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남북관계 잘 발전시킬 출발점
이산가족 상봉 맨손으론 단발성
계속하려면 북에 반대급부 줘야 당국회담은 행정부가 나서고
청와대는 컨트롤타워 머물러야 -이번 남북간 합의를 평가한다면. “합의문에는 몇 가지 한계도 있다. 그러나 남북간 군사적 충돌을 막고 관계개선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공동보도문에 합의한 대로 딴소리 안하고 해나가면 남북관계를 잘 발전시킬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당국회담’ 등 비군사분야 합의가 원칙적 수준에 머물렀는데. “그렇긴 해도 당국회담을 1번항에 올린 것은 의미가 있다. 의지를 가지고 하지 않겠나 싶다. 이산가족 상봉은 ‘계속하기로 했다’고 합의한 점이 눈에 띈다. 그런데 계속하려면 북한을 추동할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냥 맨손으로는 단발성에 그친다. 이산가족 문제가 우리한텐 인도주의지만, 북한한테는 체제에 부담을 주는 정치 문제다.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만으로 남북이 비교된다. 북의 동생이 더 늙어보이고, 이런 것이 북한 정권엔 부담이 된다. 그런 북한을 끌어들여 계속 하려면 북한에 반대급부를 줘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16번 했다. 이명박 정부와 이번 박근혜 정부에 와서 한 두번 하고 끊긴 것이다. 과거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쌀과 비료가 북한에 갔기 때문이다. 퍼주기가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주의와 쌀·비료 지원이라는 인도주의를 맞바꾼 것이다.” -민간교류 활성화는? “이것이 되려면 5·24조치 해제가 필요하다. 정부가 여기에 합의한 것은 5·24조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식용으로 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누가 했는지’ 주체를 명기하지 않으면서 ‘유감 표명’을 하는 방식으로 양해됐으니까, 이게 천안함 사과에 선례가 될 수 있다.”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돌아가서 “사과 아니다”라고 했다. “그건 대내용 발언이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측이 책임을 시인하고 사과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큰 의미 없다.” -합의문에 ‘당국회담’이라고만 돼 있어서, 어떤 회담이 될지 불투명하다. “정부가 이번에 가동된 ‘2+2 접촉’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청와대가 직접 나선다는 것인데, 그건 안맞다. 청와대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것이고, 직접 나서는 것은 행정부가 해야 한다. 과거에는 통일부 장관이 나서는 ‘장관급 회담’이 기본 회담 축이었다. 그 산하에 재정경제부 차관이 주재하는 경협추진위가 있었고, 또 필요하면 추가 조직을 구성했다. 장관급 회담이 전체 회담을 조율하면서 가는 시스템이다. 이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급 회담이 ‘격’ 논란으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우리와 북한은 시스템이 다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통일부 장관 상대는 통일전선부장이라고 주장해서 판이 깨졌다. 통전부는 우리의 통일부하고 다르다. 남북문제 전반을 관할한다. 남북대화도 하지만 대남공작 부서도 있다, 또 해외동포도 소관이다. 남북대화를 하면 통전부 사람들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이름으로 나오는 것이다. 통일부-조평통 대화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걸 하루아침에 바꾸라는 것은 안맞다. ‘격’ 문제에 집착하면 안된다. 실사구시 차원에서 해야 한다.” -지난해 2월 남북 고위급 접촉도 기대는 컸지만 결국 단발로 끝났다. 교훈을 찾는다면?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이 신뢰를 보이면 돕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신뢰를 먼저 확인해야 협력한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한가. 북한은 이미 우리 경쟁상대가 아니다. 북한의 행동에 파르르 반응할 단계는 지났다. 우리가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북한을 다독이며 가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큰 그림을 가지고 다양한 교류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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