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이다운 군의 유작을 신용재가 부른 ‘사랑하는 그대여’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60
“힘든 그대, 안아주고 싶어요” 다운이 노래 들으십시오
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 재능 빛낼 세상 세워야 합니다
“힘든 그대, 안아주고 싶어요” 다운이 노래 들으십시오
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 재능 빛낼 세상 세워야 합니다
지난 11일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영상으로 나타난 이보미양의 노래와 꿈은 광장을 온통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2월 보미는 졸업식에서 후배들을 대표해 ‘거위의 꿈’을 불렀습니다. 다행히 노래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녹음한 것이 있어, 엄마, 아버지, 친구, 그리고 시민들 앞에 노래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그런 보미는 노래로만 저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세상에서 가장 슬픈 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스무 날이 지났습니다. 이쯤이면 슬픔은 저 하늘의 별들에게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도 같은 슬픔의 물길을, 치솟는 분노의 불길을 하나둘 모아, 다시는 이 사회의 탐욕, 권력자의 무능과 무책임의 벽 앞에서 보미 같은 아이들이 무너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거두고 생명이 안전하고 사람이 행복한 세상, 꿈이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다 함께 밀고 나아갈 때도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게 아닌가 봅니다. 엊그제 다시 속절없이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단원고 이다운군은 보미처럼 저의 미공개 자작곡과 함께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싱어송라이터가 꿈이었던 그가 습작으로 남긴 ‘사랑하는 그대여’가 가수 신용재의 목소리에 실려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다운군은 노래에서, 마치 오늘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이 땅에 남아 슬퍼하는 모든 엄마와 아빠, 형 동생, 친구들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어요, 힘이 든 그대, 많이 힘든 그대, 안아주고 싶어요….” 그 아름다운 마음씨와 꿈 앞에서 오월의 찬란한 빛과 색과 향도 누추해졌습니다.
우리는 보미와 다운이 그리고 그 친구들의 꿈과 사랑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운이는 저의 노래를 통해 우리의 어깨를 이렇게 다사롭게 주물러 줍니다. “힘이 든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만든 내 노래를 들어봐요,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만든 이 노래, 그댈 위해 불러봐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어떻게 다운이의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 아이에게 다독여달라고 어깨를 내밀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눈물로 그의 손을 적시는 것뿐. 이제는 너의 별에서 돌아오지 마라, 웅얼거릴 뿐.
오늘 다운이의 노래를 찬찬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진실로 반성하고 참회한다면, 당신 또한 노래 속의 ‘그대’가 되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다운이가 위로하려는, 수고하는 이 땅의 모든 ‘그대’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더 이상 거짓과 고집과 아집으로 이 세상 모든 밝음과 열림으로부터 자신을 유폐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수고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다운이 같은 아이들이 무참하게 꺾이는 세상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따듯하고 웅숭깊은 마음씨, 저마다 꽃처럼 아름다운 재능, 세상을 더욱 찬란하게 빛내줄 꿈을 쓰러뜨리는 세상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별이 된 아이들은 평안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안타깝게도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직 모릅니다. 지금도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그 꿈을 꺾어버리고, 그들을 벽 앞에서 무너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해경이 잘못했다고 해경을 아예 해체하고, 엉뚱하게도 소방공무원 전체를 강등시키고, 엎치락뒤치락 안전행정부를 걸레로 만들었습니다. 여당조차 경질을 바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보호하려다 국회를 침몰시킬 뻔했고, 침몰중인 검찰이 선거판의 청부폭력에 나서다가 아예 파산될 뻔했습니다. 남북, 한-일 관계를 오로지 오기와 무지로 밀어붙이다 외교 또한 참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비판을 넘어 능멸당했다고 이를 갈아온 북한과 일본이 동행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또 무력만 능사로 아는 국방장관을 또다시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장에 앉혔습니다.
이렇게 저도 알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사이, 고양터미널에선 대형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졌고, 장성 요양병원에서도 불이 나 불과 6~7분 사이에 노인 21명이 사망했습니다. 다행히 의로운 이들이 진화했지만, 끔찍한 지하철 방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당신이 이 사회의 기득권층만 챙기는 사이, 벼랑에 몰린 이들은 사회를 향해 맹목적인 묻지마 보복 범죄의 길로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저 처벌, 응징을 되뇌지만,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이 사회의 분노와 불만에 대해 당신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합니다. 사회적 치유란 건 당신의 사전에 아예 없습니다. 얼마나 더 사람이 죽어야, 당신은 그 무지와 무책임의 성채에서 빠져나올 겁니까.
당신은 능숙한 ‘파이퍼’입니다. 그 피리는 지어낸 신화, 자기연민의 눈물, 맹목의 오기로 소리를 냅니다. 그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주술에 사로잡힌 이들은 당신이 그러하듯이 저희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 저희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들판을 휘저으며 가는 곳이 벼랑끝이라는 걸 모릅니다.
이제 주술의 피리를 버리십시오. 보미의 꿈, 다운이의 순정한 노래를 들으십시오. 노래를 부르십시오. 거기에서, 당신이 숨겨버린 인간의 소리, 인간의 노래를 듣기 바랍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힘듭니다.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그럴 순 없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서울 강동구에 있는 명성교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와 회복을 위한 한국 교회 연합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4.6.1 /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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