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6·4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다. ‘세월호 자장권’ 안에 있는 핵심 지역이기도 하다. ‘혁신’과 ‘복지’를 내세운 새누리당의 남경필 후보, ‘경제’와 ‘경륜’을 강조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진표 후보가 격돌하면서 여야 후보가 뒤바뀐 듯한 ‘묘한’ 양상이다. 경기도 민심의 ’사전 심판관’ 격인 배심원단 11명의 후보 지지는 초접전으로 나타난 최근 여론조사 결과와 비슷하게 거의 반반으로 나뉘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의 경기 지역 배심원단 좌담회는 광주·부산·인천에 이어 네번째로 지난 19일 저녁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진행은 연구소의 한귀영 연구위원이 맡았다.
안산 단원고의 비극을 누구보다 가깝게 느꼈을 경기 지역 배심원단에게 지방선거는 투표를 통해 ‘말을 쏟아내고 싶은 공간’인 듯했다. 서울, 인천과 달리 경기도의 ‘수장’은 1995년 민선도지사를 선출하기 시작한 이래 임창열 지사(새정치국민회의·1998년)를 제외하곤 줄곧 보수정당에 돌아갔다. 이번에는 다를까? 안산의 ‘앵그리맘’을 비롯해 다양하게 꾸려진 배심원단이 들려준 이야기는 6·4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 경기도 민심의 축소판이었다.
세월호 수습과정 비판했던 배심원들
박대통령 눈물담화, 절반이 긍정평가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전현탁군 어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이웃들의 쪽지가 붙어 있다. 안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눈물 담화’의 효과는? 경기 지역 배심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눈물 담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배심원의 절반 정도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 보여준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 전체 배심원 11명 중 10명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과 대조된다. 이는 대국민 담화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눈물이 흔들리던 지지층을 돌려세우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선박회사를 다닌 경험이 있다는 50대 장우진씨는 “할리우드 액션일지 몰라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의 경험에 견주어, 해운항만청, 해운조합 등 예전의 조직이나 사람,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며 이번 참사는 “해경의 구조적 문제이지 박근혜의 잘잘못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안산에 거주하는 30대 백승연씨는 “(내 주변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의 무능을 떠나 먼저 자식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이슈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배심원들은 담화 시점과 진정성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40대 ‘앵그리맘’ 하수정씨는 “어떤 일이든 타이밍이란 게 있다. 비난 여론과 (급락하는) 지지율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33일간 잠잠하게 계시다 방송에 나와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최명희씨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내용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40대 회사원인 김수철씨는 담화에 방향 제시가 없었다는 점을 꼬집으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자신은 심정적으로만 책임을 느낀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33일이 지나서 담화를 할 때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구체적 방법이 나와야 하는데 없다”(김경훈·회사원)는 지적도 있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우호적인 유용철(논술강사)씨도 ‘박 대통령과 주위 보좌진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담화’라고 혹평했다. 결국, 대국민 담화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담화에 수반된 대통령의 ‘눈물’이 적어도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배심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30~40대 ‘앵그리맘’의 민심도 엿볼 수 있었다. 배심원 중 5명이 30~40대 여성이고 이 중 2명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나머지 3명은 문재인 후보 지지자) 당시 박 후보를 지지했다는 백승연씨는 정치적 선택이 아직 바뀐 것은 아니지만 흔들리고 있음을 토로했다. “(안산 지역에서) 다들 하는 말들이 ‘우리가 돈이 많고 강남이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됐을까. 민간 잠수사라도 불러 애들을 꺼냈을 거다’라고 한다”며 정부의 소극적 대처를 비판했다. “매우 혼란스럽고 어떤게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교사인 이지현씨는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세월호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종종 올라오는데, 조회수가 매우 높다. 사람들이 관심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라고 했다. 앵그리맘의 ‘분노’가 심상치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남경필 후보 복지정책 마음에 들어”
“김진표 후보가 경제통이라 생각”
정당보다 인물에 무게 두는 경향
최대 정책의제는 지역격차 해소
■ 남경필 복지, 김진표 경제 경기도지사 선거는 말 그대로 ‘혼전’이다. 19일 발표된 방송 3사 조사 결과를 보면 김진표 후보 35.7%, 남경필 후보 34.8%로 초박빙이다. 배심원단의 민심도 남경필 지지 5명, 김진표 지지 4명이었다. 아직 모르겠다고 응답한 2명의 배심원은 흥미롭게도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남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집권여당 후보이고,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유용철)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앞서 방문했던 다른 지역 배심원들이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힘있는 여당 후보라서”를 꼽았던 것과 대비된다. “스마트해 보인다”(김수철)는 이미지 평가에 덧붙여 “복지정책이 마음에 들어서”(허연희), “공약이 구체적이어서”(양승호·20대·문재인 지지) 등의 답변도 나왔다. 이에 반해 김진표 후보를 지지하는 배심원들은 ‘경제’를 이유로 꼽았다. 최명순(피아노강사)씨는 “경제통이라는 생각에서 차악으로 지지한다”고 했고, 50대 베이비붐 세대인 장우진씨는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경제 논리를 아는 사람이 경기도지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실물경제에 밝을 것이라는 기대감, 정치인보다는 전문행정가의 이미지, 여기에 중도노선으로 인한 ‘안정감’이 50대 배심원단에게 ‘어필’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정당에 대한 불신, 차별성 없는 공약, 여야가 뒤바뀐 듯한 후보 등 다소 혼란스러운 가운데 경기도 민심은 대체로 정당보다 인물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것으로 모아지는 모양새다.
■ 최대 의제는 지역격차 해소 경기도 배심원단이 꼽은 최대의 정책 의제는 지역격차 해소였다. “분당과 경기 북부 지역이 다르고, 내가 사는 부천 안에서도 중동, 상동과 다른 지역간에는 굉장한 격차가 있다. 생활수준의 차이가 (서울의) 강남·강북 차이 이상이다”(김수철·부천시). 실제 경기도 내 지역격차, 특히 남부 지역과 북부 지역의 격차는 경기도가 안고 있는 핵심 문제다. 도로, 기업 등 사회적 인프라가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북부 지역은 휴전선 주변의 상당한 면적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그 결과 경기북부(10개 시·군)는 경기도 총면적의 42%, 인구의 26%를 차지하는데도 예산규모는 11.6%, 지역 내 총생산 비중은 19%에 그치고 있다. 배심원들이 체감하는 지역격차는 교통 인프라에서도 나타났다. “도로 인프라에서 남북간 차이가 크다. 북부 지역의 도로가 좀더 잘 정비된다면 지역격차도 완화되지 않을까.”(김경훈)
안정적 주거환경도 경기도 배심원단의 주요 관심사였다. “수도권으로 이사와서 이사를 여섯번 다녔다”는 강승구씨는 “내 집 없는 서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주거안정을 위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서민주택을 늘려야 한다”(김경훈)는 입장과 “재개발을 활성화”(강승구)해야 한다는 입장 등 차이가 컸다. 도지사 예비경선 과정에서 뜨거운 이슈였던 대중교통 문제에 대해서는 “성남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니는데 숨도 못 쉴 정도”(양승호·성남)라며 버스 노선 확충과 배차 확대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막상 논란이 되었던 무상버스나 버스공영제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