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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골프를 이용한 박정희…골프에 ‘봉’ 된 그의 딸

등록 2015-02-06 14:29수정 2015-02-06 14:30

1971년 7월 미국의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오른쪽)과 태릉 육사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박정희.  ‘73보도사진연감’
1971년 7월 미국의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오른쪽)과 태릉 육사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박정희. ‘73보도사진연감’
골프 즐기지 않던 박정희, 쿠데타 후 ‘사교클럽’으로 이용
그 시절에도 ‘골프가 경제 살린다’ 는 말은 안 나왔는데…
가뜩이나 화나 있는 서민들에 ‘골프가 경제 살린다’라니
[김의겸의 우충좌돌 11]

나도 골프를 칠 줄 안다. 10년 전쯤 미국의 어느 대학에 연수를 가 있는 동안 배웠다. 학교 부설 골프장이 있는데 70만원이면 일 년 내내 즐길 수 있었다. 함께 연수를 했던 한국 교수가 이렇게 권유했다. “한국에서는 골프 한번 치려면 최소한 30만원은 들어. 여기서 안 치고 있으면 날마다 30만원씩 손해 보는 거야.”

그 골프장에서 만난 어느 미국인이 물었다. “왜 한국 사람들은 다들 골프라면 환장하는 거야?” 영어가 짧아 제대로 답변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별짓기>란 책에서 말한 아비투스(habitus)가 정답이 아닌가 싶다. 우리말로는 습속(習俗) 쯤으로 번역되는데, 특정한 취향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기제를 말한다. 이게 의식적으로 나타날 때는 자신을 남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되기도 한다. 즉 축구보다 골프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은근히 자신이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부르디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지배적 취향이 인지하고 평가하는 모든 특징은 골프 테니스 요트 승마 스키 펜싱 등의 스포츠에 집약되어 있다. 이들 스포츠는 전용장소에서 본인이 선택한 시간에 혼자서 혹은 선택된 파트너와 함께 한다. 또한 이들 스포츠에 소모되는 체력은 비교적 적으며 소모량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그 특수한 기법을 습득하려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들은 어떤 사람이 부르주아지에 얼마나 오랫동안 속해 있었는지를 가리키는 가장 확실한 지표 기능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는 좁은데 인구는 넘쳐난다. 게다가 경쟁이라면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니 골프만큼 구별짓기를 하기에 적합한 취미가 없어 보인다.

이 ‘구별짓기’ 개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골프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가 박정희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구별짓기>가 출간된 게 1979년이니 읽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다.

박정희 장군은 5·16 쿠데타 이전까지만 해도 골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대부분의 국군 장성들이 주한 유엔군이나 대사관 사람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파티도 곧잘 즐겼으나 박정희 소장은 이런 자리에 끼기를 싫어했다. 5·16이 일어났을 때 그가 골프 못 치는 유일한 장군이며, 미국식 애칭의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 뉴스가 될 정도였다.”(이상우, <박정권 18년 : 그 권력의 내막>) “어쩌다가 마지못해 파티에 참석했을 때도 박정희는 홀로 한쪽 구석에서 술만 마시다가 시시덕거리는 다른 한국 장성들을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는 먼저 자리를 빠져나오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박정희가 5·16 쿠데타 뒤로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된다. 1962년 최고회의 의장 시절 한장상 프로에게서 골프 레슨을 받아 골프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스트레스가 쌓여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으면 능동 서울CC로 달려가 골프를 즐겼다. 그가 골프를 시작하면서 서울, 한양, 뉴코리아, 안양, 태릉 등의 컨트리클럽들이 문을 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20여 개의 골프장이 개장됐다고 하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골프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게 그린에 올라가면 퍼팅을 딱 한 번만 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골프는 다 좋은데 말이야. 퍼팅을 할 때 머리를 숙여서 몸에 부담이 되는 데다 신경이 쓰여 안 좋아. 스트레스를 풀러 와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되나?”

대통령이 골프를 좋아하니 힘 좀 쓰거나 돈 깨나 있다는 사람들도 덩달아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골프장은 상류층이 모이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자 사교클럽이 됐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 대통령 덕을 봤거나 보려는 사람들이니 박정희 신화가 창조된 공간이기도 하다. 구별짓기에서 배제됐던 박정희가 권력을 쥔 뒤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구별짓기에 나선 셈이다.

박정희의 이런 변신은 우선 자신이 골프에 재미를 들인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전략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골프를 활성화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특히 군인들에게 골프를 치게 한 걸 보면 그렇다. 1966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인데도 사관학교 생도들을 위해 태릉 골프장을 만들어줬다. 국내 세번째 골프장이었다. 서울 인근 군부대의 일반 사병들을 동원해 땅 파고 밀고 잔디 심으면서 지었다. 이후 70년부터는 군의 사기 앙양을 위해 대통령배 각 군 대항 골프대회까지 시작됐다. 그러니 군인들이 너나 나나 가릴 것 없이 지휘봉 대신 골프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미래 한국을 이끌고 나갈 인재들은 국제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골프를 알아야 한다는 게 골프장 건설 이유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쿠데타의 힘을 아는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군인들을 자기 편으로 안전하게 묶어두기 위해서는 뭔가 당근이 필요했을 것이고 골프가 ‘어른들의 놀이터’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골프를 통해 군인, 정치인, 사업가 등 우리 사회 특권세력이 함께 어울리며 우정을 쌓게 되고 단합을 과시하게 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권력 기반이 강화되는 것이다. 골프는 박정희 지지세력 사이에서 일종의 ‘아비투스’였던 셈이다.

실제로 이런 문화 속에서 전두환, 노태우는 젊은 시절부터 골프를 익히고 골프장을 걸으며 정치적 야망도 키워나갔다. 골프 치고 양주 마시면서 우리 사회 기득권들과 한 몸이 됐고 정치적 혼란기가 다가오자 그 골프 친구들이 ‘구국의 결단’을 권유하게 된다. 만일 전두환, 노태우가 축구를 계속 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그런 큰 욕심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군에서 형성된 이런 구별짓기는 유구한 전통으로 내려와 이제 군은 ‘골프 천국’이 됐다. 군은 국방부 3곳, 육군 7곳, 해군 5곳, 공군 14곳 등 전국에서 군 골프장 29곳을 운영하고 있다. 총 320홀 규모다. 새로 짓고 있는 골프장 3곳까지 합하면 곧 30곳이 넘는다. 군 골프장의 ‘단골 손님’은 물론 ‘별’을 단 장군들이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1년과 2012년 육·해·공군 장군 450여명이 2만2000번 넘게 군 골프장을 출입했다. 한 명당 연평균 24.5회 정도니까 2주에 한 번씩 골프를 쳤다고 볼 수 있다. 군대에서 낡은 축구공을 차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부대에서 축구공 하나 얻으려면 보고서 쓰고 예산안 작성하는 등 어찌나 번거로운지를 말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야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고 하지만 딸 박근혜 대통령은 왜 골프를 활성화하겠다고 나섰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수첩을 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3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전에 “골프 활성화 방안을 문화체욱관광부에서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수첩을 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3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전에 “골프 활성화 방안을 문화체욱관광부에서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제를 얘기하지만 경제 성장에 총력을 쏟았던 박정희 시절에도 골프가 경제를 살린다는 얘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골프를 쳐서 경제가 살 정도라면 도대체 공무원들이 얼마나 많은 향응과 접대 속에 빠져 살아야 하는 건지 참으로 곤혹스러운 논리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증세 논란으로 화가 나 있는 서민들한테 이런 얘기를 태연하게 꺼내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매를 번다”고 표현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딱 그 짝이다.

프레지던츠컵 얘기도 하던데 그건 더 우습다. 무슨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아니고 미국 PGA가 주관하는 ‘듣보잡’ 행사에 왜 우리가 열광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국가 대항전도 아니고 미국 한 팀과 나머지 나라가 모두 모인 인터내셔널 한 팀이 붙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 인터내셔널팀에 선수 한명 끼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미국 PGA 부사장이 한국에 머물며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얼마전 인터뷰를 한 걸 보니 스폰서를 잡기 위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제발 좀 소개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봉’이 되는 구조다.

그러기에 내 결론은 이거다. 골프 치고 싶은 공무원들이 온갖 달콤하고 솔깃한 말로 대통령을 속인 거 라고…. 나도 골프를 쳐봐서 그 치명적인 매력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니 아버지는 골프를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딸은 너무 순진하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한번은 비극이고 한번은 희극’이라는 말은 이런 때에 제격이지 않나 싶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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