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요구에 기자 해고’ 결정에
동아일보사, 진실 규명 취소 소송
각하→파기 환송→원고 승소까지
5년7개월째 여전히 심리중
판사조차 “이런 사례는 본 적 없어”
동아일보사, 진실 규명 취소 소송
각하→파기 환송→원고 승소까지
5년7개월째 여전히 심리중
판사조차 “이런 사례는 본 적 없어”
1974년 12월 <동아일보>에 이른바 백지광고가 실렸다. 기자들이 박정희 정권의 보도 통제와 언론인 연행 등에 항의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내놓자, 중앙정보부가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광고계약이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듬해 3월 회사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기자 18명을 해고했다. 대다수 기자들은 해고 대신 직원들 급여를 낮추자고 건의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회사가 정권에 굴복했다’며 신문·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 두달 동안 기자·피디·아나운서 등 직원 116명이 추가로 해임 또는 무기정직됐다. ‘광고 탄압’은 사건이 ‘정리’된 뒤인 그해 7월 중순에야 풀렸다.
33년이 흐른 뒤인 2008년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동아일보에 “유신정권의 요구대로 언론자유수호 활동 기자들을 해고한 데 대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동아일보사는 이에 불복해 2009년 3월 진실규명 결정 취소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성지용)는 그해 12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진실규명 결정이 “일반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을 뿐, 그 권고의 효력이나 불이익에 관한 규정이 없으므로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 변동을 초래하는 행정처분이 아니”라며 각하 판결했다. 서울고법 행정4부(재판장 성백현)도 2010년 9월 같은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지난해 1월, 진실규명 결정도 구체적인 법적 의무를 동반하는 행정처분이므로 소송 대상이라며 이를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된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박형남)도 같은 이유로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사건을 재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이승택)는 지난 4월 동아일보사의 손을 들어줬다. 진실화해위 조사 당시 사실상 ‘가해자’인 동아일보사에 자료 협조 요청만 했을 뿐 의견 제출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정권의 요구대로 언론인을 해고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고법 행정5부(재판장 조용구)도 9월24일 같은 결론을 냈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는 유신정권의 대표적 언론 탄압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법원은 ‘역사적 평가’를 부인한 셈이다.
이명춘 전 진실화해위 인권침해국장(변호사)은 “‘정부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은 없었지만 정부에서 기자들을 해임하라고 동아일보에 신호를 준 간접증거들을 모아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당시 누가 정부 개입이 없었다고 하겠냐. 다시 1심으로 내려왔을 땐 이미 위원회가 해산한 터라 소송 당사자가 된 국가의 적극적인 입증 노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2010년 12월 해산됐다.
‘1심 각하→2심 항소기각 및 각하→3심 파기환송→2심 파기환송→1심 원고 승소→2심 원고 승소’로 이어지는 5년7개월의 ‘롤러코스터 재판’은 아직도 진행형(대법원 계류)이다. 한 사건이 1심 2번, 2심 3번, 3심 2번으로 모두 7번의 심급별 심리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런 사례는 본 적이 없다. 매우 드문 사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동아일보사는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는데, 1·2심은 광고 탄압에 대한 정권의 개입을 인정해 동아일보사가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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