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빈 검찰총장이 13일 낮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을 위해 식당으로 가던 중 기자들로부터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불구속 수사 지휘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천 법무 “검찰도 인권옹호기관으로 책임 다해야”
검찰 ‘사안 중대한 법죄땐 구속하는게 국민정서”
검찰 ‘사안 중대한 법죄땐 구속하는게 국민정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을 계기로 ‘구속 수사 관행’에 대한 타당성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와 관계 없이 사안이 중하다고 보면 징벌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구속수사를 해왔다.
무너진 ‘검’…불구속 확대 신호탄?-천 장관 13일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에서
그러나 법 정신에 안 맞는 관행은 당장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은 “국민 법감정도 중요하지만 무죄추정과 불구속수사는 그보다 중요한 가치”라며 “피고인의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해주고 형벌은 최종적으로 판결에 의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실형 가능성이 있으면 도주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고려를 줄이고 지금 당장의 증거로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광섭 고나무 기자 iguassu@hani.co.kr
서울 검사들 ‘거부뒤 사퇴’ 목청 ‘수용 유보’ 검찰 분위기
‘수사뒤 영장 결정’안 검토
쓴잔 피해갈 묘안 저울질 김종빈 검찰총장이 13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에 대한 수용 여부 결정을 유보함에 따라, 이번 사태를 둘러싼 파문도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대체로 “총장이 결국 지휘를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은 편이지만 일선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총장이 사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검은 이날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정상명 차장검사 주재로 오전 2시간 동안 열린 고위 간부회의에서 15명 정도의 참석자들은 총장의 거취와 수사지휘 수용 문제 등을 놓고 차례로 의견표명을 한 뒤 난상토론을 벌였다. 대검의 중간간부 30여명이 모인 오후 회의에서는 “연이은 정치권의 의사전달에 이은 장관의 수사지휘는 정치적 외압이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 존립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건으로, 더구나 기소 여부가 아닌 영장청구 문제로 불거진 논란으로 총장까지 물러나면 검찰 스스로 우스운 꼴을 만드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날 밤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 회의에서는 “총장 본인도 살고 검찰 조직도 살 수 있는 방법은 거부 뒤 용퇴밖에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지방의 검찰청에서는 ‘거부 뒤 사퇴’라는 강경론보다 수용론의 기류가 더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장관의 수사지휘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총장이 거부하면 법률 위반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총장의 사퇴를 거론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지방검찰청의 간부도 “10명 가운데 1명 정도만 강경론을 거론했다”며 “이번 사건은 검찰과 나라가 들썩일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주류”라고 말했다. 공안부가 아닌 검사들 사이에서는 강정구 교수 구속 의견을 고집한 공안부 지휘라인을 질타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충분한 협의 없이 지휘권을 행사한 장관의 행동도 경솔하기는 하지만, 예전 감각으로 몰아붙인 공안부도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검찰이 고려하고 있는 ‘직접 수사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 결정’ 방안은 ‘시간 벌기’와 함께 ‘지휘권 수용’이라는 ‘쓴잔’을 피할 수 있는 묘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일선의 반발을 무마할 시간을 벌면서 ‘직접 조사해 보니 구속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할 경우 어느 정도 ‘굴욕’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규 석진환 기자 dokbul@hani.co.kr
“음성적 수사지휘 양지로 끌어냈다” 일선 검사에 지시등 과거 정권 온갖 탈법사례 지적
1954년 일본 권력형 비리 ‘조선 의혹’과 성격 달라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도록 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를 놓고 검찰이 중립성 훼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많은 검사들은 지휘권 발동에 대해 “정권과 장관이 바뀐 뒤 정치적인 부당한 지휘가 내려질 수도 있다”며 검찰 중립성 훼손의 선례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은 지휘의 내용일 뿐이지,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조용환 변호사는 “검찰이라는 막강한 물리력을 가진 관료 집단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을 대리한 법무장관에게 검찰을 지휘할 책임을 준 것”이라며 “장관의 지휘 내용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는 논란을 벌일 수 있지만 이러한 수사지휘가 검찰의 중립성을 침해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중견 변호사도 “장관에게 지휘권을 준 것 자체가 검찰의 잘못된 검찰권 행사를 견제하는 차원”이라며 “권한이 부적절하게 행사됐을 때에야 비로소 검찰의 독립성 침해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천 장관의 수사지휘는 그동안 사실상 음성적으로 이뤄진 수사지휘를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법학)는 “그동안은 비공개된 수사지휘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으며, 음성적으로 이뤄진 수사지휘는 철저하게 정권의 안위를 위한 방향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1999년 1월 당시 공동여당의 한 축이었던 자민련 의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대전지검 검사장에게 박상천 법무부장관이 전화를 걸어 수사를 중단시킨 것 △5공화국 때 법무장관, 검찰총장, 서울지검장이 청와대에 모여 여러 시국사건 처리 방안을 논의한 것 등을 정권의 탈법적인 수사지휘 사례로 꼽았다. 그는 “이번 사례를 장관의 ‘첫 수사지휘’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공개적’으로 지휘권을 발동한 첫 사례”라며 “공개 수사지휘를 통해 국민의 평가를 떳떳하게 받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954년 일본의 ‘조선 의혹 사건’을 예로 들며, 수사지휘권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보조금 배분을 둘러싸고 조선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포착된 사토 에이사쿠 자유당 간사장(전 총리)의 구속을 법무상이 막은 행위가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조선 의혹 사건은 정권이 자신들의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 권력형 비리 사건을 서둘러 덮으려는 부당한 수사지휘였지만, 권력형 비리도, 부패 사건도 아닌 강 교수 건을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구속 방침에 적법하게 제동을 건 장관의 수사지휘에 불복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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