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개헌 블랙홀” 발언 이후
“올해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
서청원 이어 최경환·김무성 등
박대통령 지침 맞춰 내부 단속 새누리당 안에서는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 개정 무용론을 제기한 뒤부터 개헌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여야 의원 118명이 참여한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이 개헌안 발의를 추진하면서 올해 개헌 논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던 전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도 있고 또 당내에서는 우선순위가 경제라는 분위기가 있다”며 “올해 개헌을 국가적인 아젠다로 추진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몇 년간 계속된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올해는 회복의 기미가 조금씩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때다. 지금은 개헌보다 더 급한 게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개헌론을 일축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개헌논의’ 봉쇄에 발벗고 나선 데는 박 대통령의 ‘개헌논의 불가’ 발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6일 “개헌은 워낙 큰 이슈라 한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빠져들어 이것저것 할 그것(엄두)을 못낸다”고 밝힌 뒤 친박계를 중심으로 내부 입단속에 분주한 모양새다. 지난 8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친박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이 개헌론을 제기한 이재오 의원을 공개 반박한 게 대표적이다. 새누리당 의원 56명이 여야가 함께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에 가입했지만, 박 대통령 발언 이후에도 개헌 소신을 밝힌 사람은 이 모임의 고문인 이재오 의원뿐이다.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개헌논의 불가’ 발언을 엄호하고 나선 것은 집권 2년차에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 대변인은 “우리로서는 매우 중요한 1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무엇인가 경제적인 성과가 보여져야 한다는 데 대해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면 다른 이슈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개헌도 의원들끼리 만나 공부하는 것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개헌이 본격적인 이슈가 됐을 때 닥칠 수 있는 조기 레임덕에 대한 우려도 뒤섞여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패배 등이 현실화되면 개헌론이 안 나와도 레임덕이 시작될 마당에 개헌론마저 맞물리면 그날부터 대통령은 사라지게 된다”며 “이런 의미에서 개헌이 곧 블랙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개헌특위 구성·개헌안 4월 발의”
전병헌·우균근 등 이슈 선점나서
안철수는 “지방선거 뒤 논의해야”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논의를 차단하고 나섰지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를 손질해야 한다며 개헌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하지만 국회 개헌특위를 당장 구성하자는 민주당과 달리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논의를 미루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공개 요구한 전병헌 원내대표는 9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임기 중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개헌논의를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국회에 개헌특위를 만들어달라고 해야 한다”며 특위 구성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국회의장을 찾아가 특위 구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 원내대표가 당 대표보다 먼저 새해 기자회견을 열어 개헌 필요성을 제기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 일각에선 지난해 원내 지도부의 정국대응력에 대한 의원들의 평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 원내대표가 이슈 주도력을 높이기 위해 개헌을 들고나온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전 원내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대수술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없이 새정치를 하자는 것은 구두선(말)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을 지배해 의회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는 데다, 대선의 승자가 권한을 독식하는 ‘권력의 과잉화’ 탓에 정치권의 갈등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 박 대통령 임기 중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당직자는 “국회가 주도해 개헌을 한 적이 없다. 그걸 민주당이 적극 제기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등 여야 의원들이 두루 포함된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도 현재까지 개헌에 동의하는 의원 118명(새누리당 56명·민주당 60명·정의당 2명)의 서명을 받으며 개헌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 모임의 야당 간사인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150명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2월에 개헌안 내용을 위한 자체 토론을 한 뒤 4월에 개헌안을 발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임에선)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편하자고 의견이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통일·외교·국방 등을 책임지고, 총리는 내정에 관한 행정권을 맡는 등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개헌 논의의 적절한 시기에 대해선 범야권에서도 생각이 다소 엇갈린다. 안철수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논의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서청원 이어 최경환·김무성 등
박대통령 지침 맞춰 내부 단속 새누리당 안에서는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 개정 무용론을 제기한 뒤부터 개헌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여야 의원 118명이 참여한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이 개헌안 발의를 추진하면서 올해 개헌 논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던 전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도 있고 또 당내에서는 우선순위가 경제라는 분위기가 있다”며 “올해 개헌을 국가적인 아젠다로 추진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몇 년간 계속된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올해는 회복의 기미가 조금씩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때다. 지금은 개헌보다 더 급한 게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개헌론을 일축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개헌논의’ 봉쇄에 발벗고 나선 데는 박 대통령의 ‘개헌논의 불가’ 발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6일 “개헌은 워낙 큰 이슈라 한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빠져들어 이것저것 할 그것(엄두)을 못낸다”고 밝힌 뒤 친박계를 중심으로 내부 입단속에 분주한 모양새다. 지난 8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친박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이 개헌론을 제기한 이재오 의원을 공개 반박한 게 대표적이다. 새누리당 의원 56명이 여야가 함께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에 가입했지만, 박 대통령 발언 이후에도 개헌 소신을 밝힌 사람은 이 모임의 고문인 이재오 의원뿐이다.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개헌논의 불가’ 발언을 엄호하고 나선 것은 집권 2년차에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 대변인은 “우리로서는 매우 중요한 1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무엇인가 경제적인 성과가 보여져야 한다는 데 대해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면 다른 이슈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개헌도 의원들끼리 만나 공부하는 것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개헌이 본격적인 이슈가 됐을 때 닥칠 수 있는 조기 레임덕에 대한 우려도 뒤섞여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패배 등이 현실화되면 개헌론이 안 나와도 레임덕이 시작될 마당에 개헌론마저 맞물리면 그날부터 대통령은 사라지게 된다”며 “이런 의미에서 개헌이 곧 블랙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개헌특위 구성·개헌안 4월 발의”
전병헌·우균근 등 이슈 선점나서
안철수는 “지방선거 뒤 논의해야”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논의를 차단하고 나섰지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를 손질해야 한다며 개헌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하지만 국회 개헌특위를 당장 구성하자는 민주당과 달리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논의를 미루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공개 요구한 전병헌 원내대표는 9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임기 중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개헌논의를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국회에 개헌특위를 만들어달라고 해야 한다”며 특위 구성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국회의장을 찾아가 특위 구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 원내대표가 당 대표보다 먼저 새해 기자회견을 열어 개헌 필요성을 제기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 일각에선 지난해 원내 지도부의 정국대응력에 대한 의원들의 평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 원내대표가 이슈 주도력을 높이기 위해 개헌을 들고나온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전 원내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대수술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없이 새정치를 하자는 것은 구두선(말)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을 지배해 의회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는 데다, 대선의 승자가 권한을 독식하는 ‘권력의 과잉화’ 탓에 정치권의 갈등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 박 대통령 임기 중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당직자는 “국회가 주도해 개헌을 한 적이 없다. 그걸 민주당이 적극 제기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등 여야 의원들이 두루 포함된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도 현재까지 개헌에 동의하는 의원 118명(새누리당 56명·민주당 60명·정의당 2명)의 서명을 받으며 개헌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 모임의 야당 간사인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150명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2월에 개헌안 내용을 위한 자체 토론을 한 뒤 4월에 개헌안을 발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임에선)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편하자고 의견이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통일·외교·국방 등을 책임지고, 총리는 내정에 관한 행정권을 맡는 등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개헌 논의의 적절한 시기에 대해선 범야권에서도 생각이 다소 엇갈린다. 안철수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논의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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