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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사법체계 농락 “죄책 무겁다”면서도…국정원 4명중 1명 실형집행에 그쳐

등록 2014-10-28 21:34수정 2014-10-28 22:30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오른쪽)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기범 1차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오른쪽)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기범 1차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법, 간첩 증거조작 유죄 선고

심각성 비해 처벌 미흡
“불법 수사 관행이 안보 위협”
“견제장치 마련 시급” 목소리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여섯 차례나 증거를 조작하며 사법체계를 철저히 농락한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서 관련자 6명에게 모두 유죄가 선고돼 ‘1차적 단죄’가 이뤄졌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했다는 이유로 국정원 직원 4명 중 실제로 형이 집행되는 이는 1명에 그쳐,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 처벌이 미약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초유의 증거조작, “죄책 매우 무겁다”면서도…

사건의 뼈대는 2006년 5월 말~6월 초 유우성씨가 북한에서 간첩 지령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에 꿰맞추려고 국정원이 중국 공문서 4건과 주선양총영사관 영사사실확인서 2건을 위조했다는 것이다. 유씨 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검찰 조사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했던 진술을 1심 법정에서 뒤집는 바람에 무죄가 선고되자 다급해진 국정원은 항소심에선 유죄를 받아내려고 증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씨는 2006년 5월27일 북한에서 어머니 삼우제를 치르고 중국으로 나왔는데, 국정원은 그날 다시 입북해 6월10일까지 머물면서 간첩 지령을 받았다며 그에 부합하도록 증거를 꾸몄다.

이번 사건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중국 정부 공문서를 위조한 증거를 법원에 잇따라 냈다는 점에서 사법체계를 농락한 것은 물론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재판부는 28일 선고공판에서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했고, 재외공관 공문서의 진실성에 관한 공공의 신용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1심 결과로 실형이 집행되는 국정원 직원은 범행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김보현 과장뿐이다. 바로 윗선인 이재윤 대공수사처장은 실형을 선고받고도 방어권 보장 등을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했다. 다른 두 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반면 국정원 지시로 중국 공문서를 위조한 중국 동포 두 명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의 “죄책이 매우 무겁”고, 범행을 부인하는데다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안보 수호에 일익을 담당하는 등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봉사”해왔다는 이유 등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하지 않았다거나, 증거가 조작됐다면 협조자들 잘못이라며 발뺌을 했다. 증거 조작에 수천만원을 쓴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만약 유씨 변호인단이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면 유씨는 조작된 증거를 근거로 법정최고형이 사형인 간첩죄의 유죄를 선고받을 수도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국정원 직원들이 잘못에 상응하는 벌을 받으려면 간첩죄와 같은 형량으로 처벌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의 무고·날조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선 수사에서 검찰은 국정원 윗선들은 간여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위조 문서를 법원에 낸 검사 3명에게 정직 1개월 또는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유씨 변호인단은 이날 낸 성명에서 “법치국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증거 위조를 자행하고 국기를 뒤흔든 피고인들의 범행에 비해 경미한 형이 선고됐다”고 비판했다.

■ “불법적 대공수사 관행 근절해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법·탈법적인 대공수사 관행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원은 유씨 사건에서 중국 공문서를 위조한 것 말고도 여러 위법적 수사관행을 드러냈다. 유씨 사건 1심에서 그가 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북한에서 찍었다고 주장했으나 거짓말인 게 들통났다. 또 유씨 동생 유가려씨를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하던 중 변호인 접견과 서신 교환을 막았다. 법원은 이에 관해 변호인들이 낸 준항고를 받아들이면서 “유가려씨는 장기간 외부와 전혀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독방에서 조사를 받으며 국정원으로부터 ‘오빠가 처벌받고 나오면 함께 한국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심리적 불안과 중압감 속에서 친오빠를 위해 계속 조사에 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직파간첩’으로 알려졌던 탈북자 홍아무개(41)씨 사건에서도 지난달 1심에서 위법한 수사 방식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검찰이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조력권을 형식적으로만 알렸을 뿐, 진술을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거나 진술이 법정에서 유죄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이 간첩 수사 과정에서 단순히 사법절차를 위반한 것뿐만 아니라 불법적 방식으로 수사해온 관행이 오히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식 이경미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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