꽃무덤으로 무너진 뒤이니 무슨 소용이랍니까. 매화, 벚꽃, 목련 등 하늘 가득 눈부시던 그 보람은 이제 흔적도 없으니, 이제 춘망(春忘)의 봄입니다. 그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었는데…. ‘선운사에서’ 최영미 시인이 아파하던 것이, 우리의 애상이 되었습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별리의 아픔을 이렇게 담담하게 털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가슴을 쳐도 시원찮을 텐데, 잊는 것 또한 순간이었으면 좋겠다니. 님이라면 어떠했을까 궁리해봅니다. 청년 시절, 천년왕국의 공주에서 졸지에 몰락한 왕조의 이끼처럼 살아야 했으니, 그런 한갓된 애상이란 비집고 들 틈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지도 못하고, 열 수도 없는 얼음공주가 되어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황지우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에서) 싶은 건 시인의 바람만은 아닐 겁니다. 창문이 꼭 닫혔다고 봄바람, 꽃향기가 스미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구중궁궐 규중심처의 닫힌 마음에도 연분홍 봄은 피어나겠지요. 우리 시인의 최고의 애창곡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봄날은 간다’랍니다. 10년 전 시 전문 문예 계간지 <시인세계>가 내로라하는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조용필, 장사익, 한영애, 최백호 등 당대 최고의 가객들이 앞다퉈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불렀던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었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건 원전인 백설희씨 버전입니다. 님께서도 모를 리 없겠죠.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는 노랫말에 가슴 한구석 무너지던 청춘의 한때가 없었다면 국적을 의심해야 합니다. ‘선운사에서’는 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전혀 다른 색상, 디자인, 그리고 의미를 가진 옷 두 벌을 제공합니다. 하나는 국민 공통의 애상에 안성맞춤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님께서 앉아 있는 권좌에 딱 어울리는 복색입니다. 최 시인이야 꿈도 안 꿨겠지만, 시 속의 꽃을 권력으로 바꿔 읽으면 그 정체는 곧 드러납니다. ‘피기는 오래여도 시드는 건 잠깐’인 것이 권력입니다. 꽃과 권력, 속성이야 전혀 다르지만, 세상을 현혹하는 눈부심이야 같습니다. 다만 권력은 무죄한 꽃을 함부로 꺾으려 합니다. 그 힘을 과신하는 탓에 곧 저무는 제 운명을 쉬이 망각합니다. 꽃의 짐을 두고는 아름다워 슬퍼하지만, 권력의 몰락을 두고는 역겨워 침 뱉는 까닭도 여기에 있겠지요. 기억하십시오. ‘임기’(5년 단임)를 말입니다. 권력의 힘에 도취돼 천지의 뜻을 거슬렀던 이들이 맞았던 운명을 님은 잘 아실 겁니다. 주인 없는 주검이 되어 객지를 떠돈 이도 있었고, 제 수족들에 의해 피투성이 주검이 된 이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낫지만, 퇴임과 함께 감옥으로 직행하거나, 입창 대기자처럼 전전긍긍하는 이도 있습니다. 허투루 관리하다가 퇴임하기도 전 혹은 퇴임과 함께 패가망신하거나 폐족의 신세가 된 이도 있습니다. 이런 불행은 안타깝게도 전임자들 모두에게 예외가 없었습니다. 천주교 대구교구 성직자 묘역 입구엔 이런 경구가 걸려 있습니다. 양쪽 기둥엔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가로 현판엔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내가 이렇게 누워 있듯이 내일은 네가 눕게 될 것인즉,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순명하라는 뜻이겠지요. 하물며 성직자에게도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는데, 권력자에게 머잖은 퇴임을 기억하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배를 띄우는 건 물이고, 권력을 띄우는 건 국민입니다. 꽃이 지듯 권력 또한 진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국민과 그 신뢰에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작업’을 걸겠다고 한 편지가 훈계조로 흘렀습니다. 난데없는 비바람에 꽃비 쏟아지듯, 난데없는 남북간의 끔찍한 말폭탄에 흉흉해진 시절 때문에 걱정 한 자락 펼친 것이니 해량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꽃샘만 지나면 청와대에도, 님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목련부터 시작해 왕벚과 산벚 따위가 만개하겠죠. 그야말로 꽃대궐이 되겠지만, 함께 즐길 이 없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겁니다. 그럴 때면 북촌 쪽에 올라 청와대 비탈을 바라보십시오. 님의 거처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국민의 관심과 기대는 얼마나 큰지 느껴보십시요. 그분들을 마음속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과 함께하십시오. 그들을 잊었던 전임자들이 겪은 여러 비극도 함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수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이렇게 끝맺습니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추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5년 뒤 그런 추억을 기대하며, 한번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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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 하필 이 계절에! 엊그제 바람은 거칠고 비는 심란했습니다. 게다가 추위까지 겹쳤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입니다. 오늘 햇살은 화창했지만, 남녘의 꽃대궐은 꽃무덤으로 무너진 뒤이니 무슨 소용이랍니까. 매화, 벚꽃, 목련 등 하늘 가득 눈부시던 그 보람은 이제 흔적도 없으니, 이제 춘망(春忘)의 봄입니다. 그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었는데…. ‘선운사에서’ 최영미 시인이 아파하던 것이, 우리의 애상이 되었습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별리의 아픔을 이렇게 담담하게 털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가슴을 쳐도 시원찮을 텐데, 잊는 것 또한 순간이었으면 좋겠다니. 님이라면 어떠했을까 궁리해봅니다. 청년 시절, 천년왕국의 공주에서 졸지에 몰락한 왕조의 이끼처럼 살아야 했으니, 그런 한갓된 애상이란 비집고 들 틈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지도 못하고, 열 수도 없는 얼음공주가 되어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황지우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에서) 싶은 건 시인의 바람만은 아닐 겁니다. 창문이 꼭 닫혔다고 봄바람, 꽃향기가 스미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구중궁궐 규중심처의 닫힌 마음에도 연분홍 봄은 피어나겠지요. 우리 시인의 최고의 애창곡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봄날은 간다’랍니다. 10년 전 시 전문 문예 계간지 <시인세계>가 내로라하는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조용필, 장사익, 한영애, 최백호 등 당대 최고의 가객들이 앞다퉈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불렀던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었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건 원전인 백설희씨 버전입니다. 님께서도 모를 리 없겠죠.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는 노랫말에 가슴 한구석 무너지던 청춘의 한때가 없었다면 국적을 의심해야 합니다. ‘선운사에서’는 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전혀 다른 색상, 디자인, 그리고 의미를 가진 옷 두 벌을 제공합니다. 하나는 국민 공통의 애상에 안성맞춤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님께서 앉아 있는 권좌에 딱 어울리는 복색입니다. 최 시인이야 꿈도 안 꿨겠지만, 시 속의 꽃을 권력으로 바꿔 읽으면 그 정체는 곧 드러납니다. ‘피기는 오래여도 시드는 건 잠깐’인 것이 권력입니다. 꽃과 권력, 속성이야 전혀 다르지만, 세상을 현혹하는 눈부심이야 같습니다. 다만 권력은 무죄한 꽃을 함부로 꺾으려 합니다. 그 힘을 과신하는 탓에 곧 저무는 제 운명을 쉬이 망각합니다. 꽃의 짐을 두고는 아름다워 슬퍼하지만, 권력의 몰락을 두고는 역겨워 침 뱉는 까닭도 여기에 있겠지요. 기억하십시오. ‘임기’(5년 단임)를 말입니다. 권력의 힘에 도취돼 천지의 뜻을 거슬렀던 이들이 맞았던 운명을 님은 잘 아실 겁니다. 주인 없는 주검이 되어 객지를 떠돈 이도 있었고, 제 수족들에 의해 피투성이 주검이 된 이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낫지만, 퇴임과 함께 감옥으로 직행하거나, 입창 대기자처럼 전전긍긍하는 이도 있습니다. 허투루 관리하다가 퇴임하기도 전 혹은 퇴임과 함께 패가망신하거나 폐족의 신세가 된 이도 있습니다. 이런 불행은 안타깝게도 전임자들 모두에게 예외가 없었습니다. 천주교 대구교구 성직자 묘역 입구엔 이런 경구가 걸려 있습니다. 양쪽 기둥엔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가로 현판엔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내가 이렇게 누워 있듯이 내일은 네가 눕게 될 것인즉,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순명하라는 뜻이겠지요. 하물며 성직자에게도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는데, 권력자에게 머잖은 퇴임을 기억하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배를 띄우는 건 물이고, 권력을 띄우는 건 국민입니다. 꽃이 지듯 권력 또한 진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국민과 그 신뢰에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작업’을 걸겠다고 한 편지가 훈계조로 흘렀습니다. 난데없는 비바람에 꽃비 쏟아지듯, 난데없는 남북간의 끔찍한 말폭탄에 흉흉해진 시절 때문에 걱정 한 자락 펼친 것이니 해량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꽃샘만 지나면 청와대에도, 님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목련부터 시작해 왕벚과 산벚 따위가 만개하겠죠. 그야말로 꽃대궐이 되겠지만, 함께 즐길 이 없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겁니다. 그럴 때면 북촌 쪽에 올라 청와대 비탈을 바라보십시오. 님의 거처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국민의 관심과 기대는 얼마나 큰지 느껴보십시요. 그분들을 마음속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과 함께하십시오. 그들을 잊었던 전임자들이 겪은 여러 비극도 함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수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이렇게 끝맺습니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추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5년 뒤 그런 추억을 기대하며, 한번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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