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21일 저녁 서울공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성남/청와대사진기자단
세월호 참사에 총기 난사까지…연일 참사 이어지는데
10여일을 ‘문창극 사태’ 지켜보는 것만도 고문입니다
10여일을 ‘문창극 사태’ 지켜보는 것만도 고문입니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63
남쪽 바다에선 21세기 가장 원시적인 참사가 일어났고, 전방에선 역시 야만적인 총기 참사가 일어나고, 중앙에선 연일 인사 참사가 일어나고…. 게다가 이 모든 참사의 책임자인 대통령은 오불관언 사태를 외면하거나, 아랫사람만 닥달하고…. 이게 당신이 이 나라의 선장으로 승선한 후 국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참으로 피곤합니다.
‘문창극 사태’만 해도 벌써 며칠째입니까. 우리가 왜, 문씨를 10여일 째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까. 그의 신정주의 종교관, 반민족적 역사관, 인륜을 부정하는 기회주의, 국민을 멸시하는 엘리트주의를 보고 있어야 합니까. 말도 안 되는 해명, 어처구니없는 울분과 눈물을 지켜봐야 합니까.
당신은 그런 그를 국무총리로 지명하고는 중앙아시아로 훌쩍 날아갔습니다. 이미 문씨의 문제가 이미 드러난 시점이었습니다. 당신은 외국 순방중이라는 핑계로, 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보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지명을 철회하지도 않았습니다. 국내에 남아 있는 국민들은 매일 그의 얼굴을 보며, 그의 오만불손에서부터 비루함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수구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게 낫지, 그걸 매일 지켜보는 건 차라리 고문이었습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문씨만이 아니었습니다.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교육부총리 내정자 김명수씨의 파렴치한 지식 절도 혐의들을 지켜봐야 했습 니다. 김씨와 다름없는 새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송광영씨의 지식 사기를 봐야 했습니다. 제자들의 지식을 도둑질 해 지금의 출세를 이룬 자들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게 됐으니, 그로 말미암은 부아는 문씨 지명 못지 않게 큰 것이었습니다. 안전행정부 장관에 내정된 골수 티케이 지역주의자 정종섭씨도 그렇고, 문화부장관 내정자인 정성근씨도 저질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으로 당신은 기가 막힐 정도로 뻔뻔한 얼굴들만 국민 앞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국민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모독과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건지요. 투표자의 과반을 간신히 넘긴 유권자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습니까.
당신은 귀국하고서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모두가 당신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도 당신은 구중궁궐 속으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당신의 가신들은 그저 문씨가 자진사퇴 해주기를 종용하고 압박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통령이 지명 철회를 했을 경우 받게 될 부담을 덜어야 한다나요? 이 정부의 잘못으로 참사가 되어버린 세월호 사태 때도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했죠. 문제 투성이 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는데도, 지명자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이 나라는 오로지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은 오로지 대통령이 저지른 일들을 처리하는 몸종인가요.
당신이 돌아온 날 밤 동부전선 최전방에선 총기 난사 사건으로 다섯명의 젊은 장병이 비명횡사하고, 일곱 명이 쓰러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일어난 지 언제라고, 또 그런 사고가 발생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경황 중에서도 문씨 김씨 송씨 정씨 또 다른 정씨 그리고 차떼기 이씨 등을 보며 지내야 하는, 신세가 참담하기만 합니다.
따지고 보면 문씨도 피해자였습니다. 그가 총리 하겠다고 들이댄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총리 하라고 하니까 수락했는데, 하물며 여당인 새누리당까지 뒤에서 비난하고 저주하고 있으니 오죽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가 교회 강연, 학교 강의,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언급한 것들은 저의 소신이었습니다. 보통 한국인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신념이긴 했지만, 그냥 두었다면 구원파나 다를 게 없는 기이한 신앙 간증이나 하며 편하게 살 사람이었습니다. 공연한 당신의 제의에 선뜻 나섰다가 본전은 커녕 신세를 망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복장이 터지겠습니까.
그 사이 당신의 딸랑이들이 해대는 죽 끓듯 한 변덕은 그의 부아를 더욱 자극했을 겁니다. 처음엔 인사 참극을 개탄하다가, ‘동영상을 보니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따위의 변호를 하다가, 선거에 끼칠 악영향에 놀라 ‘자진 사퇴’를 압박하다가, 당신이 돌아오니 입을 꾹 닫고 눈치만 보는 게 그들입니다. 동부전선에서 혈혈단신 특공대 수천명과 대치하던 임 병장처럼 문씨가 자진사퇴를 거부하며 대치해온 것은 그런 까닭일 것입니다.
엊그제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돌아온 비행기 트랩에서 내릴 때 김기춘 비서실장이 당신 뒤를 바짝 따르고 있더군요. 당신의 그림자가 늘어져 있는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그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입니다. 당신이 임명하는 직책에 오를 사람을 선별하는 최종 책임자입니다. 당신의 권력을 대행하는 사실상 최고의 막후 실력자이죠. 그동안 주요 보직에 영남 태생의 서울대 법대-고시 출신 출세주의자들을 최종적으로 천거한 장본인도 그였을 겁니다. 이번엔 ‘교레기’들만 선별해 끌어들였고. 술 안 마신다고 기자를 술병으로 내리친 검사를 민정수석비서관에 천거하는 안도 올렸겠지요. 유신 때부터 유령처럼 나돌던 그 이름, 이제 이름만 들어도 피곤한 그가 여전히 당신의 그림자로 붙어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런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건지, 그런 사람을 그림자로 동행하는 당신을 지켜봐야 하는 건지….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당신은 세월호 참사에서 이런 교훈 하나만이라도 얻었어야 합니다. 배의 운항을 책임질 선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며, 그를 도와 안전 운행을 책임질 기관사들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운항을 맡기려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월호 승무원과 다를 게 별로 없습니다. 무책임하고, 제 욕심 차리는데만 유능하고, 오로지 선주만 바라보고, 선주의 돈벌이에만 충성을 다하고, 그리하여 사고나면 먼저 튈 생각만 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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