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식 정책 여론조사
정부 입맛대로 답변 끌어내려 ‘왜곡 설문’
정부 입맛대로 답변 끌어내려 ‘왜곡 설문’
정부가 노동시장 개편, 사법시험 존치, 교과서 국정화 등 민감한 정책사안을 추진할 때,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답변을 유도하는 식의 설문조사를 벌인 뒤 이를 정책 추진의 주요 근거로 삼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아전인수식 조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여론조사 문항 편향된 시각 담아
“기본 안지킨 아전인수식 조사”
‘주요 근거 삼기 부적절’ 비판 나와 고용노동부는 지난 7일 한국노동경제학회 명의의 보도자료를 고용부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 기간제노동자 61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였더니 71.7%가 찬성했다”는 내용이다. 설문 문항은 “(…) 2년 근무 후 기간제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계속 근무할 수 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계약이 종료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기간제근로자로 2년 근무 후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최대 2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라고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문제는 현행 기간제법 규정에 따라 ‘2년이 지난 뒤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계약기간이 없는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아예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도자료가 한국노동경제학회 명의로 발표된 것도 논란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이 조사는 노동경제학회 차원이 아니라 고용부의 의뢰를 받아 이 학회 회장인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와 같은 대학 김주일 교수가 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교육대는 고용부 산하기관으로 고용부가 예산과 인사 결정권을 갖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에도 기간제 기간 연장 등을 포함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번과 유사한 설문결과를 내놓았다. 이 조사 역시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묻지 않았다. 최근 법무부 조사도 입길에 올랐다. 지난 3일 법무부는 사법시험 4년 존치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난 9월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를 통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사시 폐지’ 의견은 23.5%에 불과하고 ‘사시 존치’ 의견은 85.4%로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여론조사 문항을 보면 사시 폐지를 묻는 질문은 “법조인이 이원화·계층화되는 문제를 방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도입 당시 사회적 합의와 현행법대로 사법시험을 2017년에 폐지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 동의하십니까?”라고 비교적 중립적인 표현을 쓴 반면, 존치나 폐지 유예를 묻는 질문에는 “사법시험은 누구에게나 응시 기회가 부여되고, 수십년간 사법연수원과 연계하여 공정한 운영을 통해 객관적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하여 왔기 때문에 합격자를 소수로 하더라도 사법시험을 존치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로스쿨 도입은 그 당시 충분한 논의 없이 결정되었고, 로스쿨 제도의 운영 성과가 불확실한 현 상태에서 사법시험 폐지는 시기상조이므로 좀 더 실시해본 뒤 계속 존치 여부를 논의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등 사시의 긍정적인 면과 로스쿨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설명을 덧붙였다.
정부가 지난 10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근거로 삼았던 ‘국정화 여론조사’ 역시 논란이 일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해 9~10월 일반인, 교사, 학부모를 대상으로 국정화 여론조사를 실시해 지난 4월 발표했다. 평가원은 “일반인 52.4%, 교사 41.5%, 학부모 56.2%가 국정제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설문은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올해부터 전국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한국사 교과서 8종의 내용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에 한국사 교과서 개발 방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라고 검정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는 선입견을 줄 수 있는 배경서술을 덧붙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정부 설문을 보면 정확한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설문 구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며 “찬반을 물을 때 각각의 주요 논리를 간결하고 균형 있게 배치하지 않으면 편향된 응답이 늘어나고, 질문에 앞서 사전정보를 과도하게 제시하면 우호적 선택(찬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전종휘 최현준 전정윤 기자 symbio@hani.co.kr
“기본 안지킨 아전인수식 조사”
‘주요 근거 삼기 부적절’ 비판 나와 고용노동부는 지난 7일 한국노동경제학회 명의의 보도자료를 고용부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 기간제노동자 61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였더니 71.7%가 찬성했다”는 내용이다. 설문 문항은 “(…) 2년 근무 후 기간제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계속 근무할 수 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계약이 종료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기간제근로자로 2년 근무 후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최대 2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라고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문제는 현행 기간제법 규정에 따라 ‘2년이 지난 뒤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계약기간이 없는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아예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도자료가 한국노동경제학회 명의로 발표된 것도 논란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이 조사는 노동경제학회 차원이 아니라 고용부의 의뢰를 받아 이 학회 회장인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와 같은 대학 김주일 교수가 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교육대는 고용부 산하기관으로 고용부가 예산과 인사 결정권을 갖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에도 기간제 기간 연장 등을 포함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번과 유사한 설문결과를 내놓았다. 이 조사 역시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묻지 않았다. 최근 법무부 조사도 입길에 올랐다. 지난 3일 법무부는 사법시험 4년 존치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난 9월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를 통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사시 폐지’ 의견은 23.5%에 불과하고 ‘사시 존치’ 의견은 85.4%로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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