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표가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발언을 한 직후, 원희룡 상임중앙위원에게 발언할 것을 요청하자 원 위원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당밖 ’뉴라이트’쪽에서도 ‘보수화 우려’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발언 및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태도가 당이 표방하는 ‘중도보수’보다 ‘극우보수’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뉴라이트’(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당 밖의 ‘개혁보수’ 세력보다 더 ‘오른쪽’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우선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해,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는 20일 “강 교수의 발언은 새로운 자료 발굴 등 학문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로 보기 어렵다”며 “그러나 사상의 시장이나 학문의 시장에서 가늠되는 게 바람직하고, 사법적인 잣대로 가늠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라이트’ 쪽의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도 “국민 대다수가 그 발언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체제를 흔들 리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국민행동본부 등 강경 보수단체에서는 강 교수를 “대한민국에 원한을 품은 김정일 세력의 선동꾼”으로 규정하며, 체제에 위협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지난 18일 시국 기자회견에서 “강 교수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공연히 부정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온당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모인 ‘수요모임’도 “강 교수 발언은 단순한 학문적 발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만큼,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인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선 보수층 전체가 비난하고 나섰지만, 강 교수 발언에 대한 시각차가 반영된 듯 비판의 초점에서 미묘한 차이가 난다.
정부를 ‘친북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강경 보수단체들은 “현 정권이 공산주의자인 강 교수의 편을 들고 나서, 그의 구속을 막기 위해 검찰에 영향을 미치려는 반역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지휘권 발동을 ’색깔 공세’의 한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지휘권 발동 문제를 정권의 정체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뉴라이트 쪽에서는 검찰권 행사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라는 측면에 더 주목하고 있어, 정체성 공방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천 장관도 지휘권을 발동할 이유가 없고 한나라당도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대처할 필요가 없다”며 “양쪽 모두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양비론을 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의 태도가 ‘중도보수’를 벗어났다는 평가가 진보·보수 양쪽 학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보수 성향의 한 교수는 “강 교수와 천 장관이 한 일에는 반대하지만, 어떻게 대처할지를 두고서는 보수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차가 있다”며 “한나라당의 주장은 일반적인 보수의 입장보다는 (오른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분포는 냉전적 보수, 개혁적 보수, 진보의 3분 구도로 볼 수 있는데, 한나라당은 냉전적 보수를 대변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우리 사회의 다수를 대표하려면 조금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은 실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용현 황준범 성연철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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