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40년 지기 “승자의한 역사파괴”“원칙따른 복원” 열띤 공방
“‘억지 현판’을 걸겠다는 발상은 별로 문화스럽지 못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한다.”(김형오 한나라당 의원)
“광화문 현판 교체는 이미 1997년에 경복궁 복원 수립 과정에서 결정된 일. 나의 현실 저항과 참여를 세상 사람들은 왜 자꾸 비속한 정치적 행위로 보려고 하는가?”(유홍준 문화재청장)
40년 지기 서울대 67학번 동기 김형오 의원-유홍준 청장 ’공방’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두고 40년 지기(서울대 67학번)인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개서한으로 공방을 펼쳐 화제다.
시작은 김 의원이 27일 자신의 홈페이지(www.kho.or.kr)에 ‘광화문 현판 내려야 하나’(문화재청장께 드리는 공개서한)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김 의원은 편지 들머리에 “자랑스런 대학동창에게 이렇게 긴 글을 보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새로운 추억거리라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편하게 ‘자네’라고 부르고 싶지만 오늘은 개인적 관계를 넘어서 공적 영역의 얘기를 하고 싶어 ‘유청장’이라고 부르겠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막상 편지의 본글에서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현판 교체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현판 교체와 관련 “어떠한 경우라도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한다”며 “우리가 역사를 사랑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승자에 의한 역사왜곡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김형오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 막아야… 싫든 좋은 우리 역사의 한 장면”
김 의원은 또 “광화문을 새로 축조한 것도 아니고 원형대로 복구한 것도 아닌데 유독 현판을 왜 바꾸려하는지 국민들은 선뜻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며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대로 중앙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광화문 현판을 갑작스럽게 바꿔치기 하려는 의도에 대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왜 하필이면 광화문과 별로 관계도 없는 정조 글씨냐”며 “정조의 글씨를 집자해서 ‘억지 현판’을 걸겠다는 발상은 별로 문화스럽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김 의원은 또 “물론 유청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로 비유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고 조선일보 등이 보도했던 유 청장의 ‘아부설’을 완곡하게 비꼬았다. 김 의원은 “역대 대통령들이 문화재나 신축청사 등의 현판이나 머릿돌을 자기가 직접 써서 다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그것도 싫든 좋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고 실체”라고 박 대통령 현판 보존을 고집했다.
유홍준 “현판교체는 이미 97년 복원계획에 있던 것…뜨거운 감자라 피했던 것일 뿐”
40년 지기의 편지 충고에 대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대응도 확실하고 신속했다. 유 청장은 이날 오후 유 의원의 홈페이지에 ‘김형오의원에게!’라는 답신을 통해 박정희 현판 교체의 필요성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가했다.
유 청장은 “광화문 현판 교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1995년 경복궁 복원 계획 속에 들어 있던 것으로 2003년도 공청회도 거친 사항”이라며 “다만 그것이 “뜨거운 감자”여서 누구도 잘 건드리지 않고 미루어져 온 사안이었고 올 8.15 광복 60주년 행사가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어서 불가피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 청장은 “정조 글씨로 교체한 것은 광화문을 고궁의 격에 맞추기 위한 세가지 방법(△현역 대표 서예가의 글씨 △조선왕조의 대표적 서예가의 글씨 집자 △임금님 글씨 즉 어필) 가운데 하나였다”며 “임금님의 글씨로 광화문 세 글자의 집자가 가능한 것은 정조 뿐”이라고 밝혔다.
특히 유 청장은 “언론은 내가 노대통령을 정조와 비교했던 일을 연상하며 나를 ‘아부쟁이’ 내지 ‘어용학자’로 몰고 있다”며 “노대통령에게 정조를 말한 것도 참여정부가 개혁을 기치로 내걸면서 정조 같은 역사적 사례(실패까지 포함)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와 ‘진짜 개혁을 하시려면 정조를 통해 개혁을 배우십시오’라는 뜻이었다”고 주장했다. 유 청장은 김 의원이 언급한 ‘승자에 의한 역사 파괴’에 대해 “김 의원의 말에 동의하지만 광화문은 결코 그런 맥락에서 볼 사안이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한편, 유 청장은 편지에서 “벗 김형오 의원! 35년전 대학 3학년때 무전여행 중 부산 영도의 아담한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자네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여비로 경부선 기차를 탔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고 두 사람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 청장은 “나의 현실 저항과 참여를 세상 사람들은 왜 자꾸 비속한 정치적 행위로 보려고 하는지 그게 서운하다”며 김 의원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아래는 김 의원의 홈페이지에 실린 공개서한과 유 청장의 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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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재청장 글] 김형오 의원에게!
어젯 밤(26일) 김의원이 내게, 공개 “연애편지”를 보냈다는 전화를 받았으나 월례 확대간부회의를 하느라 이제 늦게 답장을 보냅니다. 우선 40년 우정을 잊지 않고 애정어린 비판을 해준 것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올립니다.
김의원이 잘 알 듯이 나는 이제까지 내 전공 하나만을 지키며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학생 때 삼선개헌 반대 데모를 하고 유신헌법 철폐, 긴급조치에 반대했던 것은 어떤 정치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행동한 것 그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내 스스로의 꿈이라면 ‘지조있는 학자’, ‘양심있는 文士’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문화재청장 직을 수락하고 공직에 들어 온 것 역시 그런 삶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현판 교체 역시 그런 맥락 속에 있습니다. 많은 부분이 언론에 왜곡되어 보도 되었는데 그 점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광화문 현판 교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1997년 경복궁 복원 계획 속에 들어 있던 것으로 2003년도 공청회도 거친 사항입니다. 다만 그것이 “뜨거운 감자”여서 누구도 잘 건드리지 않고 미루어져 온 사안입니다. 그런데 올 8·15 광복 60주년 행사가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어서 불가피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왜 정조글씨냐는 정말 오해입니다. 정조글씨로 교체하는 것은 여러 안(案) 중 하나입니다. 광화문의 옛 현판이 없으므로 고궁(故宮)의 격에 맞추려면 ①현역 대표 서예가의 글씨, ②조선왕조의 대표적 서예가의 글씨 집자 ③임금님 글씨 즉 어필(御筆) 중 하나 등 세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중 현역 대표 서예가는 여초 김응현 선생인데 현재 병중에 계시고, 명필 글씨는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 글씨를 집자해 만들고 있습니다. 어필이 문제인데, 아시다시피 임금님들은 글씨를 많이 남기지 않아 光化門 세글자의 집자 가능한 분은 정조대왕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훈민정음 집자도 고려했으나 집자에 실패하였습니다. 정조는 경복궁과 인연이 없으나 조선왕조의 명군(名君)이고 글씨도 품격이 있어 어필 안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화문 새 현판은 이상의 3가지안(한석봉 집자, 추사체 집자, 어필(정조)집자)를 갖고 오는 3월 문화재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심의하여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언론은 내가 노대통령을 정조와 비교했던 일을 연상하며 나를 ‘아부쟁이’ 내지 ‘어용학자’로 몰고 있습니다마는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노대통령에게 정조를 말한 것도 참여정부가 개혁을 기치로 내걸면서 정조 같은 역사적 사례(실패까지 포함)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와 “진짜 개혁을 하시려면 정조를 통해 개혁을 배우십시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관계 저서까지 사서 보낸 것입니다.
김형오의원! 아시다시피 내가 누구에게 아부하는 것 보았습니까? 그걸 할 줄 몰라 길바닥에서 10여년을 백수로 지낸 시절이 있음을 잘 알지 않습니까. 또 내가 뭐가 아쉬워서 대통령에게 아부를 합니까. 아부를 하려면 대통령이 내게 일 잘해달라고 부탁을 해야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광화문을 “대표적인 중심대로의 현판”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와의 시각 차이는 여기서 생긴 것 같습니다. 광화문은 정확히 말해서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정문(正門)입니다. 결코 대로변의 현판이 아닙니다. 즉 경복궁의 얼굴입니다.
경복궁의 복원은 2009년까지 약 45% 복원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하나씩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여 지금은 대장금이 근무했던 소주방을 복원하고 있고 경회루의 보조 울담도 쌓고 있습니다. 그런 복원계획의 일환입니다. 저는 경복궁 복원을 책임 맡고 있는 문화재청장으로서 마땅히 할 일. 이미 결정해 놓고 그동안 미루어 온 일을 광복 60주년 행사장 관리인으로서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어떤 경우라도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한다.”는 김의원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광화문은 결코 그런 맥락에서 볼 사안이 아닙니다.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아산 현충사, 이것은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입니다. 저는 이곳을 손보거나 현판을 떼내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아산 현충사에 이런 일을 했다면 그것은 씻지 못할 과오이고, 서투른 정치적 행위이며,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 작업이 된 지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의원! 광화문과 현충사는 다릅니다. 광화문은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입니다.
그리운 벗 김형오 의원! 35년전 대학 3학년때 무전여행 중 부산 영도의 아담한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자네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여비로 경부선 기차를 탔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내가 받은 것은 무기정학 통보서였답니다. 그때 나는 눈을 감고 세상에 대해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이 ‘빨간 증서’는 결코 부끄럽게 세상을 살아가지 말고 시대가 요구하는 ‘지조 있는 선비’의 길로 가자고.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나의 현실 저항과 참여를 세상 사람들은 왜 자꾸 비속한 정치적 행위로 보려고 하는지 그게 서운합니다. 그 와중에 나의 본심을 잘 아는 자네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입니다. 내가 어떤 길을 가든 끝까지 애정어린 시각으로 보아주십시오.
감사. 감사합니다.
2005.1.27 문화재청장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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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원 글] 유홍준 문화재 청장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의 부탁으로 부산 ‘역사모’(역사를 사랑하는 모임) 모임에 오셔서 감동적인 강의를 하고 간지도 벌써 2년이 지난 듯합니다. 작년 말 국회에서 언뜻언뜻 조우했지만 긴 얘기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랑스런 대학동창에게 이렇게 긴 글을 보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새로운 추억거리라고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편하게 ‘자네’라고 부르고 싶지만 오늘은 개인적 관계를 넘어서 공적 영역의 얘기를 하고 싶어 ‘유청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얼마 전 유교수가 문화재 청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쌍수를 들고 환영했습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린 장본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때 ‘아는 것만큼 본다’라는 말이 대유행이었고 마치 ‘성지순례의 지침서’처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 아내 역시 밤을 새워 읽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제가 저자이기나 하듯이 뿌듯했습니다. 노대통령이 오랜만에 제대로 인사를 했다고 후한 평가도 주었습니다. 천하의 유홍준이가 문화재 행정의 수장이 된 만큼 우리 문화재 관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유청장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남해 가천마을의 다랑이 논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등 탁월한 감각을 보여줬습니다. 고궁의 입장료를 100%이상 인상하겠다는 결정에 대해서도 반대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고궁의 품격을 위해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광화문 현판’ 사건은 사실 좀 의외였습니다. 처음에는 현판을 바꿔야하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겠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몇 일 동안 신문보도를 보고 이게 아닌 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유청장, 정말 다가오는 광복절 날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려고 합니까. 국민들은 많은 의문을 표시합니다. 왜 하필 이때냐는 것입니다. 광화문을 새로 축조한 것도 아니고 원형대로 복구한 것도 아닌데 유독 현판을 왜 바꾸려하는지 선뜻 이해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 대로중앙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광화문 현판을 갑작스럽게 바꿔치기 하려는 의도에 대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왜 하필이면 광화문과 별로 관계도 없는 정조(正祖)글씨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조의 글씨를 집자해서 ‘억지 현판’을 걸겠다는 발상은 별로 문화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유청장이 노대통령을 정조로 비유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에 저는 동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유청장은 대학교 때부터 군사문화의 잔재를 두드러기 날 정도로 싫어했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소위 국적불명의 문화재 복원, 획일화된 ‘이발소 그림’ 같은 행정을 강하게 비판하곤 했지요. 그렇다고 한글 ‘광화문’ 현판을 내려야 하는지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든 그 글씨가 누구의 것이든 ‘광화문’ 현판은 현재의 광화문 건물의 중건과 함께 버젓이 걸렸고 30년 이상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울의 문패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역대 대통령들이 문화재나 신축청사 등의 현판이나 머릿돌을 자기가 직접 써서 다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학생 때도 싫어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이런 짓 제발 안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싫든 좋든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고 실체입니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든 자랑스런 역사가 있는 반면 숨기고 싶은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숨기고 싶은 역사, 부끄러운 역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후손들의 지혜가 드러납니다.
지난 93년 김영삼 전대통령이 중앙청을 허물겠다고 했을 때 저는 비록 여당의원이었지만 공개적으로 안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중앙청이 일제시대의 착취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또한 광복의 상징이요,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역사적 현장이자 6·25전쟁 중 서울 수복의 감격이 서린 건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건물은 깡그리 없어졌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만이 아니라 중앙청도 함께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광화문’ 현판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군정종식을 외쳤던 YS조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중심대로의 현판은 살려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청장이 광화문 현판을 내린다고 하니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광화문’의 한글 현판은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이고 혁명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원상복구 현판도 아닌 정조의 글씨로 집자해서 ‘가짜현판’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반역사적 발상이 아닌지 두렵기조차 합니다. 나름대로 그 현판에는 그 시대의 정신과 아픔이 녹아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과거의 형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역사의 회복은 아닐 것입니다.
유청장, 이제 냉정히 우리 역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잘한 것은 잘한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평가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사랑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승자에 의한 역사왜곡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최근 부상하고 있는 과거사 문제는 정치권의 회오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 관리는 현재의 정치적 이슈에서 한발 물러나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 고고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산이 강을 넘지 못하듯 인간 또한 역사의 강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광복 60주년이 되는 그날, ‘광화문’ 앞에서 유청장의 살아 숨쉬는 역사 강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과욕은 아니겠지요. 소식기다리겠습니다.
2005. 1. 26. 국회의원 김 형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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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