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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선장의 부작위와 대통령의 부작위

등록 2014-11-17 15:35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이 11일 오후 광주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1심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왼쪽 사진) 공판이 끝난 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주지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사진공동취재단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이 11일 오후 광주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1심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왼쪽 사진) 공판이 끝난 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주지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사진공동취재단
책임 다하지 않아 승객 죽게한 선원들 ‘부작위 살인죄’
구조조치 의무 하지 않은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82

그래도 ‘박근혜의 검찰’은 오랫동안 회자될 화두 하나를 남겼습니다. 지난달 27일 세월호 참사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선장 이준석씨 등 일부 선원에 대해 적용한 ‘부작위 살인죄’가 그것입니다. 검찰이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긴 했지만, 형법 귀퉁이에 끼어 있던 부작위 살인죄를 끄집어낸 것만은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그건 이 땅에서, 권력과 함께 책임을 진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죽었거나 죽어가는 국민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정부, 입법부, 사법부, 검찰, 경찰 등등.

세월호가 304명의 시민을 태운 채 서서히 침몰하는 것을 지켜봤던 시민들은 지금까지도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간인데도 티브이나 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민들은 그런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방송은 한동안 모두 구조됐다는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물론 곧 수정은 됐지만, 시민들이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안다고 해도 맹골수로에 뛰어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럴 책임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서 해경의 만류에도 구조에 나섰던 어민들까지도 자책하고 있습니다. 유가족을 돌보던 김모 경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은 ‘그때 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가?’고 저의 부작위를 자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땅히 구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자들, 그러나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은 자들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당장 승객들을 놔두고 탈출한 선장부터 이 혐의를 피하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시민의 상식, 시민의 법 감정과 도덕 감정에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 더러운 것은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고는 그것으로 면죄부 삼으려는 ‘권력의 부작위’입니다.

검찰이 이 죄를 적용한 이유는 배가 침몰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대로 있다가는 죽게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방송장비·전화·비상벨·무전기 등으로 승객들을 퇴선시킬 수 있었지만 그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거듭한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할 고의성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장이 퇴선 방송을 하도록 지시했으며, 선장은 승객들이 해경에 의해 구조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승객들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을 넘어 이를 용인하는 의사가 피고인들에게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부도 이 혐의를 충분히 고려했지만,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검찰이 처음에 살인죄를 적용하겠다고 했을 때 법리적 정당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긴 했습니다. 아무리 인두겁을 쓴 악마라 해도 어떻게 수백명의 승객이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을까? 적잖은 시민들은 살인죄에 적용에 머리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가이드라인을 내렸으니 검찰로서는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겠죠. 국민적 분노가 현 정권에 쏟아지는 것을 차단하고, 세월호 참사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형이라는 과도한 법 적용에 의지한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던 건 그런 까닭입니다.

여하튼 검찰은 궁리 끝에 형법의 먼지 쌓인 한 귀퉁이에서 부작위 살인죄를 끌어냈습니다. 멋진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가 권력자들에 대해 갖는 치명성을 검찰은 간과했습니다. 부작위 살인죄는 책임 있는 자, 곧 권력자에게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배 안에서는 선장, 회사에서는 대표이사, 그리고 나라에서는 정부 기관장, 사법부, 입법부, 검찰, 경찰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통령 등이 그들입니다. 당장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검찰은 정권에는 악마, 국민들에겐 천사와도 같은 조항을 살려낸 것입니다.

아무런 책임이 없는 시민들이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칠 때 구조·구호의 책임이 있던 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선원들이야 그렇다 해도, 국민의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은 무어라 변명하고 있습니까. 그 상징적인 발언이, 배 안에서는 ‘가만히 있으라’였다면, 이 나라에서는 ‘청와대는 콘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결과적인 책임뿐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사건을 장악하고 적절한 조처를 취해 인명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청와대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대통령은 사건 발행 후 8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안보실장, 비서실장 등에게조차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범정부대책기구에 나타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잠꼬대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고 후 1시간 반 뒤 세월호가 선미만 남긴 채 가라앉은 상황에서야 처음으로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고, 해경 특공대가 출동한 지 1시간 지나서야 특공대 출동을 지시했습니다. 사고 순간부터 범대본에 나타날 때까지, 가장 중요한 그 시간은 대통령과 청와대에겐 ‘총체적 부작위의 시간’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려고 본청에 들어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려고 본청에 들어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비서실에선 첫 보고 후 19차례나 보고를 했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거짓 보고가 아니었다면 대통령은 최소한 세월호 상황에 대해선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보고를 받고도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면, 인지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있어 직무 수행이 힘들다든가 아니면 고의로 방치한 것이 될 것입니다.

검찰은 선원들에 대해 부작위 살인죄를 적용한 이유에 대해 ‘퇴선 준비 등 가능한 구조조치 의무를 하지 않아 많은 승객들이 사망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논고는 이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구조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고 수단도 충분했지만, 대통령과 이 정부는 아무러 조처도 취하지 않아 승객들이 사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손톱만큼의 양심이 있다면, 304명의 국민이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의 부작위에 대해 스스로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래야 고의성에 대한 의심도 덜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콘트롤 타워가 아니었다’ ‘구조 지시를 했다’ ‘해경이 다 구조한 줄 알았다’ 따위의 변명만 늘어놨습니다. 그건 선장이 부작위 살인죄를 피하기 위해 법정에서 늘어놨던 ‘탈출 지시를 했다’ ‘해경이 구조할 줄 알았다’고 했던 변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작위 살인죄가 나왔으니 말이지, 사실 이 정부 아래서 그런 지탄을 받을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졌습니다. 세 모녀 사건과 피하지 못해 불에 타 죽은 장애인, 장애아 가족의 잇따른 자살, 밀양 할배들의 죽음,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 경주 마우나리조트 부산외대생 참사,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 삼성전자 백혈병…. 책임 있는 자들의 부작위 속에 국민들이 죽어가거나 죽은 일들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사건의 연장 속에서 일어난 참변이었습니다. 권력 부작위의 랜드마크와 같은 것이었죠. 그동안 정권의 의지에 따라 역주행에 앞장서온 대법원은 정리해고의 요건을 대폭 용인해, 일자리에서 내쫓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곽병찬 대기자
엊그제 여의도의 여러 고층빌딩에서 ‘너희들이 죽였다’는 삐라 수만 장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책임 있는 자들의 부작위에 대해, 절망으로 내몰린 이 나라 청년들의 고발입니다. 앞서 이하 작가는 이 정부를 수배하는 전단을 뿌렸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요?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 정권의 부작위를 누가 누구에게 고발하고, 또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 호소하고, 국민이 깨어나기를 기대하며, 막다른 고층건물로 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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