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7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김동훈 수석연구원
[싱크탱크 광장]
‘국가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복지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한때 스웨덴에 대한 집중 탐구가 이뤄졌고, 최근에는 독일로도 눈길이 모인다. 기실 국가모델 탐구는 한 나라의 체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정치경제시스템은 물론 사회문화 및 지성적 요소까지 유기적으로 살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스웨덴과 독일은 물론 맹렬히 모방해온 미국과 일본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가 오스트리아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난데없다며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안병영(72) 연세대 명예교수는 “하나의 체제모형으로서 오스트리아만큼 한국 문제 해결에 영감을 주는 나라는 없다”고 역설한다. 그는 최근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문학과지성사)란 책을 출간해 언론으로부터 많은 조명을 받았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오스트리아 모델(이 대안)인가?’
■ 왜, 오스트리아인가? 지난 7일 서강대 다산관, 사회정책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모임인 ‘사회정책연구회’의 월례 토론장에서 안 교수가 오스트리아의 형성사에서 오스트리아 모델의 구성요소, 또 이 모델의 기본 틀을 세운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오스트리아 모델에 대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왜 오스트리아 모델을 주목했나? “서방세계의 변방에다 산업화도 늦었고, 시민혁명도 불발했고, 자유주의도 뒤늦게 들어와서 그것도 온전하게 꽃피우질 못했다. 더욱이 권위주의적·엘리트주의적 정치문화, 관료적 문화유산 등 민주적 결손이 있는 나라였다.” 여기에 1·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고 바닥에서 시작해야 했고, 전승국들에 분할점령된데다, 약소국으로 경제적 생존을 고심했다는 점도 한국과 유사하다. 안 교수는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고뇌했던, 통일, 경제발전, 정치적 민주화, 노사협력, 복지국가 건설, 정체성 확립 등 국가적 핵심과제를 한발 앞서 성공적으로 풀어왔다”는 점에서, 이 나라는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준거 틀이 되며, 적잖은 교훈을 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저서에서 “오스트리아의 체제모형, 제도와 관행, 정책사례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오스트리아 모델은 북유럽의 진보 모형이나 영미의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처방보다 오히려 적실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쟁 피해 등 역사적 경험 유사
중도통합형 정치 리더십으로
중립화 통일, 생태사회적 경제와
합의제 정치, 사회적 파트너십 구현
북유럽·영미 모델보다 잘 들어맞아 ■ 여섯가지 구성요소 안 교수가 독창적으로 정립한 오스트리아 모델의 구성요소는 여섯가지다. 안 교수에 따르면, 이들 여섯 요소는 유기적으로 연관되고 서로 영향을 끼쳐 이 나라 특유의 모델을 형성했는데, 이 가운데 네 요소는 중립화 통일, 생태사회적 시장경제, 사회투자형 복지국가, 국민적 정체성이다. 여기에 ‘합의제 정치’와 ‘사회적 파트너십’이란 요소가 추가되는데, 특히 이 두 요소는 ‘두 겹의 협의체제’로 오스트리아 모델의 핵심 기둥 구실을 한다. 사회적 파트너십은 어떤 정책과 법안이 제안되면 관료와 노사대표들이 함께 만드는 노사정협의체제를 뜻한다. 이 파트너십은 전후 경제 및 사회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했으며, 이 나라를 ‘스트라이크 없는 나라’, ‘축복의 섬’으로 불리게끔 했다. 오스트리아도 한때는 우리 사회 못지않게 오스트로마르크시스트 세력과 가톨릭 보수세력이 진영화해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2공화국 건국 이래 오늘까지 68년 중 41년을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간의 대연정을 구성해, 이념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국가적 과제를 성취했다는 것이다. 합의제 정치와 사회적 파트너십은 현재는 약화한 면이 없잖으나 그 원형질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안 교수의 논지다. ■ 한국에 주는 시사점 그러나 이런 오스트리아 모델도 80년대 중반 이래 세계화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형됐으며, 다문화사회와 인종주의 등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핵심 요소들이 약화했으며, 복지국가의 체질 변화도 불가피하게 이뤄져왔다. 그럼에도 안 교수가 여전히 이 모델을 강조하는 까닭은 ‘합의와 상생의 체제모형’이 새롭게 보여준 ‘융합과 재창조 과정’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가 이 모델을 베끼자는 게 아니라, 이 모델을 통해 영감과 창조적 상상력을 얻기를 바란다. 이 모델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정치세력들 간의 합의와 상생, 대타협의 정신”을 배워야 하며, 특히 “이념적 대결보다 어떤 정책혼합이 국민에게 도움을 주느냐에 대한 합리적 토론, 전력의 3분의 2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는 경제체제, 노사정 간의 꾸준한 소통과 대화” 등을 배우기를 희망한다. 이날 강연의 끝에 안 교수는 오스트리아 모델의 틀을 세운 정치적 리더십을 매우 강조했다.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인 카를 레너와 현대화의 아버지인 브루노 크라이스키란 두 정치지도자를 말한다. 안 교수는 특히 한국의 진보세력이 비(非)교조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은 두 사민주의자한테서 귀감을 얻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중도통합형 정치로 회귀”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교수의 오스트리아 모델 연구에 대해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오스트리아 정치사회에 관한 국내에서 나온 가장 깊이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신 교수는 “합의제 민주정치 등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아, 이 모델이 우리 사회에서 실현가능한지는 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중도통합형 정치 리더십으로
중립화 통일, 생태사회적 경제와
합의제 정치, 사회적 파트너십 구현
북유럽·영미 모델보다 잘 들어맞아 ■ 여섯가지 구성요소 안 교수가 독창적으로 정립한 오스트리아 모델의 구성요소는 여섯가지다. 안 교수에 따르면, 이들 여섯 요소는 유기적으로 연관되고 서로 영향을 끼쳐 이 나라 특유의 모델을 형성했는데, 이 가운데 네 요소는 중립화 통일, 생태사회적 시장경제, 사회투자형 복지국가, 국민적 정체성이다. 여기에 ‘합의제 정치’와 ‘사회적 파트너십’이란 요소가 추가되는데, 특히 이 두 요소는 ‘두 겹의 협의체제’로 오스트리아 모델의 핵심 기둥 구실을 한다. 사회적 파트너십은 어떤 정책과 법안이 제안되면 관료와 노사대표들이 함께 만드는 노사정협의체제를 뜻한다. 이 파트너십은 전후 경제 및 사회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했으며, 이 나라를 ‘스트라이크 없는 나라’, ‘축복의 섬’으로 불리게끔 했다. 오스트리아도 한때는 우리 사회 못지않게 오스트로마르크시스트 세력과 가톨릭 보수세력이 진영화해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2공화국 건국 이래 오늘까지 68년 중 41년을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간의 대연정을 구성해, 이념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국가적 과제를 성취했다는 것이다. 합의제 정치와 사회적 파트너십은 현재는 약화한 면이 없잖으나 그 원형질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안 교수의 논지다. ■ 한국에 주는 시사점 그러나 이런 오스트리아 모델도 80년대 중반 이래 세계화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형됐으며, 다문화사회와 인종주의 등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핵심 요소들이 약화했으며, 복지국가의 체질 변화도 불가피하게 이뤄져왔다. 그럼에도 안 교수가 여전히 이 모델을 강조하는 까닭은 ‘합의와 상생의 체제모형’이 새롭게 보여준 ‘융합과 재창조 과정’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가 이 모델을 베끼자는 게 아니라, 이 모델을 통해 영감과 창조적 상상력을 얻기를 바란다. 이 모델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정치세력들 간의 합의와 상생, 대타협의 정신”을 배워야 하며, 특히 “이념적 대결보다 어떤 정책혼합이 국민에게 도움을 주느냐에 대한 합리적 토론, 전력의 3분의 2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는 경제체제, 노사정 간의 꾸준한 소통과 대화” 등을 배우기를 희망한다. 이날 강연의 끝에 안 교수는 오스트리아 모델의 틀을 세운 정치적 리더십을 매우 강조했다.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인 카를 레너와 현대화의 아버지인 브루노 크라이스키란 두 정치지도자를 말한다. 안 교수는 특히 한국의 진보세력이 비(非)교조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은 두 사민주의자한테서 귀감을 얻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중도통합형 정치로 회귀”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교수의 오스트리아 모델 연구에 대해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오스트리아 정치사회에 관한 국내에서 나온 가장 깊이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신 교수는 “합의제 민주정치 등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아, 이 모델이 우리 사회에서 실현가능한지는 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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