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낮 국회에서 시정연설과 여야 지도부와의 회담을 마친 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설 때 세월호 유가족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4.10.29 / 공동 취재 사진
박 대통령 시정연설…공무원연금 연내처리 강조도
여당 내부에서조차 “너무 경제 얘기만 했다” 혹평
여당 내부에서조차 “너무 경제 얘기만 했다” 혹평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며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도약하느냐 정체하느냐의 갈림길이며,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호소했다.
매년 국회를 직접 찾아 시정연설을 하겠다는 대선 공약에 따라 이날 국회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연설 내용 대부분을 ‘예산안 설명’과 ‘경제살리기를 위한 관련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데 할애했다. 37분 동안 이어진 연설 중 ‘경제’라는 단어가 59차례로 가장 많이 언급될 만큼 공을 들였다. 연설문 전체 기조도 최근까지 국회 법안 처리 지연에 대해 보여왔던 날 선 태도는 자제하고, 법안 처리의 절박함을 전하려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국민들이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싶어하는 ‘국가적 현안’이나 ‘국정 전반에 대한 구상’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대통령은 연설 직후 여야 대표와 만났을 때도 개헌 문제나 전시작전권, 대북전단 등 야당이 의견을 낸 부분에 대해서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민감한 현안을 피해갔다.
박 대통령은 우선 내년도 재정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정부는 내년도 국정운영의 최우선 목표를 경제활성화에 두고 예산도 올해보다 20조원 늘려 편성했다. 우리 경제, 재정 여건이 상당히 엄중한 상황에서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부득이 확대 편성한 것”이라며 “부디 내년도 예산안이 경제활성화의 마중물로, 국민행복의 디딤돌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법정기한(12월2일) 내에 처리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또 중국, 뉴질랜드, 베트남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비준동의안 처리도 부탁했다.
박 대통령은 예산안 외에 정부가 추진중인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연내 처리도 거듭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을 이번에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하면 다음 정부와 후손들에게 엄청난 빚을 넘겨주고 큰 짐을 지우게 된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에게는 “후손들을 위해 부디 조금씩 희생과 양보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과 주택시장정상화법안,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김영란법·유병언법’, 정부조직법안 등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국의 주요 이슈였던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나, 세월호 특별법 등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너무 경제 이야기만 했다”는 혹평이 나올 정도였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은 큰 구상과 비전을 얘기했어야 했다. 어디에 몇천억 예산을 쓴다는 자세한 얘기는 장관이 설명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다른 관계자도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국회에 왔으면 전시작전권이나 남북관계, 세월호 사건 등 안전 문제, 또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 전반적인 국가 현안 이야기를 좀 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전작권 환수, 세월호, 자원외교 국부유출 등 국민이 듣고 싶고 궁금한 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쉽다”며 “자유무역협정 역시 농축산업 등 피해 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 마련 없이 국회 비준동의 처리만 주문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대통령 스스로 쐐기를 박은 개헌 논의에 대한 ‘해금’이 없었고, 당사자인 공무원들과의 대화를 배제한 채 국회 처리 시한까지 못박으면 여야관계는 경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국회 본관 입구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박 대통령이 유가족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리자 극심한 실망감을 나타냈다.
석진환 황준범 이세영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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