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오른쪽)가 5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윤진숙 전격 경질 배경
정홍원 총리에 힘 실어주기
대대적 개각 여론 차단 뜻도
정홍원 총리에 힘 실어주기
대대적 개각 여론 차단 뜻도
박근혜 대통령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해임 결정은 정홍원 총리와 사전에 조율한 듯 순식간에 이뤄졌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 총리가 해임 건의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게 오후 4시30분께이고, 청와대는 2시간30분 만인 저녁 7시에 해임을 공표했다.
박 대통령이 윤 장관을 경질하면서 ‘자신 사퇴’가 아니라 ‘해임’이라는 형식을 택한 점도 주목된다. 과거엔 장관을 바꿀 때 본인의 뜻을 존중해 자신 사퇴 형식을 취하곤 했지만, 이번엔 ‘해임’을 통해 공직사회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총리가 해임건의권을 행사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해임 결정을 한 경우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딱 한 차례밖에 없을 정도로 전례가 드물다. 공교롭게도 당시에도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고건 총리의 해임 건의를 거쳐 해임됐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윤 장관이 5일 당정협의에서 여수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지에스(GS)칼텍스가 1차 피해자이고 어민이 2차 피해자”라고 말한 게 결정타였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1일 윤 장관이 사고 현장을 방문해 코를 막은 채 “처음엔 피해가 크지 않다고 보고받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을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은 “안일한 태도”라며 윤 장관에게 간접 경고를 보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윤 장관이 당정협의 때 “어민이 2차 피해자”라고 발언해, 여권 내부에서조차 경질 요구가 터져 나오자, 박 대통령도 결국 더는 장관직에 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총리의 해임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을 통해 과거 공언했던 ‘책임총리제’에 힘을 싣고, 동시에 이번 윤 장관 경질로 불거질 수도 있는 ‘대대적 개각 여론’을 잠재우려는 뜻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부터 여러 차례 ‘책임총리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지만, 정 총리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의전 총리’, ‘대독 총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 있다. 이번 윤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를 계기로 정 총리에게 힘을 실어 내각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효과를 염두에 뒀을 수 있다.
정 총리는 이날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윤 장관 사례와 달리 다른 각료들에 대한 책임 문제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정 총리는 금융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으로 큰 비난을 자초한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해임 건의를 묻는 질문에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격 시비를 하는 마당에 그걸 전부 수용할 수는 없다. 결정적 흠결이 있으면 그때 저도 그걸(해임 건의) 하겠다”고 답했다. 윤 장관 경질이 개각으로 번지는 것은 분명하게 차단한 것이다.
수장의 해임 소식을 접한 해양수산부는 침울한 분위기다. 해수부의 한 공직자는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면 정책과 팩트는 없고, 이미지에 대한 호불호가 논란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런 부분 때문에 윤 장관도 굉장히 상처받았고, 공직자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더 큰 물의를 빚었음에도 힘센 경제부처 수장 등은 자리를 유지하고, 힘없는 부서의 수장만 ‘본보기’가 된 게 아니냐는 불만인 셈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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