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앞줄 가운데)가 3월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4·29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과 함께 공약발표회를 열어 지역 살림꾼이 되란 뜻으로 입혀줄 앞치마와 두건을 먼저 입은 뒤 웃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안상수 후보
공무원연금 개편 문제로 야당과 노조 등의 총공세에 몰려 있는 새누리당에 또다른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무상급식 중단이 경상남도의 경계를 넘어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탓입니다. 가는 곳마다 ‘존재감’을 과시해 온 홍 지사는 최근 몇년 동안 가장 폭발력이 강한 이슈로 확인된 ‘복지 축소’를 본인의 간판 정책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새누리당은 자당 소속 광역단체장인 홍 지사의 ‘결단’을 지지하는 게 순리인 것처럼 보입니다.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논란 초기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추어올리고, 청와대는 “무상급식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아니었다”(안종범 경제수석)라고 무상급식에 거리를 둔 것까지만 보면 그렇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사석에서는 대부분 “전면 무상급식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이건희 회장 손자까지 공짜밥 줄 필요 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새누리당은 ‘홍준표발 폭탄’의 유탄을 맞을까 전전긍긍하며 입장 표명을 최대한 유보하고 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1일 의원총회에서 “무상급식·무상보육 정책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한다면, 그것은 공약 후퇴, 공약 변경이 될 수 있는 일이므로 5월쯤에 가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당의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거듭 밝히며, 일단 시간을 벌어놓은 모양새입니다.
정당의 존재가치는 ‘선거’로 증명됩니다. 당장 4·29 재보궐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새누리당의 입장에선, 학부모들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는 무상급식 중단이 부담스러운 주제입니다. 홍준표 지사가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마당에, 홍 지사의 주장이 자칫 새누리당의 공식 입장으로 보일까 우려하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민생경제가 악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마당에 ‘아이들 밥그릇부터 빼앗는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경우, 내년 총선 역시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100% 무상급식 체계에 찬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새누리당의 정책위 관계자는 “고소득층은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차등부담하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면 무상급식에 개인적으로는 반대 의견들도 다수 있지만, 총선을 생각하면 대놓고 반대할 수 없다는 게 새누리당의 대체적인 기류로 보입니다. 이렇다보니, 홍준표 지사의 전면 무상급식 중단에 대해 새누리당에서는 ‘왜 지금, 이런 방식으로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원내 지도부는 일단 공무원연금 개혁안 등 현안을 처리한 뒤 5월 쯤에 무상급식 등 복지 문제에 대한 당의 총의를 모으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경남 지역 의원을 중심으로 ‘빠른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경남 지역 의원들은 ‘위기감’을 호소하며 정부와 당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원내지도부에 여러차례 전달했다고 합니다.
경남의 한 중진의원은 “교육계를 비롯해 자꾸 전선이 만들어지니까 부담스럽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무상급식이라는게 신청하려는 사람은 서류 떼고 동사무소 다니고 하면서 일단 감정이 상하게 된다.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갑자기 돈 내라고 고지서를 받게 되는데 기분이 좋을 사람이 없다. 무상급식 대상이 되든 안 되든 학부모들은 반발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또다른 경남지역의 재선의원도 “지역구가 농촌지역인데, 선별급식으로 전환되면서 80% 가까이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농촌 지역은 애가 많고, 땅이 있더라도 현금 수입은 적은 경우가 많은데 갑자기 급식비를 부담하라고 하니까 민심이 사나워졌다”고 호소했습니다. 경남 지역 의원들은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선언 이후 비공식적으로 여러차례 만나 의견을 교환했고, 4월에는 공식모임을 통해 원내 지도부에 무상급식 입장 정리를 촉구할 방침입니다.
선거도 문제지만, 원내 지도부의 더 큰 고민은 무상급식보다 예산이 1.4배 소요되는 무상보육에 있습니다. 무상급식의 예산은 전국적으로 2조7000억원이 들지만, 무상보육은 3조8000억원이 들어갑니다. 무상급식 지원 대상을 축소할 경우, 같은 ‘무상’인 무상보육 역시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무상보육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에, 이를 당이 쉽사리 건드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의원은 “단순한 급식 문제가 아니라 복지 전반에 대해 정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개별 이슈로 논의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선 공약에서 전면 무상보육을 내놔서 시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홍 지사 정책을 선별복지의 기준으로 잡으면 무상보육을 손 봐야 하고, 전면 무상보육을 기준으로 잡으면 홍 지사를 비판해야 한다”며 “아직 당의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급식과 보육 등 복지 이슈는 모두 한 테이블에 놓고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당장은 공무원연금 처리에 집중하기에도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의 ‘홍준표 거리두기’에는 이런 정책적인 고민 외에 홍준표 개인에 대한 반감도 작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당 안에서는 홍준표 지사의 행보를 ‘중앙에서 잊혀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폄하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정치적 변방인 경남에서 끊임없이 중앙 정치무대를 지향하는 그의 개인적 욕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대권후보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쇼”(전 수도권 새누리당 의원) “대꾸를 안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새누리당 당직자) 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홍준표 지사의 ‘대권 로드맵’이든 ‘개인적 소신’이든, 새누리당은 홍 지사의 프레임에서 답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몰렸습니다. 홍 지사와 새누리당의 ‘밀당’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주목됩니다.
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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