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삼성떡값‘과 관련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홍석조 광주 고검장.
홍석조 고검장, 내부통신망에 글 올려 “그만두지 않겠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밝힌,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을 담은 엑스파일 녹취록에 ‘떡값 전달책’으로 등장하는 홍석조 광주고검장이 자신의 결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A4지 7장짜리 장문의 글에서 그는 자신이 삼성의 검찰 로비 통로 역할을 했다는 세간의 의혹을 해명하면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석현 주미 대사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이건희와 홍석현, “검사로서 끝까지 뻗어나가주길 바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달 18일 밝힌 내용을 보면, 홍석현 주미 대사는 지난 1997년 이학수 삼성 부회장에게 “석조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라고 말한 것으로 돼있다. 이 때문에 홍 고검장은 삼성의 ‘검사 관리’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홍 고검장은 ‘검찰 가족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형(이건희 회장)이나 형(홍석현 대사)이 저를 삼성 로비용 창구로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며 “두 분이 오직 바라는 것은 내가 아버님(판사 생활한 홍진기씨)의 뒤를 이어 검사로서 끝까지 뻗어 나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고검장은 이어 “자형은 ‘석조는 자기가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 도와줄 생각도 말고 도움 받을 생각도 말라’는 지시를 했다고 들었고, 형은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기사를 놓쳐도 좋으니 홍 검사에게서 취재하지 말라’는 접근금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형에 대해 느끼는 홍 고검장의 무한한 신뢰는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는 “형이 녹취록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면 그 뜻은 저를 통해 후배 검사들에게 삼성 로비용 떡값을 나눠주게 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내가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후배 검사들에게 좀 인심을 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우리 이름 모르는 주니어들에게 돈 좀 주라”는 홍 대사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건 동생을 위한 형의 배려일 뿐, 절대 삼성을 위한 로비용 떡값이 아니라는 논리다.
‘삼성 가문’의 원죄(?)
홍 고검장의 글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이른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원죄’에서 비롯된다는 인식도 엿보인다. 그는 “삼성 회장의 처남으로 때로는 중앙일보 사장의 동생으로 남에게 인식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며 “언론에서는 친절하게도 내 문제가 거론될 때에는 형 이름을, 형 문제가 거론될 때에는 내 이름을 꼬박꼬박 세트로 보도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 사건으로 자신이 구설에 휘말린 것에 대해서도 홍 고검장은 “대상 사건과 관련해 ‘죄’가 있다면 인천지검장으로 발령받은 점과 대상의 임 회장이, 조카(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장인이라는 사실 뿐”이라고 말했다.
의혹 제기하는 쪽은 비상식적인 집단
그러면서 홍 고검장은 여러 차례 ‘상식’을 강조한다. 그는 “검사들에게 삼성 떡값이라고 준다 해서 받을 검사가 어디 있겠냐”며 “글로 쓰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비상식적인 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 회장이나 중앙일보 사장이 뭐가 아쉬워서 잘 나가는 처남(동생)으로 하여금 후배검사에게 로비를 하도록 시키겠는지 상식적으로 판단하여 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그에게 비상식적인 집단일 뿐이다. 그는 “편견과 아집, 증오와 질시의 마음이 가득 차 세상의 모든 일을 추악한 거래로만 보는 사람들은 가족들간의 정리와 건전한 상식을 무시하고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며 “삼성과 중앙일보를 공격해보겠다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그 교차점에 놓인 저를 흔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목적은 거의 성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9월 1일로 공직생활 29년을 채웠다는 그는 글 끝 부분에서 “지금 그만둔다면 터무니 없는 주장을 인정하는 꼴이 아니겠냐.주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고 의심받는 ‘주니어(후배검사)’들의 명예는 어떻게 하겠냐”며 “저의 동료와 검찰을 위해서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자 한다”고 했다.
“힘내십쇼.” ‘주니어’들의 성원 잇따라
그의 글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글을 올린 지 하룻만에 조회수는 2500건을 훌쩍 넘겼고 “힘내라”라는 격려 댓글이 뒤를 이었다. 한 지청장은 “상사로서 선배로서 여러 번 고검장님을 지켜본 저로서는 고검장님의 오늘 글이 정말 가슴 아프고 마음에 와닿습니다”라고 적었다. 한 부장검사도 “저는 운이 없어 고검장님을 모셔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말씀을 누누이 들어왔다”며 “부디 저희 후배들을 위해 굳건히 결백을 밝혀주시기를 기원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사실관계를 떠나 홍 고검장이 삼성의 검찰 로비 통로로 인식되면서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게 문제”라며 “김상희 차관이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사퇴한 것처럼 홍 고검장도 검찰조직을 위해 결단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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