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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밤새 모은 국감 자료…‘반짝 관심’ 받곤 잠자거나 휴지통에

등록 2015-10-04 20:13수정 2015-10-05 10:23

2015년도 국정감사가 진행된 지난달 21일 국회 한 상임위원회 앞 복도에서 관계자들이 가득 쌓인 국정감사 자료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도 국정감사가 진행된 지난달 21일 국회 한 상임위원회 앞 복도에서 관계자들이 가득 쌓인 국정감사 자료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국감 자료 생산부터 폐기까지

18대 국회 때 국토위원회 소속이었던 ㄱ보좌관은 2010년 당시 국정감사를 진행하면서 산더미처럼 쌓아뒀던 4대강 사업 자료를 떠올리면 입맛이 쓰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였던 4대강 사업은 미비한 법적 근거, 천문학적 예산, 비리로 얼룩진 입찰, 엉터리 공사, 환경 오염 등 온갖 과정이 문제가 됐다. ㄱ보좌관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 당시 국감에서 전방위적으로 기초 자료를 모아 보도자료를 내고 의원 질의를 통해 주요 이슈로 부각시켰지만, 지금 수중에 남은 것은 “차마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4대강 사업 도면 정도다. 그는 “앞으로 4대강 사업이 분명히 또 문제가 될 텐데 당시 다른 의원실과 함께 수집한 자료를 한데 모아두지 않아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생산

관련부처와 싸우며 간신히 획득
보좌관들 합심 전방위 자료수집

소비

언론에 노출돼야 그나마 빛봐
지적사항 개선·감시 없이 사라져

폐기

담당자 컴퓨터에 남아있다 삭제
“차마 버리지 못한” 것만 생존해

문제

피감기관 ‘한차례 소나기’로 생각
수시 검증 위해 ‘아카이브’ 만들어야

매년 국감이 열릴 때면 ‘부실’이라는 꼬리표가 붙지만, 더욱 부실한 것은 ‘국감 이후’다. 국감에서 지적된 사항의 시정이나 개선 과정에 대한 추적도, 감시도 없다. 무엇보다 국감을 준비하면서 준비한 수많은 정부 쪽 자료와 국회 쪽 자료들이 ‘일회용’으로 사라진다는 데 있다.

이런 악순환을 만드는 첫번째 이유는 국감을 ‘스타가 되는 과정’으로만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있다. 이를 부추기는 것이 정당과 각종 단체에서 ‘우수 국감 의원’을 선정하는 포상 절차다. 이 평가의 주요 기준은 언론에 얼마나 보도됐는가에 달려 있다.

피감기관과 싸우며 간신히 얻어낸 자료들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으면 빛도 못 보고 묻힌다. 보통 국감이 끝나면 경실련을 비롯해 법률소비자연맹, 한국언론사협회, 수도권일보, 대한민국인물대상 선정위원회 및 기자단, 대한민국의정대상 선정위원회 등 10여개 단체에서 국감 우수 의원을 선정한다. 의원들이 이런 단체들의 시상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하는 의사가 강하면, 보좌진들은 그간 낸 보도자료, 언론에 난 기사 등을 추려 자료집으로 묶어 보내야 한다. 이런 단체들로부터 30회 이상 우수 의원으로 선정된 의원과 일하는 ㄴ보좌관은 “상을 받으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사실 회의 참석률, 질의 발언 횟수, 보도자료와 보도된 기사 개수 등 정량적 평가가 대부분이라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정당에서 하는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우수 국감 의원을 상임위별로 2~3인씩 선정하는데 평가 기준은 보도 매체 종류, 기사 분량, 지면 배치 방식 등이다. 가령 신문 1면 톱기사나 지상파 방송에 보도되면 30점, 인터넷에만 나오면 5점을 주는 식이다. 보도자료는 1개당 2점을 준다. 이 점수는 4년치가 누적돼 이후 공천 심사 때 참고자료로 쓰이거나 일부 반영된다. 의원들이 우수 국감 의원 선정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피감기관들도 국감이 끝나면 한차례 소나기 피한 듯한 태도로 일관한다. 정무위 소속인 ㄷ보좌관은 “피감기관들은 이후 국감 지적 사항 시정 조치에 대해 보고를 할 때 보면 대부분 ‘~하여 진행중’, ‘검토중’, ‘관련해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음’ 등 모호한 표현투성이”라고 말했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피감기관과 싸우며 간신히 얻어낸 소중한 자료들을 축적할 공간이나 방법이 없고, 의원들도 이를 활용하려 하지 않는 점도 큰 문제다. 국감자료들은 국감이 끝나면 휴지통으로 들어가거나 담당자의 컴퓨터에 남아 있다가 삭제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미처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들은 이런 기록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2012년 대선 캠프에서 정책을 담당했던 ㄹ보좌관은 이런 이유들로 인해 국감이 당의 정책 역량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가령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된 정책을 만들 때, 그동안 의원들이 국감에서 숱하게 받은 통계자료는 찾지도 않는다. 그냥 기사 검색해서 자료를 만들더라”고 전했다.

국감을 준비하는 이들도 자료 취합·축적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2012년 의원회관 리모델링 당시 국회사무처와 보좌진협의회는 층마다 있는 회의실 공간에 상임위 주요 질의서·국감자료를 모아 필요할 때 열람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인 ㅁ보좌관은 “정말 중요한 자료가 있으면 상임위가 바뀔 때마다 교복 물려주듯이 알음알음으로 보좌진들끼리 서로 물려준다”며 “자료를 모으고 열람, 검색하는 것이 시스템으로 갖춰져 있으면 피감기관에서 ‘옛날 자료 없다’고 잡아떼는 것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와 정부가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국감자료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면 피감기관과 국회, 정당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먼저 자료 공개 여부를 놓고 불필요한 실랑이를 줄이는 방법은 정부가 각종 행정 정보를 공개하는 ‘정부 3.0’(open.go.kr)에서 공개 대상을 확대하고 검색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방위의 ㅂ보좌관은 “현재 정부 3.0은 국장 이상 결재 사항에 대해 업무 공개하게 돼 있는데 실질적으로 잘 운영이 되지 않는다. 팀장·과장급 이상 결재 문서도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개선하고, ‘내부 감사 조치 현황 보고’, ‘징계 현황’ 등 매년 의원실에서 요청하는 자료는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년 국회에 보고해야 할 자료 목록을 구체화시켜 상시적으로 피감기관에서 업데이트하고, 자료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등록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의 정책 능력을 강화하려면, 각 정당의 상임위 전문위원 또는 정책연구소에서 국회사무처의 도움을 받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감 경험이 많은 ㅅ보좌관은 “무엇보다 국회도서관 등에 국감자료 아카이브(디지털 보관소)를 만들어 디지털 자료로 제출된 국감자료는 물론, 인쇄물로 나온 자료들도 스캐닝을 통해 저장해 관련 피감기관이나 국회 관계자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유주현 이세영 이정애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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