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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드레스덴 연설과 한반도의 불길한 봄

등록 2014-03-31 14:33

박근혜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공대에서 한반도 통일 구상 및 교류협력 확대 제안 등을 담은 ‘드레스덴 연설’을 하고 있다. 드레스덴/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공대에서 한반도 통일 구상 및 교류협력 확대 제안 등을 담은 ‘드레스덴 연설’을 하고 있다. 드레스덴/연합뉴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51
‘저항’ 강조한 드레스덴 제안, 사격훈련으로 되돌아와
“북 주민에 귀기울이라” 는 메르켈 총리 충고 들어야
 드레스덴 독트린? 친정부 매체들은 당신의 드레스덴 연설에 앞서,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자 했죠. 평화든 전쟁이든 방관이든 대북 정책의 새로운 원칙과 비전이 담기리라 예상했던 거죠. ‘통일 대박’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고 함께 개구리처럼 대박론을 합창했던 터였으니, 그럴 만도 했죠. 그러나 연설문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부 평자들이 ‘왜 통일부 과장급이 할 제안을 대통령이 했을까? 그것도 실현 가능성을 닫아놓은 족쇄를 그냥 놔둔 채?’라고 혹평했던 게 이해할 만합니다. 결국 친정부 매체들도 ‘드레스덴 제안’으로 물러섰더군요. 봉황을 그리려 했는데 참새가 나왔던 것입니다.

당신은 연설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죠. “만약 통일이 된다면, 모든 것은 드레스덴에서 시작되었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던가 봅니다. 하지만 제안을 받는 쪽에선 호응 대신 엉뚱한 쑥떡을 멕였더군요.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하지 않겠다.” “적들이 상상도 하기 힘든 다음 단계 조치들도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 통지문을 보낸 뒤 백령도와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 쪽으로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우리 군도 대응사격훈련을 실시했구요. 어떻게 상황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설마 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바는 아니였겠지요.

 드레스덴은 당신이 편협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동독의 전체주의 정권에 맞서 시민들이 저항운동을 처음 벌인 곳으로서 상징성만 갖는 곳이 아닙니다. 당신의 방문지 드레스덴 성모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심지어 히틀러까지도 최고의 건축물로 사랑했다던 성모교회, 그것이 진실로 상징하는 건 반전과 평화, 화해와 통합입니다. 그런 곳에서 저항운동의 메시지만 강조했으니, 이것이 북쪽에 어떻게 비쳤을지는 자명합니다. 포장은 인도적 지원과 공동 발전의 청사진이라지만, 내용물은 북한 주민의 봉기를 선동하는 비수 아닌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성모교회는 불에 그을린 벽의 잔해 두 곳만 남기고 90% 가까이 붕괴했습니다. 1945년 2월13일 연합군은 독일 군수산업의 중심이었던 드레스덴을 초토화시킵니다. 이틀 밤낮 동안 무려 65만발의 소이탄을 퍼부어 드레스덴의 모든 것을 불태웠습니다. 성모교회는 돌과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불길이 너무 격렬해 교회 안의 온도가 무려 1000도에 이르러 교회 안 성모상이 녹아내릴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성모교회는 2월15일 오전 10시 폭발과 함께 허물어졌습니다.

곧 히틀러는 항복하고 전쟁은 끝났지만 시민들은 그 거대한 건축물 잔해를 치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800여개에 이르는 벽돌과 돌 따위에 하나씩 일련번호를 붙여 복원할 때 다시 이용할 수 있도록 정성껏 보존했습니다. 한때 동독 정부가 그곳을 치우고 옛 시가지의 부족한 주차장으로 이용하려 했으나 시민들이 결사반대했죠. 시민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폐허의 성모교회는 파시즘의 야만성과 전쟁의 비극을 되새기게 하는 상징이다. 우리에게 2차 대전은 끝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그 잔해를 바라보며 파시즘과 전쟁의 참극을 되새겼고, 반전과 평화를 꿈꿨던 것입니다.

교회의 복원은 헬무트 콜 전 수상이 1989년 성모교회에서 한 연설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통일 이후 시민들의 청원으로 복원 사업에 들어갑니다. 반전의 상징으로 그대로 놓아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잔해로 되살린 성모교회는 반전과 함께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 되리라는 기대가 더 컸습니다. 소년 시절 드레스덴 공습을 목격한 독일계 미국인 귄터 블로벨은 1999년 노벨의학상 수상 상금을 이 교회 복원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보고 세계의 20개국이 성금을 보탰습니다. 돔 꼭대기에 올려놓은 황금색 십자가는 독일의 맞상대였던 영국이 제공했습니다. 드레스덴을 공습했던 조종사의 아들이자 영국의 장인인 앨런 스미스가 제작했죠. 완성된 십자가는 전쟁 당시 독일 공군에 폭격당한 코번트리 대성당, 리버풀 대성당, 세인트자일스 대성당, 세인트폴 대성당 등을 거쳐 2000년 전달했습니다. 2004년 6월22일 외관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이 십자가는 종루 위에 세워집니다.

1736년 처음 완공됐을 때 바흐가 작센 왕을 위해 오르간 연주를 했던 성모교회, 이 교회는 독일 국민과 유럽 여러 나라의 열망 위에서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2005년 복원됐습니다.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건너가 성장했던 앙겔라 메르켈 수상에게도 이 교회는 자부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성모교회는 독일의 문화와 전통을 자각하게 하는 독일의 명함이다.” 그것을 당신은 편협하게 이해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체제 대결에서 위대한 승리의 상징?

독일 정치인들은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헬무트 콜 수상은 1989년 12월 성모교회를 찾아와 이런 연설을 합니다. “서독 주민들은 동독의 동포들을 포기하거나 그 어떤 것도 강요할 뜻이 없으며, 여러분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미래가 얼마나 험난하더라도 우리는 함께 독일의 미래를 향한 이 여정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동독 정권을 자극하지도 않았고, 그 주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뜻에 따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된 독일이 불안한 이웃 나라들에도 말했죠. “독일의 집은 유럽의 지붕 아래 있습니다.” 동서독 조약공동체-국가연합-연방식 통일국가를 뼈대로 하는 그의 10단계 통일 방안 선언은 이런 정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은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통독 이전 독일인들은 서로 상대방의 티브이도 볼 수 있었고 서로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북한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염원이 크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필요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인데, 당신의 제안은 일방적이었고, 불쾌한 의도까지 상대에게 보였습니다.

2003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콜 총리의 기조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당장 통일을 추구하기보다 남북한이 화해·협력하면서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입니다. … 우리는 북한과의 전쟁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요컨대 “북한에 대해 ‘우리는 북한을 흡수통일하거나 해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협력해 나가자’는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화해와 평화, 공존과 공영 선언으로 불리게 됐죠. 그로부터 꼭 1개월 뒤인 4월8일 남북은 지구촌을 놀라게 한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 전후에도 우리 대통령들의 독일 선언이 있었습니다만 모두 포장 속에 비수를 감춘 것이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3월 베를린에서 “북한이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곡물을 비롯해 북한에 필요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 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의 힘은 한반도 통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5월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베를린에서 ‘핵 포기에 합의한다면’ 2012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모두 흡수통일을 염두에 뒀는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잘 알 것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곽병찬 대기자
당신도 그 연장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역사적인 독일 통일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자유에 대한 갈망을 행동으로 옮긴 당시 동독 주민들의 용기였습니다.” 왜 하필 화해와 평화, 반전의 상징인 드레스덴 성모교회에서 주민 봉기를 재촉하려 했습니까. 무지인지 만용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덕분엔 한반도의 봄은 갈수록 불길하고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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