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나무 기자
현장에서
주말인 8일 오전 9시30분 서울중앙지법 318호 법정. 10여명의 기자들이 법정 문틈에 귀를 대고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 영장 실질심사 내용을 열심히 엿듣고 있었다.
1시간여 동안 실시된 심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도 조직적이고도 광범위한 도청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진술하는 그의 태도는 듣는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전임자한테 이어받았을 뿐 스스로 하고 그런 건 아니죠? 도청팀 폐지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죠?”(변호인). “그렇습니다.” “정치적 목적도 없었고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도 아니죠?” “그렇습니다.”
당당하던 김 전 차장의 진술 태도는 판사의 직접 심문이 시작되면서 우물쭈물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언론인 도청도 국가 필요에 의한 것입니까? 반대자에 대한 정치적 목적 아닙니까?” “…언론인은 직업적인….”
김 전 차장은 김대중 정부의 최고 실세인 권노갑 전 의원과 밀착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휘둘렀던 장본인이다. 당시 도청 대상이던 소장파 의원 사이에서는 “김씨가 국정원 안가로 불러 당 개혁운동에서 빠지라고 요구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남 탓’, ‘관행 탓’만 할 뿐 끝내 자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에게는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고나무 기자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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