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왼쪽)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18일 오전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와 국회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국가체제 수호를 위한 구국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며, 문 의장은 “한나라당이 색깔론의 망령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찬 기자
“5·18 불소기한 의원이 검찰독립 말할 자격있나”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신경전이 6시간여 동안 팽팽하게 벌어졌다. 천 장관은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에 빠르고 높은 어조로 반박하는 등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다. 검사 출신인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언행은 국가의 안전을 위협해 결국 다수 국민의 인권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가 아니냐”고 묻자, 천 장관은 “그런 판단으로 검사를 했다면 법하고 한참 멀어졌다”고 핀잔을 줬다. 이후 김 의원의 항의로, 천 장관은 “흥분해서 결례를 했다”고 사과했다. 천 장관은 또 자신이 지난 1996년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제8조의 폐지를 주장한 것을 두고 한나라당이 공세를 펴자, 94년 5·18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가 다시 뒤집은 검찰의 모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은 천 장관이 언급한 5·18 사건 불기소 처분의 담당검사가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이었음을 지적하며, “한나라당이 검찰 독립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역공을 폈다. 장 의원도 이에 질세라 “이번 수사지휘권 발동은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검찰총장이 부당하다고 느낀 만큼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느냐”고 천 장관을 공격했다. 천 장관은 “말이 잘 안 나온다”며 “실제 그렇게 생각해서 묻는 것이냐”고 되묻자, 장 의원은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물러섰다. 천 장관은 “명백히 법에 따라 한 지휘를 직권남용죄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어디로 가겠느냐”고 거듭 반발했으나, 최연희 위원장의 중재로 무마됐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한나라당 법사위원 5명 가운데 김성조·주성영 의원이 출석하지 않아, 실제 ‘공격수’는 장윤석·김재경·주호영 의원 등 3명밖에 없었다. 박용현 기자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18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뒷모습)과 검찰 수사 지휘권 행사 문제를
“그동안 검찰도 환골탈태” 한나라-전장관 신경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8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공세가 이어졌지만 천 장관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상 천 장관의 완승에 가까웠다. “왜 하필 강정구 교수 사건인가?”=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은 “헌정 사상 최초의 수사지휘권을 왜 하필 강 교수 사건에 행사했느냐”고 따졌다. 천 장관은 우선 “과거에도 구두를 통한 장관의 수사지휘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최초의 서면에 의한 지휘라고 해야 맞다”고 반박했다. 천 장관은 이어 “올해 들어 9월까지 일반 형사사건의 구속률이 2.7%로 나타나는 등 검찰이 불구속 원칙을 확대하고 있지만, 공안사건에서만은 여전히 50%가 넘는 구속률을 보이고 있다”며 “공안사건에서도 검찰이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불구속 원칙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것은 국민 뜻과 상반되지 않느냐”고 묻자, 천 장관은 “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라며 “자유민주주의 헌법원리상 소수자도 다수에게 보장되는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수의 통념에 의해 소외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라며 “이는 공안사건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이나 국민들의 법감정 등을 이유로 엄벌하라고 주장하는 게 오히려 지극히 정치적인 외압”이라고 덧붙였다. 천 장관은 검찰 자체적으로도 강 교수에게 구속 사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는 “검찰이 보고한 문서를 읽었고, 그 내용 가운데 이미 구속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기초 짓는 자료가 들어 있었다”며 “보고 문서를 충실히 검토하고 그에 의존해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청법 제8조 폐지, 소신 바꿨나?”=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천 장관은 지난 1996년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제8조의 폐지를 주장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천 장관은 “과거 독재권력이 (서면이 아닌) 수사지휘를 통해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었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그런 신념을 가졌었다”며 “그때 이 조항의 폐지를 주장한 배경에는 1994년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쿠데타 세력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가, 이듬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재수사에 착수하는 등 정치권력에 휘둘리던 검찰의 모습이 있었다”고 말했다. 천 장관은 “9년이 지나 신념을 바꿨다고 할 수도 있으니 비판은 달게 받겠다”면서도, “검찰 독립성과 관련한 상황이 바뀐 데 따른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그 사이 검찰은 환골탈태라 할 만큼 많이 발전했다”며 “지금은 인권을 지키고자 한 지휘인 만큼 당시와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검찰의 독립성이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천 장관은 “검찰도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기 때문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이번 지휘권 발동도 권력자의 측근을 봐주라는 식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검찰 행태도 도마 위에=여당 의원들은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는 검사들이 오히려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성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5·18 사건을 지휘했던 검찰총장이 곧바로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등 고위 간부들이 사퇴하자마자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일이 많다”며 “일본에서는 후배 검사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검사들은 정계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최재천 의원은 “검찰이 진보적 인사는 쉽게 구속 결정을 내리는 반면, 쿠데타를 선동한 조갑제씨 등 보수적 인사들은 무혐의 처분하는 등 잣대가 불공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검찰 지휘부도 중요한 국면마다 평검사들에게 결정을 미루는 듯한 유약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천 장관은 이런 지적들에 대해 “검찰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강력하면서도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한다”며 “검찰이 인권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박용현 성연철 기자 piao@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