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헌법 제8조는 ‘국민의 정당 설립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을 설립하는 과정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우선 뜻을 함께하는 200명의 발기인을 모아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부터 구성해야 합니다. 창준위는 정당법 제8조에 따라 6개월 동안 창당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창준위는 이 기간 안에 5개 이상의 시·도당을 만들고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두 가지 ‘미션’을 완료하면 창준위는 ‘정식 정당’으로 인정받아 후보를 공천하는 등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해산하게 됩니다.
2015년 11월15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19개. 모두 앞서 예시한 ‘쉽지 않은 과정’을 통과한 단체들입니다. 13일 오전에는 반기문 지지자들이 공식적으로 ‘친반연대’를 결성했다는 소식(▶바로 가기 : 반기문 지지자들, 공식 세력화…‘친반연대’ 결성)이 전해졌습니다. 올해 등록된 신생 정당으로 고용복지연금선진화연대(고복연), 국민행복당(행복당), 한국국민당도 있습니다. 뉴스AS에서 이를 계기로 정당 현황을 한 번 살펴봤습니다.
■ ‘친박연대’ 아닙니다, 구걸하는 ‘거지’도 아닙니다
현재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창준위는 12개입니다. 만약 이들 창준위가 모두 정당으로 인정받게 되면, 내년 4월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30개가 넘는 정당 이름이 적힌 아주 긴 투표용지를 받아보게 될지 모릅니다.
이들 가운데 민주당이나 ‘신민당’, ‘한국국민당’, ‘한반도미래연합’ 등처럼 전통적인 작명법을 따르거나 ‘기독자유당’, ‘복지국가당’ 등처럼 지향점을 분명히 드러낸 정당(또는 창준위)도 있지만, 기조나 노선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름을 내세운 곳도 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이름은 앞서 말씀드린 ‘친반연대’입니다. 지난 6일 창준위 결성 신고를 마쳤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다음해인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받지 못한 친박 인사들이 총선 20여 일을 앞두고 급조한 ‘친박연대’가 떠오르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친반연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유력한 차기 주자 중 하나로 분류되는 반 사무총장 자신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자들이 정당을 세워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친반연대는 발기 취지문을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2017년 민족의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리더로서 적임자를 확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지당’처럼 튀는 이름을 내세운 경우도 있습니다. 한자로 클 거(巨), 지혜 지(智)자를 써 ‘큰 지혜’를 뜻한다지만 이름을 기억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정치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부자정치 때문…국민이 정치인보다 잘 사는 정치, 거지 감동 정치로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발기 취지문은 밝히고 있습니다.
■ 원내 진출 가능성은 희박, ‘공천 장사’ 부정적 시각도
19대 국회 원내정당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3곳입니다. 총 300개 의석 대부분은 여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5개 의석뿐입니다.
한국 국회에서 신생 정당이 제3당으로 이름을 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친박연대’처럼 창당 20일여 만에 14명의 당선자를 낸 경우도 있습니다만, 공천에서 밀려난 친박 실세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얻어낸 ‘예외’일 뿐입니다.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등 거물 야권 정치인을 내세운 정의당보다 역사나 인지도 면에서 나을 것이 없는 신생 정당들이 20대 총선에 당선자를 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창당 작업’이 이어지는 가장 큰 요인은 정당으로 인정받으면 후보를 공천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공천권’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얼굴을 알리기 위해 출마하려는 이들을 노린 ‘기획창당’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기존 정당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민심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려고 새로운 정당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얼굴만 알리겠다는 의도가 뻔한 ‘떴다방식 기획창당’까지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겠지요.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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