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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쿠르드 유전 문제될 게 뻔해’ 중동 담당 실무자 끝내…

등록 2015-01-20 22:24수정 2015-01-21 10:51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공사직원 ‘재해조사서·경찰기록’
“상사들은 임기끝나면 없을거고
결국 내가 다 뒤집어쓸수 있다”
상부질책과 사업확대 부담느껴
두번째 사표 반려뒤 극단적 선택
▶ 한 눈에 보는 ‘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이라크) 쿠르드 사업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거라 말했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상사들은 임기가 다 끝나서 회사에 없을 거고, 결국은 실무 담당했던 자신이 다 뒤집어쓸 수도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세상에 전해준 말이다. 그 남편의 말을 직접 물을 수 없었다. 그는 2011년 6월3일 자신의 집 안방 화장실에서 삶을 접었다. 아침 7시30분께, 15년 출근길에 맸던 넥타이에 그가 매달려 있었다. 석유공사 중동탐사팀 배아무개 과장이다. 당시 마흔살, 두 자녀의 아빠였다.

당일 아침 남편의 부고를 회사에 알린 아내 임아무개(41)씨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회사는) 어느 정도 예견한 듯한 분위기였다. 화가 나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며 “정부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사업에… 이런 말도 안 되고 힘든 환경에서 (남편은) 묵묵히 일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고 배 과장의 ‘재해조사서’(근로복지공단), 경찰조사 기록 등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유가족의 분노가 회사와 정부를 향한 데엔 까닭이 있다. 석유공사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배 과장의 첫 직장이었다. 과묵하기로 정평 난 그가 “국내탐사팀에 근무할 때 행복했었다”고 한 말을 동료들은 기억한다. 배 과장은 2010년 12월부터 중동탐사팀에서 이라크 쿠르드 사업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라크 쿠르드 원유개발 사업은 ‘이명박 자원외교’의 첫 결실이었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개입해 쿠르드 지방정부를 상대로 19억배럴짜리 유전광구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막상 파보니 돈 되는 원유는 많지 않았다. 되레 공사는 약속한 건설투자(SOC)에 발목 잡혔다. 쿠르드 정부가 건설투자 사업이 부진하다며 애초 계약한 보상 원유량을 줄이고, 건설투자비를 아예 현금으로 달라고 계약 변경을 요청하면서다. 배 과장이 인사가 날 즈음인 2010년 말 해당 사업의 손실은 1조3000억원(감사원 감사 결과)에 육박했다.

‘이명박 자원외교’ 북소리에 맞춰, 석유공사는 암초 위에서도 노만 젓는 격이었다. 배 과장 쪽은 “현 정부의 자원외교 국책사업으로, 회사는 석유사업에 참여하는 대신 쿠르드 지역에 사회기반시설을 제공하기로 했으나 탐사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회사는 (오히려)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실제 회사 법무팀의 고아무개 과장(변호사)은 “공사는 민간기업과 그 성격이 달라 (사업 내용에 대한) 일회성 정부 신고에 그치지 않고, 정부 요구 시 수시로 정보를 보고해야 하며, 사업 방향을 점검받아야 한다”며 “공사는 쿠르드 정부와 계약 수정을 통해 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 동료는 “사장, 부사장으로부터 많은 지시나 질책을 받아 부담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닷새 중 평균 나흘을 야근하던 배 과장은 무너졌다. 업무 고충 위로 불안감이 포개졌다. 한 동료는 “이라크 사업 자체가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절차적, 법률적 모순이 많다고 (배 과장이) 토로”했다고 말한다. 집에선 수면유도제를 먹기 시작했다. 회사에선 “구속되겠다” “죽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언젠가 ‘감사받을 때 다 일러버릴까?’ 묻는 배 과장에게 아내는 “우리나라에선 내부고발자 삶은 너무 힘드니 그냥 자기가 그만두고 나오라고 했다”고만 말했다.

배 과장은 5월30일 사표를 제출했다. 목숨을 내던지기 나흘 전이고, 4월20일자 사표에 이어 두번째였다. 회사가 거부했다.

6월 들어 계약 협상을 위한 쿠르드 출장 준비가 배 과장에게 할당됐다. 강영원 사장, 김성훈 부사장 등이 동행할 참이었다.

그즈음이었다. 화장실 앞에서 쭈그린 채 우는 배 과장을 동료들은 보았다.

6월2일 아침 배 과장은 슬리퍼를 신고 출근했다가 한참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종일 회의였다. 귀가한 배 과장에게 아내는 부러 말을 아끼고 데워둔 홍삼즙만 건넸다. 자기 전 담배 피우러 집 밖으로 나가겠다는 배 과장은 속옷 차림이었다. 거실에서 자던 아내가 놀라 옷을 입혔다. 새벽 5시께 배 과장은 깼다. 다시 누웠다 6시30분께 또 깼다. 7시쯤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그리고 배 과장은 영영 출근하지 않았다.

열달 뒤인 2012년 4월 석유공사는 내부보상심의를 열어 배 과장 유족 쪽에 보상금 1억5000만원(장의비 1200만원 별도)을 제공했다. 합의서엔 “(회사) 임직원에게 망인의 사망과 관련한 추가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사망 1년여 만인 2012년 7월 배 과장은 산재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다. 가족은 석유공사에서 받은 보상금을 모두 반납했다. 그 또한 합의 사항이었다.

아내 임씨는 “당시 장례식장에 온 (강영원) 사장님에게 제 남동생이 ‘너무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다’고 했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1주일마다 회의를 했는데 배 과장 힘들단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더란다”며 “5월30일 사직서가 책상 서랍에서 나왔단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고 아팠다”고 말했다.

배 과장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흑색 빼곡한, ‘자원외교’용 업무수첩만 가족에게 겨우 되돌아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한 눈에 보는 ‘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https://www.hani.co.kr/interactive/energy_diplomacy/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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