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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삐라와 산케이…남과 북의 ‘존엄’

등록 2014-10-14 10:29수정 2014-10-20 16:08

‘표현의 자유’ 들어 삐라 살포 방조해온 박근혜 정부
‘7시간 의혹’ 제기는 사법처리 이어 사이버 검열까지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77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연합과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들이 9월21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를 비난하고, 이승만·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영웅, 애국자, 개혁자‘로 칭송하는 내용의 전단 20만장과 1달러 1천장, DVD, USB 등이 담긴 풍선 10개를 북으로 날려보냈다. 파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연합과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들이 9월21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를 비난하고, 이승만·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영웅, 애국자, 개혁자‘로 칭송하는 내용의 전단 20만장과 1달러 1천장, DVD, USB 등이 담긴 풍선 10개를 북으로 날려보냈다. 파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남북의 총격전을 초래한 대북 전단 내용은 대부분 북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내용들입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타도하면 식량난도 해결되고 자유와 평화를 얻는다는 체제 전복을 선동하는 내용이거나, 김 비서와 그 부인 리설주의 확인되지 않은 ‘엽색 행각’ 따위 등이 그것입니다. 북의 입장에선 참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얘기들이죠.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을 체제 전복 위협으로 간주하는 북에서는 이런 ‘유언비어’ 살포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처형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거나 듣고도 신고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각 대응하지 않은 사람도 그와 비슷한 죄를 받게 됩니다.

그런 형법 체계나 형벌권 행사 방식을 국제사회나 남쪽에선 강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선 때마다 결의안을 채택해 북의 이런 기본권 침해를 중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북의 도발 위협과 남북 대화의 단절 위험에도 불구하고 남쪽도 그런 국제사회의 결의와 움직임에 동참해 왔습니다. 국제사회가 북의 인권 상황에 대해 가장 핵심적으로 우려하고 정상화를 요구하는 사항은 바로 ‘표현의 자유 보장’입니다. 정치범, 곧 ‘최고 존엄’과 ‘체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구금과 고문과 처형을 중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절벽’이었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들어갈 구멍 하나 없이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누구보다 공격적이었습니다. 분단 이후 남북은 상대방의 최고권력자를 비방 모략하는 삐라를 무차별 살포했습니다. 삐라는 총성 없는 총탄이고 폭발음 없는 폭탄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중지됐던 삐라나 방송을 통한 비방 모독이 부활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도 대화를 추진하면서 두 번씩이나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했습니다. 실제로 삐라 살포는 접전지역 주민들에 대한 현존하는 긴박한 위험이었기에 이를 빌미로 탈북자단체 등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규제한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한번도 삐라 살포를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상 규제할 수 없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 것이라며 헌법상 기본권을 들고나왔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단체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으로 삐라 살포를 사실상 조장했습니다.

6·25 전쟁 이래 처음이라는 삐라로 말미암은 남북의 총격전은 그 결과였습니다. 엊그제는 대공기관총 10발, 40발 그리고 개인화기 수십발이 차례로 오갔지만, 앞으로 삐라 살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북쪽은 최고 존엄의 모독, 곧 체제 붕괴 위협으로 간주해 저들이 해온 대로 할 것입니다. 총격전 이후 북은 거듭 ‘전단 격멸 작전’을 통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단 살포 원점 타격, 원점 초토화 등을 경고했던 터이고, 엊그제 총격전까지 벌인 터였으니 예사롭지 않은 상황입니다. 최고 존엄에 대한 비판(‘표현의 자유’)은 이렇게 북쪽을 격렬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공교로운 것은 남쪽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북이 전단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 이틀 전, 남쪽에선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기소했습니다. 불법 여부는 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겠지만, 정부에 의한 처벌은 이미 내려진 상태입니다. 기소 전에는 형사 피의자로서 출입국이 금지됐습니다. 이제 기소됐으니 형사 피고인으로서 상당한 수준의 공민권 혹은 기본권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사실 가토가 보도한 것은, 대북 전단에 들어 있는 ‘북의 최고 존엄의 엽색 행각’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그것을 이 정부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규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박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의 확산은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행적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서실장이 ‘경내에 있었다’고 한 게 고작이었습니다. 민주사회에선 공사를 떠나 국민의 요구가 있다면 공개하는 게 도리이고 원칙인데, 대통령은 줄곧 묵살해 왔습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라면 그런 보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한 일본 주요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한국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을 9일 지면에 실었다. 2014.10.9 / 도쿄=연합뉴스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한 일본 주요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한국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을 9일 지면에 실었다. 2014.10.9 / 도쿄=연합뉴스
그것을 두고 청와대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모독’으로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민형사상 처벌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뜻이 그런데 검찰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복종하지 않으면 사찰당하고, 출셋길이 막히고, 강제로 발가벗겨져 쫓겨나야 하는데 말입니다. 결국 이 정부는 저희들 ‘존엄’에 대한 의혹 제기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사회와 언론들이 일제히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하긴 북의 ‘존엄’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모독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하여 묵인하면서 자신들에게는 허용하지 않으니 어쩌면 더 나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남쪽에서야 ‘최고 존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기춘 비서실장이 호칭한 ‘윗분’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통령이란 호칭도 있는데 무슨 윗분입니까. 직책에까지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부를 리 없습니다. 영어권에선 항용 ‘미스터 오바마’ 혹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거나 씁니다.

표현이야 어떠하든 남쪽은 가토의 기소를 통해 ‘윗분에 대한 모독’의 원점을 타격했습니다. 활자 매체(삐라도 활자 매체입니다)에 대한 타격만이 아닙니다. 뒤이어 사이버 공간에 대한 타격도 공언했습니다. 활자 매체보다 더 많은 정보와 사적인 대화가 오가지만 통제가 어려운 사이버 공간에 대한 사찰과 처벌을 공언함으로써, 이 나라의 ‘표현의 자유’를 ‘막걸리 반공법 시절’로 되돌려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모두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대통령의 엄숙한 한마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북이 삐라의 원점을 향해 지프차도 전복시키는 대공기관총을 쏘아댄 것이나, 남쪽 정부가 ‘인신 구속’이라는 총을 비방과 모독의 원점을 향해 쏘겠다고 한 것이나 그 성격은 다르지 않습니다. 도대체 모를 일입니다. 지금 이 정부는 유신체제와 5공의 망령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북쪽을 닮아가려 합니다. 과문한 탓에 보고 배울 게 없어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생래적으로 그런 것입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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