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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APEC 뒷이야기…20분은 ‘회담’, 70분은 ‘조우’인 이유는?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4-11-12 20:32수정 2022-08-22 09:33

[더(The) 친절한 기자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교도 연합뉴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교도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가 11일 이틀 동안의 각종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펙을 계기로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마무리짓는 한편,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상들을 만났다.

아펙 정상회의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태평양 주변의 주요 강대국 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탓에, 이번 회의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주목하는 뉴스거리가 무수히 쏟아졌다. 그럼에도 많은 뉴스의 틈 사이로 남아있는 3가지 ‘사소한’ 의문을 정리해본다.

1. 20분은 회담이고 70분은 ‘조우’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저녁 만찬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옆자리에 앉아 “다양한 현안에 대해” 대화했다. 만찬은 70분 동안 진행됐다.

정부는 두 정상의 만남을 ‘회담’이라고 부르기를 꺼린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 의제에 대한 조율없이 만난 ‘조우’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우(遭遇)’는 ‘우연히 서로 만남’을 뜻하는 한자어로, 국내 외교가에선 사전 조율 없이 만나는 경우를 가리켜 쓰는 표현이다. 비슷한 경우 일본 언론이 사용하는 ‘타치바나시(立ち話·서서 얘기함)’라는 표현은 좀 더 뜻이 명확하다. 앉을 자리도 사전에 잡을 수 없었을 정도로 계획없이 만났다, 다시 말해 아펙이나 주요20국(G20), 유엔총회 등 다자회의 회담장에서 오가다 우연히 만나 몇마디 이야기를 나눴다는 뜻이다.

다만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은 사전에 정해져있었고, 한·일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 알파벳 순에 따라 일본(Japan)에 이어 한국(Korea)을 배치한 주최쪽의 결정이 두 나라에 사전에 통보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양쪽 외교 당국은 사전에 어떤 이야기를 할지를 당연히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에선 “오랜 시간 옆자리에 앉게되는 만큼 관련 현안 등을 사전 정리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안다”는 말도 나온다.

외교부 국장 출신인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한-일 정상이 식사 석상에서 만난 건 우연은 아니지만 양쪽이 의도한 것도 아니다. 사전에 수십 차례 실무연락을 통해 의제와 일정을 조율해 ‘오케이’ 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뤄지는 정상회담과는 분명 다르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베와의 70분 만남’을 ‘조우’라면서, 이튿날인 11일 오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20분 만남을 ‘정식 회담’이라고 강조하는 건 분명 대조적이다. 청와대는 대통령 출국 전부터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홍보했지만,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오전 10시(현지시각) “100% 확신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무산 가능성을 시사했다. 2시간 뒤엔 “오늘 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2시30분께,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시간은 20여분 한 것 같다”며 개최 사실을 확인했다. 장소는 호텔 한켠의 회의실이었다. 일정을 잡는 데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의 결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한-일 정상의 만남, 한-미 정상의 만남이 어느쪽에 득과 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아베 총리에 대해 ‘과거사 관련 성의있는 조처’를 요구하며 정상회담에 대해 빗장을 건 한국이 일본과 정상 간 만남을 했다는 사실, 또 에프티에이 타결로 한-중이 가까워진 데 대한 미국의 불만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은 ‘외교적 고립’을 우려하는 국내 비판을 의식한 조처로 보인다.

2. 아베 만나 표정 굳었던 시진핑, 왜 그랬을까?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아베 총리에 대해 극심한 불신을 보이며 2년여 중-일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아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드디어 아베를 만났다. 아펙을 하루 앞두고 중국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뉴스는 한-중 FTA 타결이 아니라 중-일 정상회담 소식이었다.

두 정상의 만남은 사실 예고된 것이었다. 중국은 아펙 주최국으로서 회의 참석차 오는 각국 정상을 맞아야 할 일종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일 간에도 같은 전례가 있었다.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펙 정상회의 때도 한-일 간 외교 환경은 좋지 않았다. 같은 해 2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고 한국 쪽은 맹반발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 연후에 화해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고,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독도는 한일관계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에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이 등장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10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취임 이래 5년 연속 참배 기록을 세웠다. 이런 ‘강대강’ 국면에서도 아펙 회의에선, ‘주최국’인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손님’인 고이즈미 총리를 맞아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중국으로서는 ‘2년여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았던 태도를 왜 바꾸게 되었느냐’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곧, 명분이 관건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펙 개막을 며칠 앞둔 지난 7일 중-일 두 나라가 합의한 ‘관계 개선 4대 원칙’이 눈에 띈다. 두 나라 정부는 이날 ‘중-일 관계 개선을 향한 대화에 대해’라는 제목의 공동문서를 통해 △전략적 호혜 관계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를 향한다는 정신에 따라 양국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 곤란을 극복하며 △센카쿠열도 등에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양국간 채널을 통해 상호신뢰 관계를 구축한다는 등의 네 가지 합의사항을 공개했다.

아베 총리를 맞이한 시 주석의 딱딱한 표정도 ‘명분’이란 관점에서 풀이가 가능하다. 시 주석으로서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영토 문제에서 납득할 만한 전향적 조처를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왜 정상회담을 해야 하느냐는 중국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시 주석은 다른 정상들을 만날 때는 더러 가벼운 미소를 짓기도 하고, 활짝 웃기도 했지만, 유독 아베 총리를 만날 때만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11일 아베 총리를 다시 만났을 땐 카메라를 향해 미소가 나올 듯하다가 억지스러워 보일 정도로 표정을 굳히면서, 취재진 사이에 폭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한 장의 사진이 여러 함의를 동시에 지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 주석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베 총리로서는 ‘굴욕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당시 한국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등 자신을 무시하는 듯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데자뷔’(기시감)를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냥 굴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는 북한을 방문해 납치 피해자 문제 교섭을 처음 시작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시종 굳은 표정으로 일관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 총리 또한 시 주석이나 박 대통령과 같은 고민을 한 결과였지만, 일각에선 ‘굳이 저기까지 가서 저래야 하나’ 하는 평가가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 주석에 대해 ‘기왕 만나기로 한 건데, 굳이 저래야 하나’ 하며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일본 국내 평가가 나온다면, 아베 총리로서도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물론 거꾸로 ‘저자세’ 외교에 대한 일본 내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3.시진핑은 왜 아펙 참가국 21개국을 기러기에 비유했을까?

시 주석은 11일 아펙 정상회의 축사에서 중국의 옛말을 인용해 “한 송이 꽃을 봄이라 할 수 없고, 한 마리 기러기가 무리가 될 수는 없다”(一花不是春 孤雁難成行)고 말했다. 앞구절은 시 주석이 지난 7월 방한에 앞서 국내 언론 기고문에서 인용했던 “꽃 한송이가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온갖 꽃이 만발해야 비로소 봄이 왔다고 말할 수 있다”(一花獨放不是春,百花齊放春滿園)는 글귀를 줄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기러기에 대한 비유는 좀처럼 쓴 기록이 없다.

또 시 주석은 이날 축사에서 “바람이 흰 물결을 천 송이 꽃처럼 쳐올리고, 기러기는 푸른 하늘에 한 줄을 긋는다”(風飜白浪花千片 雁點靑天字一行)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구도 인용하며, 또다시 기러기를 등장시켰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21개 아펙 회원국은 21마리의 기러기와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시 주석의 비유는 행사장이 베이징 외곽 옌치후(雁栖湖) 국제회의센터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옌치후라는 명칭 자체가 ‘기러기(雁)가 서식하는(栖) 호수(湖)’라는 뜻이다. 시 주석은 “옌치후라는 명칭은 해마다 봄·가을에 기러기떼가 날아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며 “우리가 오늘 옌치후에 모인것은 협력을 강화하고 함께 날개를 펴고 함께 발전하면서 아·태 지역 발전을 위한 새 비전을 쓰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관광국 누리집(visitbeijing.or.kr)은 옌치후(▶링크)를 “풍경감상, 휴가 및 바캉스, 레저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관광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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