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법안 통과 전 통보” 확전 무마
31일 예정됐던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가 무산되면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함께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청와대와 여당 사이의 갈등이 예상보다 장기화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거 당청 갈등이 ‘당청 사이’의 이견으로 불거진 엇박자 수준이었다면, 이번 국회법 통과를 둘러싼 당청 갈등은 ‘의회와 행정부’가 헌법상 권한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개정안 통과 직후인 지난 29일 “헌법상 삼권분립 위배”(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란 주장과 “어떤 부분이 위배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반박으로 한 차례 공방을 벌인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이날까지 냉각기를 이어갔다. 격주에 한 번 열리던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가 이날 열려야 했으나, 특별한 이유없이 무산됐다. 여당은 “청와대가 연기를 통보해왔다”고 설명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애초 회의가 예정된 바 없고, 이런 사실을 통보한 시점도 법안 통과 전인 28일이어서 이번 사안과 무관하다”며 갈등 양상으로 비춰지는 것을 애써 무마하려 했다.
당청 간 갈등의 확전 여부는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오는 5일께가 되면 좀더 분명해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지난 29일 “법안 송부에 앞서 다시 한 번 면밀하게 검토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지만, 야당뿐 아니라 여당 지도부도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을 재검토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선 이송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지 아니면,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제도 등 다른 수단을 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을 국회로 되돌려 보내더라도 국회의원 재적(300명)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으면 재의결이 된다. 결국 대통령 거부권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최소한 대통령 뜻에 동조할 의원 100명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난 29일 가결 당시 찬성 의원 숫자(211명)를 감안하면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
청와대는 일단 법안 송부 전까지 법안이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점을 최대한 알리는 등 여론전을 펼쳐 국회를 압박한다는 계산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1일 수석비서관회의 때 박 대통령이 어떤 대외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정치권에선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가 내놓은 대외적 메시지의 간극이 너무 커서 박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쉽게 당청간 갈등이 수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이 많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 15일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어 국민연금 연계 문제로 불거진 갈등을 겨우 꿰매놓았는데, 이번에 꿰맨 자리가 다시 터졌다.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섭섭함이 너무 커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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