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항소심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울고법 ‘이석기 판결’ 내용
“내란음모 실행시기·역할분담 없어
RO는 제보자 진술 믿을만 하나
구성원·조직체계 인정할 증거없어”
“130여명 대상 합정동 강연서
국헌문란 목적 폭동 선동”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해악 인정
“내란음모 실행시기·역할분담 없어
RO는 제보자 진술 믿을만 하나
구성원·조직체계 인정할 증거없어”
“130여명 대상 합정동 강연서
국헌문란 목적 폭동 선동”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해악 인정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공소사실의 핵심인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이른바 ‘아르오’(RO·혁명조직)가 내란을 음모하지는 않았지만 이 의원이 내란을 선동한 사실은 있다고 본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이 의원 등을 기소하면서 대대적으로 부각한 ‘아르오’ 관련 혐의가 무죄로 인정돼 애초 무리한 ‘여론몰이 수사’가 아니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 사건 수사가 공개된 지난해 8월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면, 이들 공안·수사 기관의 ‘숨겨진 의도’에 대한 의심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당시 국정원은 대선 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공개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국회는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를 열었고, 수만명의 종교인·교수·학생들이 국정원 개혁과 남재준 당시 원장 해임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촛불집회에 나섰다. 이런 시기에 느닷없이 불거진 ‘내란음모’ 사건을 두고, 국정원이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 실체보다 부풀려진 ‘과격한 죄명’을 선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이 사건이 ‘과장’됐다는 의혹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1일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이민걸)는 애초 국정원과 검찰이 비합법 혁명조직으로 지목한 ‘아르오’에 대한 입증 부족을 짚었다. 재판부는 “아르오에 대한 제보자의 진술은 믿을 만하지만, 조직의 결성 과정과 구성원·조직체계 등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내란음모의 실행에 합의했는지를 두고도 “내란행위의 시기, 대상, 수단, 방법, 역할 분담 등의 윤곽을 정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준비방안에 합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이들이 내란범죄 준비행위를 했다고 볼 사정도 없다”고 판단했다. 내란음모의 밑그림 정도라도 합의한 사실이 증명돼야 하는데, 국정원과 검찰이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지난 2월 “서울 합정동 비밀회합에서 아르오 조직원 130여명이 내란을 모의했다”고 밝힌 1심 재판부의 판단도 뒤집었다. 내란을 실행에 옮길 조직도, 그런 합의와 밑그림도 없었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주범’ 격인 이 의원의 형량이 3년 감경에 그친 까닭은, 나머지 혐의에 모두 유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선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이 의원이 지난해 5월12일 서울 합정동에서 진보당 당원 등 130여명을 상대로 강연하면서, 사회를 본 김홍열(47) 경기도당 위원장과 함께 폭동을 선동한 혐의를 두고 한 말이다. 재판부는 “이 의원 등은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고 통일혁명을 완수할 목적으로 폭동을 선동했다”며 “이들의 행위는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매우 중대하고 급박한 해악을 끼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판결을 두고 이 의원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변호사는 “재판부는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혐의에 모두 적용되는 근거이자 사실관계인 지하혁명조직의 존재, 사전 준비회의 실행, 내란 합의를 모두 부정하면서도 내란선동만 유죄로 인정해 법리를 오해했다”며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도 “재판부가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매우 아쉽다”며 상고를 통해 바로잡겠다고 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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