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경제 제재 관련 발언
전후 맥락을 모두 잘라내고
일부만 발췌해 본질을 왜곡
“고립 자초 자주 할수없다
세계현실에 북 발들여야“ 말도
전후 맥락을 모두 잘라내고
일부만 발췌해 본질을 왜곡
“고립 자초 자주 할수없다
세계현실에 북 발들여야“ 말도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일을 두고 미국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번에 비디에이는 미국의 실책입니다. … 미국의 실책임에도 북측의 돈을 받으라 하니까, 어느 은행도 안 받겠다 하는 것 아닙니까(38쪽). 비디에이 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46쪽)”라고 말했다.
그런데 발췌본에 포함되지 않은 대화록의 38~39쪽 전체를 보면, 노 대통령의 이런 이야기가 미국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국제관계의 현실을 설명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발췌본은 이런 전후 맥락을 모두 잘라내고 미국 비판 발언만 발췌함으로써 발언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발췌본에 포함되지 않은 대화록을 보면, 노 대통령은 “미측이 현실적인 힘이고, 그 돈(북한 돈) 받았다가 은행 거래가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하면 은행을 못해먹을 판이 되니까 중국도 발 빼고, 심지어 미국 중앙은행을 거친 돈조차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 경제에서의 현실이거든요. … 우리도 그런 점에서 자주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구요(38쪽). …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들이…(39쪽)”라고 말했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한국과 함께 한반도 경제권을 건설하고 세계 경제 속에 들어와야 한다고 김 위원장을 설득했다. 노 전 대통령은 39쪽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할 수 없는 것이다. … 한반도가 7천만 경제권을 가지고, 동북아시아에 실제 중심을 잡는 이런 위치에 가자면… 교역을 활발하게 안 할 수 없는 애로가 있다. … 이와 같은 세계 경제의 현실 속에 북측도 함께 발을 들여야 (한다). 시장에는 발을 디뎌야지 안 디디고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미국의 비디에이 북한 계좌 동결은 실책이라는 발언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네오콘들이 벌인 이 사건은 오랜 6자회담의 결과로 2005년 합의된 ‘9·19 공동성명’을 휴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성명은 △북한의 핵무기 파기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공격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복귀 △북-미 간의 신뢰 구축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등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합의 다음날인 9월20일 비디에이 북한 계좌 동결을 발표했고, 이에 북한이 반발함으로써 이 합의는 깨졌다. 북한은 2006년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까지 했고, 미국은 2007년에야 이 계좌를 풀어줬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9년 5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9·19 공동성명 당시) 북한도 미국과 관계 개선을 계속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네오콘들이 (이 합의를) 뒤집어엎고, 방코델타아시아 문제 등으로 1년이 걸렸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낸 바 있다.
김규원 송채경화 기자 ch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