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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박영선의 ‘능력주의’는 왜 먹히지 않았나…

등록 2014-09-19 20:34수정 2014-09-21 13:50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탈당 의사를 철회하고 당무 복귀를 선언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130석을 가진 거대 정당의 ‘저질 체력’도 박 원내대표가 실패한 주요 원인이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탈당 의사를 철회하고 당무 복귀를 선언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130석을 가진 거대 정당의 ‘저질 체력’도 박 원내대표가 실패한 주요 원인이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박영선 파동의 진실
▶ 화려하게 출발했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에 오른 지 채 다섯달도 안 돼 탈당 카드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발언할 정도로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첫 여성 원내대표(교섭단체상)로서, 첫 여성 대통령과 함께 짝을 지어 거론됐던 ‘양박 시대’도 함께 저물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의 오류는 여성 정치인들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아무리 실기를 해도 철옹성 지지율을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모래성 리더십’의 차이는 무엇일까? ‘박영선 파동’의 뒷면을 짚어본다.

‘양박시대’가 열리면 나라가 시끄러워진다고 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16일은 ‘양박시대’의 혼란이 극적으로 드러난 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국에 대한 강경한 인식을 드러내며 청와대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좌지우지하는 배후 조종자라는 사실을 자인했다.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세월호 유족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또한 이날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언론을 통해 탈당 뜻을 밝힌 뒤 칩거에 들어간 지 사흘이 되는 날이었다. 대표의 탈당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새정치연합의 위신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과연, ‘양박시대’는 시끄러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박영선 파동’을 겪으며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이제 몇년 동안은 여성 원내대표가 등장하기 어렵게 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 대해선 그의 강력한 비판자들조차도 “여성이라서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누리집에 올린 ‘인빅터스’라는 시

‘양박’의 공통점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두 여성은 정치인으로서의 성장 배경이 다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아예 ‘양박시대’는 통념의 오류”라고 말한다. 그는 “박 대통령은 ‘딸’이고 박 원내대표는 ‘개인적 여성’으로 정치를 해왔다. 태생도, 정치적 차원도 엄청 차이 나는 두 사람을 견주어 ‘양박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짚는다. 지지자든 아니든 ‘대통령 박근혜의 탄생’은 ‘박정희의 귀환’임을 잘 알고 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던 아버지의 딸에게 사람들은 함부로 침을 뱉지 않는다. 아들의 성별이 남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여성인 건 ‘딸’이기 때문이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버릴 수 없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해온 이력은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선택하는 여러가지 생존 방식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성들이 생존하는 방법을 대략 세가지 정도로 분류한다. 첫번째는 남성들의 특정 조직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방식이다. 그 안에서 아무리 배제와 고립을 겪더라도 이를 감내하며 존재의 안정감을 보장받는 것이다.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을 떠올리면 되겠다. 두번째 유형은 계파와 상관없이 남성들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평소 부드러움과 상냥함으로 누구에게든 호감을 주며, 자기 주장을 내세울 때도 상대방을 위협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엔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유은혜 새정치연합 의원이 그런 부류에 속하는 듯하다.

세번째는 박 원내대표가 보여주는 방식이다. 사실 그는 독하고 집요하며 상대방을 호령하고, 필요하다면 울부짖기도 한다. 박 원내대표가 승부를 걸어온 생존전략은 ‘능력주의’다. 사람들은 그가 상임위원회, 청문회 등에서 분명하고 매섭게 현안을 지적하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의 최대 미덕이었던 ‘선명성’이라는 이미지는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더욱이 박 원내대표는 계파주의로 점철된 당에서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원내대표 쪽은 “계파라는 지지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이렇게 리더십이 흔들린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계파가 없기 때문에 원내대표라는 자리에 올랐다고 볼 수도 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는 남자들에 의해 ‘호명’되거나 ‘낙점’받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남성들보다 훨씬 정치적 인프라가 허약하다. 그는 지난 봄 원내대표 선거에 나서면서 “남성들의 학맥, 인맥의 힘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당내에 포진한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졸업하지 않았고, 출생지도 경남 창녕이다. 호남이 기반인 새정치연합에서는 이단아 같은 존재다. 사실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인맥 자원’이 달리는 것은 새정치연합보다 더 개방적인 분위기의 진보정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노동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도 박 원내대표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박 원내대표와 달리 노동운동권에서 조직적인 단련을 받았는데도 그렇다. 그는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을 때의 경험을 말했다. “경쟁자였던 권영길·노회찬 후보를 보니까 고등학교,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종친회마저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더라. 한국에서 어느 종친회가 여성을 밀어주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박 원내대표가 선택한 생존전략, ‘능력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능력은 남들을 승복시키는 힘이면서도 반감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 능력주의의 신화에 갇혀버리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를 잘 아는 인사는 “박영선은 무조건 하면 된다고 믿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세상엔 자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올해 초 자신의 누리집에 인빅터스(Invictus·정복되지 않는다는 뜻의 라틴어)라는 시를 올렸다. 이 시는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나는 그 어떤 신이든, 신께 감사하노라. 내게 정복당하지 않는 영혼을 주셨음을”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며, 마지막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으로 끝난다.

그가 선택한 생존전략인
‘능력주의’는 동전의 양면
그것은 남을 승복시키지만
반감을 일으키게도 만든다
능력주의의 신화에 갇힌 걸까

박영선 파동은 복잡한 맥락
‘개인 여성’을 되새기게 하고
새정치의 허약함 직시하게 하며
한국 사회 물질주의와 짝 이룬
정치적 보수화 성찰하게 해

그의 낡은 명품이 생각난 이유

그는 지난달 7일 주변의 누구와도 상의 없이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사고’를 친 이후에도 말로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인빅터스’인 듯했다. 비판에 굴하지 않고 다시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특별법 2차 협상 무산은 1차 협상 때의 실패 패턴과 똑같았다. 그는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합의했다”고 말했지만,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상대책위원장에 영입하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문재인 의원 등 당내 주요 인사와 중진들과 상의했다고 말했지만, 서로 말이 달랐다. 같은 말을 놓고도 해석이 다른 것은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또한 왜 지금 중도보수 인사를 영입해야 하는지 당내에서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역시 소통의 문제다. 그는 당내 반발에 부닥치자 진보적 인사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공동비대위원장으로 긴급히 영입하려 했다. 박 원내대표를 향해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했던 한 의원은 “이 교수가 우리 당과 정체성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게 우리 당에 집권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영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절차가 너무 틀렸다. 이젠 박 원내대표의 독주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가 저지른 실수 뒤엔 남성 중심적인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방법상의 오류가 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박영선의 실패를 여성 정치의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영선 파동이 여성들의 정치활동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진 예단할 수 없다. 어쩌면 한번의 사례로 끝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당분간 여성 정치의 미래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이는 한 여성 개인의 잘못을 전체 여성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키려는 잘못된 틀짜기(프레이밍)에 이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박영선을 여성 전체의 문제로 보려고 한다면, 이는 박 원내대표 개인의 책임을 비롯해 현재 새정치연합이 지닌 취약성과 한국 사회의 보수화,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일단, 박 원내대표 개인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자기를 비우거나 내려놓을 줄 모르는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인사는 “박 원내대표의 옷은 명품이 많지만 대부분 다 오래된 것들이다. 그는 비싼 옷을 구입하는 대신 체형의 변화에 따라 옷을 줄이거나 늘여가면서 오래오래 입는다. 나는 이번에 박 원내대표가 중대한 실수를 한 뒤에도 비상대책위원장을 내려놓거나 아니면 원내대표에서 물러나지 않은 것을 보면서 그의 낡은 명품들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값비싼 것들을 버릴 줄 모른다. 덧칠하고 수선하면서 계속 노력하면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여성들 사이의 소통에도 실패했다. 그가 원내대표에 출마했을 때 많은 당내 여성 의원들이 그를 도왔다. 하지만 이번에 그를 가장 많이 비판하고 실망한 쪽도 여성들이었다. 이는 박 원내대표가 기대했던 만큼의 선명성을 보여주지 못한 탓도 있지만, 자신을 지지한 여성 의원들과 공감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 원내대표의 한 여성 측근조차 탈당설을 듣고 “이젠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도무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보수정당 장기집권의 기로에 서다

130석을 지닌 거대 정당의 ‘저질체력’도 박 원내대표가 실패한 주요 원인이다. 박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밤 탈당 뜻을 밝혔을 때 일부 언론들은 박 원내대표의 탈당이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해프닝에 불과할 수 있는 사건을 놓고 이런 무리한 확대 보도가 가능한 것은, 국민들 일부는 ‘새정치연합은 현직 대표가 탈당도 할 수 있는 기율이 무너진 무능한 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표가 탈당한다면 이로 인해 의원들이 새정치연합에서 뛰쳐나가 새로운 중도 성향 당을 만들 수 있다는, 공상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먹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새정치연합이 얼마나 구심력이 약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박 원내대표가 아니라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당을 바로 세우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보는 것도 같은 얘기다. 윤희웅 민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이 “디제이(DJ)가 돌아와도 바꾸기 어려운 당”이라고 말했다.

정희진씨는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보수정당이 장기집권하느냐, 못 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새정치연합이든 진보정당이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박영선의 실패, 새정치연합의 무능함은 한국 정치의 보수화라는 전체적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은 현재 여러가지 군소정당이 있지만 자민당 하나를 이겨내지 못한다. 정치인의 세습주의, 경제난 등 비판받을 만한 소지가 충분한데도, 자민당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논란 등으로 정권의 정통성 시비에 휩싸였고, 세월호 참사 대응에서 총체적 무능함을 드러냈으나 꾸준히 지지율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박영선 파동’은 복잡한 맥락에 놓여 있다. 이 사건은 정치인 박영선에게 담긴 ‘개인 여성’을 되새기게 만들고, 리더십도 팔로십도 없는 새정치연합의 허약함을 직시하게 하며, 한국 사회의 물질주의와 짝을 이루는 정치적 보수화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이번 사건은 어느 누구도 메시아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새정치연합은 박영선을 잔 다르크처럼 치켜세웠지만 기대감의 봉우리가 높을수록, 실패에 대한 절망의 골짝은 그만큼 깊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박 대통령의 강공 선회, 그 내막은? [정치토크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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