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13일 국민원로와의 청와대 오찬에서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맨 왼쪽)과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7월16일 국방부는 백 전 총장의 이름을 딴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했다. 그는 과거 일본이 세운 만주국에서 항일운동가를 토벌한 전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커버스토리 끝나지 않은 귀태의 시대
해방 전엔 조선인 토벌한
간도 특설대의 장교였지만
해방 뒤엔 화려하게 부활해
남로당원으로 사형 선고받은
박정희의 은인이 되기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그는 더더욱 추어올려진다
‘백선엽 한미동맹상’과 함께
‘백선엽 군복’은 문화재 예고 강상중 교수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맺음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시대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이 두 사람을 안내자로 만주국과 그 후의 역사를 살펴보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강 교수는 ‘귀태’라는 표현에 대해 “귀태라는 용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 등)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이라기보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 군국주의 체제와 그 결과물로서의 만주국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라고 강조했지만, <기시 노부스케…>에서는 필요에 따라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만주국 인맥을 직접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귀태를 썼다. 또 한·일 두 나라에 뿌리내리고 있는 만주 인맥에 대해서도 제4장 1절 ‘되살아나는 귀태들’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강 교수가 ‘되살아나는 귀태들’에서 소개한 만주 인맥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백선엽(92) 전 육군참모총장이다. 백 전 총장은 1940년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한 뒤, 1943년 4월부터 해방 때까지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만주국의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거주지였던 간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던 조선인과 중국 팔로군을 토벌하는 조선인 부대였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7일 “조선인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은 가장 죄질이 나쁜 친일 행위”라고 지적했다. 백 전 총장은 이런 전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백 전 총장은 해방 뒤(그에게는 패전 이후)인 1946년 한국군에 입대했다. 그는 만주국에서, 그리고 다시 한국군에서 인연을 맺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1948년 남조선노동당 활동 전력이 적발돼 사형 선고를 받은 박 전 대통령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만주군 선배였던 백 전 총장이었다. 친일 전력의 박 전 대통령과 백 전 총장 등 ‘제국의 귀태’가 해방 뒤 한국에서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기시 노부스케…>는 이렇게 설명했다.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되었다. 미·소 대립이라는 거대한 파워 시프트(권력이동)는 ‘제국의 귀태’들이 새로운 ‘승리자’(미국) 아래에서 소생할 무대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욕으로 뒤범벅이 된 과거의 경력을 지워 없애고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백 전 총장이나 박 전 대통령 등은 단 한번도 친일 행위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았지만, 백 전 총장은 1952년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올랐고, 박 전 대통령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백 전 총장을 ‘전쟁 영웅’으로 기리는 각종 사업도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우선 국방부는 지난 7월16일 ‘백선엽 한미동맹상’ 제정을 강행해 논란을 빚었다. 국방부는 한-미 동맹 60돌을 맞아 두 나라의 동맹 발전에 기여한 미국 인사들에게 매년 이 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하고 미군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이름을 상 앞에 붙였다. 문화재청이 지난 6월21일 ‘백선엽 군복’을 의생활 분야에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이유로 문화재 등록을 예고한 것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등 독립운동가단체 등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문화재청은 백선엽 군복에 대해 “현대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독립운동가단체는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소속으로 항일세력과 직접 교전한 당사자이다. 1920년대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칠가살(처단해야 할 일곱가지 부류) 중 하나로 ‘적의 관리’를 명시했는데 당시 적국 장교인 백선엽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백선엽 군복의 문화재 지정을 반대했다. 강상중 교수는 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백선엽 전 총장이 여전히 한국 보수층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에 대해 “과거 식민지에서 일제에 협력했다는 부정적 사실보다 반공주의에 입각해 북한과 싸운 공로가 더 크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 결정적 이유다. 분단 체제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이런 경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간도 특설대의 장교였지만
해방 뒤엔 화려하게 부활해
남로당원으로 사형 선고받은
박정희의 은인이 되기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그는 더더욱 추어올려진다
‘백선엽 한미동맹상’과 함께
‘백선엽 군복’은 문화재 예고 강상중 교수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맺음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시대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이 두 사람을 안내자로 만주국과 그 후의 역사를 살펴보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강 교수는 ‘귀태’라는 표현에 대해 “귀태라는 용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 등)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이라기보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 군국주의 체제와 그 결과물로서의 만주국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라고 강조했지만, <기시 노부스케…>에서는 필요에 따라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만주국 인맥을 직접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귀태를 썼다. 또 한·일 두 나라에 뿌리내리고 있는 만주 인맥에 대해서도 제4장 1절 ‘되살아나는 귀태들’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강 교수가 ‘되살아나는 귀태들’에서 소개한 만주 인맥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백선엽(92) 전 육군참모총장이다. 백 전 총장은 1940년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한 뒤, 1943년 4월부터 해방 때까지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만주국의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거주지였던 간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던 조선인과 중국 팔로군을 토벌하는 조선인 부대였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7일 “조선인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은 가장 죄질이 나쁜 친일 행위”라고 지적했다. 백 전 총장은 이런 전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백 전 총장은 해방 뒤(그에게는 패전 이후)인 1946년 한국군에 입대했다. 그는 만주국에서, 그리고 다시 한국군에서 인연을 맺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1948년 남조선노동당 활동 전력이 적발돼 사형 선고를 받은 박 전 대통령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만주군 선배였던 백 전 총장이었다. 친일 전력의 박 전 대통령과 백 전 총장 등 ‘제국의 귀태’가 해방 뒤 한국에서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기시 노부스케…>는 이렇게 설명했다.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되었다. 미·소 대립이라는 거대한 파워 시프트(권력이동)는 ‘제국의 귀태’들이 새로운 ‘승리자’(미국) 아래에서 소생할 무대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욕으로 뒤범벅이 된 과거의 경력을 지워 없애고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백 전 총장이나 박 전 대통령 등은 단 한번도 친일 행위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았지만, 백 전 총장은 1952년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올랐고, 박 전 대통령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백 전 총장을 ‘전쟁 영웅’으로 기리는 각종 사업도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우선 국방부는 지난 7월16일 ‘백선엽 한미동맹상’ 제정을 강행해 논란을 빚었다. 국방부는 한-미 동맹 60돌을 맞아 두 나라의 동맹 발전에 기여한 미국 인사들에게 매년 이 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하고 미군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이름을 상 앞에 붙였다. 문화재청이 지난 6월21일 ‘백선엽 군복’을 의생활 분야에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이유로 문화재 등록을 예고한 것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등 독립운동가단체 등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문화재청은 백선엽 군복에 대해 “현대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독립운동가단체는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소속으로 항일세력과 직접 교전한 당사자이다. 1920년대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칠가살(처단해야 할 일곱가지 부류) 중 하나로 ‘적의 관리’를 명시했는데 당시 적국 장교인 백선엽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백선엽 군복의 문화재 지정을 반대했다. 강상중 교수는 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백선엽 전 총장이 여전히 한국 보수층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에 대해 “과거 식민지에서 일제에 협력했다는 부정적 사실보다 반공주의에 입각해 북한과 싸운 공로가 더 크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 결정적 이유다. 분단 체제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이런 경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