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판에서 자해로 주도권을 잡는 경우가 있다. 정치에서도 그럴 수 있다. 최근 정치 뉴스의 주역은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세간의 관심은 새정치연합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에 쏠린다.
23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은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이희호·김홍업·김홍걸·권노갑·김옥두·남궁진 등 가족과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문희상 위원장을 반갑게 맞았다. 뒤섞이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확실히 그들은 그의 가족이자 동지였다. 문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감성적으로 표현했다.
“부끄럽다. 그리고 너무너무 새록새록 그립다. 그분의 리더십과 정치철학이 그립다. 그분은 지금 우리 당이 있게 한 존재의 이유이기도 한 분이었다.”
비대위 출범 사흘째인 24일 문희상 위원장은 “옛날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초사흘치레라는 걸 했다. 사흘 동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천행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스무하루 되는 날까지, 100일 되는 날까지 건강하게 자라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루하루 연명이 기적이라는 얘기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상태는 다급하게 산소호흡기를 단 중환자에 가깝다. 앞으로 회복될지, 식물정당이 될지 알 수 없다.
비대위에 참여하지 못한 계파나 중진들은 흰 이빨을 드러내며 몫을 요구하고 있다. 전당대회 모바일투표 얘기가 나오자 박지원·정세균 의원이 문희상 위원장의 멱살을 잡았다. 셋 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들이다. 문희상 위원장은 계파갈등 중단, 해당행위 엄정대처 등 뻥뻥 큰소리를 치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문희상 위원장이 새정치연합을 살릴 수 있을까? 없다. 그는 응급처치에 나선 당직의사일 뿐이다. 꼴까닥 넘어가기 직전인 새정치연합의 숨을 당분간 붙여놓는 것까지가 그의 역할이다.
그는 동교동계 출신이다. 그러나 디제이의 카리스마가 없다. 디제이는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선생님으로 불렸다. 당내에서는 돈과 공천권을 한 손에 쥔 독재자였다. 디제이는 생전에 문희상 위원장에게 ‘코란과 칼’ 중에서 코란만 보여주였다. 반쪽짜리 제자인 것이다.
당내에 그를 따르는 계파도 없다. 같은 처지였던 박영선 원내대표는 ‘바지사장’인데도 진정성과 애당심을 내세워 ‘오너’처럼 처신하다가 밀려났다.
어쨌든 문희상 위원장이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질문을 바꿔보자. 새정치연합은 무엇이 문제일까?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가 <조선일보> 칼럼에 ‘보장된 2등에 자족하는 자폐성’, ‘자신에게 관대, 반대파엔 무관용’, ‘민생 외면하고 민주주의 거부’, ‘당격 떨어뜨리는 소속 의원 막말’, ‘당외 인사가 지도하는 역학 구도’를 지적했다. 야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잘 쓴 글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가? 아니다. 현실 정치를 잘 모르는 학자 출신 외부인의 인상비평에 가깝다. 다섯 가지는 모든 정당의 문제이거나 오히려 새누리당이 더 심각한 그런 문제들이다.
오랫동안의 관찰과 고민이 느껴지는 내부자들의 분석이 가끔 페이스북에 뜬다.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보면 국회의원의 목표는 정의국가 건설이나, 부국강병 뭐 이런 것들이 아니다. 자신의 재선이다. 계파와 사조직과 돈, 이 세 가지가 모두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에서 더 중요하다. 민주당이 범상하다 못해 용렬해지는 것은 시대의 추세다. 재선에 연연하는 의원들을 비난하긴 쉽다. 언론인이나 학자들은 그런 점에서 선동꾼이다. 하나 마나 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진짜 제시해야 할 것은 야당 의원들의 행동양식을 바꿀 수 있는 동기 부여나 제도 변화에 관한 담론이다.”(이진수)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의원직을 지키거나 얻는 데 더 좋다는 생존본능 때문일 것이다. 이대로 가도 새민련이 다음 총선에서 100석은 얻는다. 당내 싸움에서 이기면 그다음은 매우 확률 높은 게임이다.”(윤석규)
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을 움직이는 시스템이 무너져 있다는 것이다. 효율성이 돋보이는 ‘총재 시스템’은 2001년11월8일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총재직 사퇴로 끝났다. 그 이후 정당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이후 거의 모든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그 결과일 것이다.
새정치연합을 제대로 된 정당으로 세우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다당제 및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새누리당의 반대로 불가능하다.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연쇄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두 가지다. 첫째, 공직선거 후보 공천 시스템을 정교하게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파벌주의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전략공천 폐지, 비례대표 연임 허용 등 몇 가지 아이디어가 나와 있다.
둘째, 당원과 지지층을 정비해야 한다. 새정치연합 당원·대의원들은 1987년 창당한 평민당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의원 및 지역위원장들의 사조직인 경우가 많다. 이건 제대로 된 정당이 아니다. 당원 정비는 야당 혁신의 출발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지층을 조직화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전당대회 유불리로 따질 일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문희상 비대위가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임받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내년 초에 등장하는 ‘선출 권력’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성공하면 2016년 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다.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총선 승리는 불가능한 목표다. 그러나 2017년 대선 승리는 가능하다. 야당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지만 차기 대선후보 경쟁력은 박원순·문재인 등 야당 쪽 주자들이 김무성·정몽준 등에 비해 강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