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제 개편
당시 중선거구제는 ‘유신잔재’ 비판
1988년 도입 뒤 DJ 재기 발판 마련
당시 중선거구제는 ‘유신잔재’ 비판
1988년 도입 뒤 DJ 재기 발판 마련
현행 소선구제는 1988년 3월17일 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에 의해 도입된 것이다. 당시 소선거구제 도입은 ‘민주화’라는 시대적 명분에 따른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국회의원 선거는 1구2인 중선거구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국회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유정회와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중선거구제를 승계했다. 국회 안정의석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중선거구제가 확실히 유리했기 때문이다.
‘신민당 돌풍’이 거세게 불었던 1985년 2·12 선거에서 민정당은 35.2%의 득표율에 그쳤는데도 전체 의석(276석)의 과반인 148석을 차지했다. 1구2인 중선거구제와 제1당이 전국구 3분의 2를 차지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었다.
따라서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뒤 소선거구제 도입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중선거구제는 ‘유신잔재’에 불과했다.
1987년 12월 대선이 끝나고 1988년 3월 국회의원 선거법을 개정할 당시 정국의 주도권은 노태우 대통령이 갖고 있었다. 민정당 안에서는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 민정당이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종찬 의원 등은 의원총회에서 지역분열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등의 명분을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대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 직전 “소선거구제가 국민여론에 부합되며 명분상으로도 옳다”고 찬성 의견을 밝혔다.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전두환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소선거구제로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공천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분열에 의한 대선패배 책임으로 궁지에 몰렸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는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소선거구제를 강하게 요구했다. 튼튼한 지역 기반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통일민주당에서는 반대도 있었지만 여당과 마찬가지로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소선거제 도입으로 1988년 4월26일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은 전체 의석 299석 가운데 125석을 차지했다. 대통령 선거 직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이런 성적은 대참패였다.
반면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은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70석을 차지했다. 통일민주당을 누르고 제1야당이 된 것이다. 대선 패배의 책임으로 위기에 몰렸던 김대중 총재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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