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련은 1987년 12월16일 유신독재 이후 첫 직선제 선거였던 13대 대선을 앞두고 공식적으로 ‘김대중 후보 비판적 지지’ 결정을 했으나 내부적으로 ‘후보 단일화’ 세력과 나뉘어 대립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주정권 교체 실패’의 책임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사진은 대선 직후 12월18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부정선거무효화투쟁본부’에서 주최한 부정선거 규탄대회에서 문익환 의장(가운데 마이크 든 이)을 비롯한 집행부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용수 작가 제공
[김의겸의 우충좌돌 14]
양김 둘러싼 ‘비판적 지지’의 후유증 갈수록 심화
만성적 대립·갈등 속 선거법 협상 테이블 막 열려
당시 책임 있는 여야 당사자들, 부채 털 수 있는 기회
올안 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 도입에 온힘 쏟아야
‘민통련’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27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한겨레>도 요즘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의 18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민통련을 다루고 있다.
민통련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가 한여름 밤의 불꽃놀이처럼 화려했다면 그해 겨울의 대선 패배는 빙하기만큼이나 지루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다 죽어가던 수구냉전세력이 되살아났다. 지역갈등이 극대화되어 이제는 백약이 무효인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화운동세력은 뿔뿔이 흩어졌고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하다.
뿔뿔이 흩어진 민주화세력…국민 눈길은 싸늘하기만
이토록 뼈아픈 패배와 민통련이 당시 채택했던 ‘비판적 지지’ 사이에는 분명한 함수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잖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서인지 비판적 지지는 오랫동안 일종의 금기어였다. 과거 비판적 지지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딱지가 내려앉은 것일까? 30주년 행사를 앞두고 비판적 지지에 대한 ‘반성’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도 과거 비판적 지지파 사이에서다.
민통련 부의장으로서 비판적 지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창복 전 의원이 <한겨레> 23일치에 실은 회고의 글이 아마도 최초의 글이 아닐까 싶다. 이창복은 거기서 “처음부터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의제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어야 옳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우리는 민통련의 대선 개입으로 운동권 내부의 심각한 분열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반성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거나 “재야운동단체로서 제도권 선거 개입 결정은 신중했어야 옳았다. 민통련의 강령이나 선언에 충실했어야 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민중의 힘으로 완수하고 군부독재의 제 악법을 철폐하고 국민의 기본 권리를 수호한다는 목적에 몰두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해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열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30주년 좌담회에 참석해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회고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민통련 정책실 차장 출신의 이해찬 의원 얘기는 더 분명하다. 그는 한겨레가 마련한 좌담회(30일치 게재 예정)에서 “민통련이 착각한 것이 한쪽으로 힘을 몰아주면 단일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 먹히더라고요. 민통련의 과실이었죠”라고 인정한다. 그는 이어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지금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한다면, 여론조사가 아니더라도 ‘당의 룰’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의 의결구조를 먼저 만들도록 하고요. 거기에는 동의를 안 할 수가 없잖습니까. 민통련의 경우 당 안에서 심판을 봐야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특정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당시의 통일민주당이 어떤 식으로 단일화를 할지 규칙을 만들도록 강제해, 그 틀 안에 김대중 김영삼 두 김씨를 묶어놓고 그 규칙에 따르도록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해찬 의원은 더 나아가 “1987년 대선 뒤 민통련 자체를 진보적 정당으로 만들었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길지만 그의 말을 옮겨보면 이렇다. “1988년 총선 때 우리는 평민당으로 갔고, 노무현은 통일민주당으로 가서 국회의원이 된 뒤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했던 경험이 있어요. 결국 그 양반은 대통령까지 하고 저는 총리까지 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잘됐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 와서 보면 ‘좋은 당’은 못 만들어 놨단 말이에요. 벌써 30년이 가까워가는데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수준밖에 못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그때 민통련의 역량을 가졌으면 좋은 정당을 만들 수 있었죠. 지금 새정치민주연합보다 훨씬 좋은 당을 만들 수 있었고, 어떻게 보면 양김 세력을 흡수할 수도 있었죠.”
27일 민통련 30주년 기념행사…치유책 찾는 자리 되길
비판적 지지에 대한 성찰은 27일 창립 30주년 행사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된다고 한다. 특히 주제 발표를 하는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결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비판적 지지의 한계와 문제점을 짚을 예정이다.
민통련이 새삼스레 비판적 지지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와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비판적 지지가 낳은 후유증을 공감하는 토대 위에서 다함께 치유책을 찾아 나서보자는 취지이리라.
그렇다면 당장 눈앞에 떨어진 과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이다. 지금의 소선거구제, 비례대표 체제는 사실 1988년 양김씨가 자신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낸 측면이 강하다. 대통령 선거 이후 극단으로 치닫던 지역 균열이 총선을 거치며 굳어버렸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흘렀다. 만성적인 갈등과 대립을 이제 끝내야 한다. 기회의 문은 열렸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대 1로 줄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중앙선관위는 이례적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거들고 나섰다. 올해를 놓쳐서는 안 된다.
열쇠 쥔 건 새누리당…김무성·서청원·이인제도 머리 맞대야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역갈등으로 점철돼 반정치 문화가 득세하는 풍토를 고쳐 우리 공동체가 좀 살 수 있게 바꾸는 유일한 길은 선거제도 개편이다”고 역설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새정치민주연합의 유인태 의원은 며칠 전 기자들을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원래 무슨 특위 같은 데 좀 들어가야겠다고 손들고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정치개혁특위는 내가 꼭 좀 해야겠다고 손들어서 들어갔다. 선거제도 개편은 내 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무수석인 나에게 준 유일한 임무가 바로 선거제도 개편이다. 지역갈등으로 점철돼, 반정치 문화가 득세하는 풍토를 고쳐 우리 공동체가 좀 살 수 있게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면서 그는 특유의 농담을 던졌다. “짐승들, 너희들도 힘 좀 써라.” 여기서 짐승들은 기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힘없는 기자들이 거든다고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열쇠는 집권 여당이다. 새누리당은 현 체제가 최적의 환경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실세들 또한 지역구도 형성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김무성 대표는 물론이고 친박의 대표격인 서청원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위원 모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하생들로 상도동계에서 정치를 시작한 인사들이다. 여야 간 혈투는 계속되겠지만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선거법 협상에는 머리를 맞댈 수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여야 의원들이 27일 민통련 행사에 참여했으면 하는 게 기자의 바람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