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작가 이부록 씨.
[짬] ‘김근태 3주기 추모전’ 참가 설치미술작가 이부록씨
수유동 자택 물건들로 ‘서재’ 꾸며
책·자격증·옥중 연애편지·신발 등등 좁은 작업실엔 전시장의 서재에 내놓을 김 선생의 책과 물건들이 빼곡했다. <민주노동>, <동문학>, <노동자와 정치>, <노동문학>, <노동하는 일간>, <일하는 사람을 위한 경제지식> 등 빛바랜 잡지와 단행본들, 반듯한 정자체로 강의 내용을 적은 대학 시절 노트,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 고 문익환 목사가 감옥에서 전해온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시의 원본, 각종 기술 자격증,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썼던 수첩, 축구화, 구두, 서랍장, 전화카드 등등. 이씨는 버려진 사다리와 집 근처에서 주운 널판지로 만든 책장에 이 물건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또 안경, 휴대전화 같은 소품들은 직접 나무로 만든 곽에 담을 생각이다. 고인의 3주기 추모전인 ‘생각하는 손’은 이 오는 4일~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문에서 열린다.‘김근태를 생각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근태생각’(근태생각)이 기획한 전시다. 전시에는 이씨를 비롯해 노동을 주제로 꾸준히 작업해 온 작가 김진송·배윤호·심은식·이윤엽·임민욱·전소정·정정엽씨와 옥인콜렉티브·콜트콜텍 기타노동자밴드가 참여해 회화·영상·설치 등 다양한 작업 40여 점을 선보인다. 전씨는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미싱사와 김치공장의 노동자를, 배씨는 일자리를 찾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동자의 일상을, 임씨는 가슴에 구멍 뚫린 사람들이 사는 나라 ‘관흉국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상처를 드러내는 식이다. 각자 ‘생각하는 손’을 움직여 노동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는다는 게 기획 의도다. 몇달 전 ‘근태생각’으로부터 출품 제의를 받고 이씨는 김 선생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글·인터뷰 등을 살피고, 수유동 자택을 찾아가 김 선생의 딸 병민씨와 함께 전시회에 내놓을 물건들을 직접 골랐다. 운동권 대부, 민주화운동의 전사, 국회의원, 장관 등 다양한 이력 중에서 이씨는 특히 70~80년대 청년 김근태의 노동자로서의 삶에 주목한다. 당시 김근태는 고압가스 기계기능사·태양열 집열기 시공기술요원·열관리기사·건설기계기사·가스산업기사·위험물관리산업기사·위험물취급기능사 등 10여종의 기술 자격증을 땄다. 보일러공으로 일하면서 짬이 나면 역시 노동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던 ‘옥순씨’(훗날 부인이 된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가명)에게 절절한 연애편지를 썼다. 이씨는 “투쟁과 탄압의 거친 상황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깨알같이 써내려간 옥중 편지들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망각의 경계에 있는 그의 유품들을 드러내기 위해, 사물 하나하나마다 집을 지어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회장 바닥에 지름 4m의 판옵티콘 문양을 만든 뒤 그 위에 서재를 재현할 계획이다. 이씨는 “김 선생이 좁고 어두운 감옥 안에서 자신의 피와 살을 깎고 문질러 민주주의를 빚고 지켜내려고 했던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의 현재 또한 그가 겪었던 국가권력의 폭력과 감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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