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28일로 엿새 동안 이어가고 있다. 위에서부터 더불어민주당 전순옥·추미애·정청래·진선미·최규성·오제세·박혜자 의원,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lkr, 연합뉴스
테러방지법 저지 필리버스터
이들이 말하는 테러방지법
이들이 말하는 테러방지법
그들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기록경기’가 아니었다. 야당 의원들은 6일째 ‘마라톤 토론’을 벌이며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깨알같이 파헤치는 ‘백과사전식’ 정보를 널리 알렸다. 직권상정의 절차적 부당함을 지적했고, 왜 국가정보원에 막강한 정보수집 권한을 몰아줘선 안 되는지 설명하며 ‘오욕의 국정원 과거사’도 들춰냈다.
“국정원 공룡 탄생법”
국정원이 테러위험인물 지정땐
개인정보 수집·무제한 감청 넘어
조사·추적 권한까지 맘대로 행사 “지금은 비상사태 아니다” 경찰청장은 해외 순방 다니고
대통령 NSC 소집 얘기 못들어 “국정원 악행 되풀이될 것” 은수미·정청래 고문피해 ‘눈물’
전순옥 “24시간 감시당했다”
신경민 “대선개입 등 재현 우려” ■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공룡 탄생법” 야당 의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국정원이 초법적 권한을 쥐고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 수집·조사·추적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테러위험인물, 외국인 테러전투원, 테러 선동, 선전물 등의 정의가 모호해 무고한 국민에게 칼끝이 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익 더민주 의원은 “국정원이 테러위험인물이라고 지정하고 획득할 수 있는 ‘민감정보’엔 사상, 신념, 노조·정당의 가입·탈퇴 여부,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을 국정원에 건네주고 싶냐”고 반문하며 “테러방지법은 헌법적 가치와 관련이 있는 법이므로 두세달 만에 결정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면 다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민희 더민주 의원은 “테러방지법은 영장 없이도 금융계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개개인의 위치·금융거래·에스엔에스(SNS)·메신저 등이 사찰되며 늘 ‘빅브러더’가 쫓아다니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김현 더민주 의원은 “테러방지법 부칙으로 통신비밀보호법과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FIU법) 개정을 담은 것은 무제한 감청을 허용해 악용의 소지가 크고,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누구의 금융정보든 국정원이 획득할 수 있도록 한다”고 짚었다. 김경협 더민주 의원은 “대테러활동지침을 비롯해 이미 테러에 직접 대비할 수 있는 통합방위법·비상대비자원관리법, 사이버 안전과 관련한 정보통신기반보호법·전기통신사업법·통신비밀보호법상 비밀보호 예외 조항, 자금 추적과 관련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금융거래정보보고법, 협박목적 자금조달금지법 등이 있다”며 테러방지법이 지금 꼭 필요한 법이냐고 반문했다. 신경민 더민주 의원은 “아무 사람한테나 ‘김태희’라고 이름 붙인다고 김태희가 될 수는 없다. 현재의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방지하는 법안이 아니라 국정원 공룡 탄생법”이라고 말했다. ■ “비상사태 운운은 셀프 위기” 정의화 국회의장이 현재 상황을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데 대한 성토도 쏟아졌다. 김광진 더민주 의원은 “헌법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엔 계엄령 선포도 가능한데 지금이 그 정도의 상황이냐”고 반문했다. 강기정 더민주 의원은 “셀프 위기, 셀프 비상사태”라고 말했다. 김용익 더민주 의원은 “지금이 국가비상사태라는데 경찰청장은 해외 순방을 다니고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며 “진짜 국가비상사태라면 야당이 여기서 무제한 토론을 하겠나, 여당은 비상근무 해야 할 사람들인데 다 어디 갔나. 예비군들은 텔레비전 보지 말고 빨리 지금 부대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실제 일어난 일보다는 앞으로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강조한 점 등에서 유신 정국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낭독했던 국가비상사태 선언문과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의 논리 흐름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 “국정원의 ‘악행’ 반복 우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과거 국정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에서 고문 피해 등을 당한 의원들은 자신의 생생한 피해 사례를 소개하며 국가정보기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정청래 더민주 의원은 “저는 88년 9월에 안기부에 끌려가 이름 모를 모텔에서 팬티 바람에 3시간 동안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며 “이런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줘야 하겠냐”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더민주 의원은 “(오빠가 분신한 뒤) 중앙정보부 요원이 24시간 감시하고 있어 동네 가게에 가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다”며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정신적 테러였다”고 절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권한을 강화시키면 안 되는 수만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1992년 안기부에 고문을 당하고 징역 6년형을 살며 고문후유증까지 얻은 은수미 의원은 24일 토론에서 인혁당 사건 등 과거 국정원이 주도했다 후에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난 30여건의 공안 사건을 소개했다. 은 의원은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사람은 바뀔지 모르지만, 국정원도 이름을 바꿔왔지만, 국정원의 인권침해는 아이엔지(ing·진행형)”라고 비판했다. 신경민 의원은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의 댓글 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무단 유출 및 공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의혹, 서울시 공무원(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 휴대전화 해킹 사건과 그 담당 실무자인 ‘임 과장’ 사망 의혹 사건 등을 언급하며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인권의식이 부족한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 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여러 차례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은폐 사실을 폭로했다가 모해위증 혐의로 재판 중인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이승준 기자 edigna@hani.co.kr
개인정보 수집·무제한 감청 넘어
조사·추적 권한까지 맘대로 행사 “지금은 비상사태 아니다” 경찰청장은 해외 순방 다니고
대통령 NSC 소집 얘기 못들어 “국정원 악행 되풀이될 것” 은수미·정청래 고문피해 ‘눈물’
전순옥 “24시간 감시당했다”
신경민 “대선개입 등 재현 우려” ■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공룡 탄생법” 야당 의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국정원이 초법적 권한을 쥐고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 수집·조사·추적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테러위험인물, 외국인 테러전투원, 테러 선동, 선전물 등의 정의가 모호해 무고한 국민에게 칼끝이 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익 더민주 의원은 “국정원이 테러위험인물이라고 지정하고 획득할 수 있는 ‘민감정보’엔 사상, 신념, 노조·정당의 가입·탈퇴 여부,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을 국정원에 건네주고 싶냐”고 반문하며 “테러방지법은 헌법적 가치와 관련이 있는 법이므로 두세달 만에 결정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면 다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민희 더민주 의원은 “테러방지법은 영장 없이도 금융계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개개인의 위치·금융거래·에스엔에스(SNS)·메신저 등이 사찰되며 늘 ‘빅브러더’가 쫓아다니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김현 더민주 의원은 “테러방지법 부칙으로 통신비밀보호법과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FIU법) 개정을 담은 것은 무제한 감청을 허용해 악용의 소지가 크고,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누구의 금융정보든 국정원이 획득할 수 있도록 한다”고 짚었다. 김경협 더민주 의원은 “대테러활동지침을 비롯해 이미 테러에 직접 대비할 수 있는 통합방위법·비상대비자원관리법, 사이버 안전과 관련한 정보통신기반보호법·전기통신사업법·통신비밀보호법상 비밀보호 예외 조항, 자금 추적과 관련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금융거래정보보고법, 협박목적 자금조달금지법 등이 있다”며 테러방지법이 지금 꼭 필요한 법이냐고 반문했다. 신경민 더민주 의원은 “아무 사람한테나 ‘김태희’라고 이름 붙인다고 김태희가 될 수는 없다. 현재의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방지하는 법안이 아니라 국정원 공룡 탄생법”이라고 말했다. ■ “비상사태 운운은 셀프 위기” 정의화 국회의장이 현재 상황을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데 대한 성토도 쏟아졌다. 김광진 더민주 의원은 “헌법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엔 계엄령 선포도 가능한데 지금이 그 정도의 상황이냐”고 반문했다. 강기정 더민주 의원은 “셀프 위기, 셀프 비상사태”라고 말했다. 김용익 더민주 의원은 “지금이 국가비상사태라는데 경찰청장은 해외 순방을 다니고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며 “진짜 국가비상사태라면 야당이 여기서 무제한 토론을 하겠나, 여당은 비상근무 해야 할 사람들인데 다 어디 갔나. 예비군들은 텔레비전 보지 말고 빨리 지금 부대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실제 일어난 일보다는 앞으로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강조한 점 등에서 유신 정국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낭독했던 국가비상사태 선언문과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의 논리 흐름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 “국정원의 ‘악행’ 반복 우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과거 국정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에서 고문 피해 등을 당한 의원들은 자신의 생생한 피해 사례를 소개하며 국가정보기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정청래 더민주 의원은 “저는 88년 9월에 안기부에 끌려가 이름 모를 모텔에서 팬티 바람에 3시간 동안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며 “이런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줘야 하겠냐”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더민주 의원은 “(오빠가 분신한 뒤) 중앙정보부 요원이 24시간 감시하고 있어 동네 가게에 가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다”며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정신적 테러였다”고 절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권한을 강화시키면 안 되는 수만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1992년 안기부에 고문을 당하고 징역 6년형을 살며 고문후유증까지 얻은 은수미 의원은 24일 토론에서 인혁당 사건 등 과거 국정원이 주도했다 후에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난 30여건의 공안 사건을 소개했다. 은 의원은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사람은 바뀔지 모르지만, 국정원도 이름을 바꿔왔지만, 국정원의 인권침해는 아이엔지(ing·진행형)”라고 비판했다. 신경민 의원은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의 댓글 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무단 유출 및 공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의혹, 서울시 공무원(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 휴대전화 해킹 사건과 그 담당 실무자인 ‘임 과장’ 사망 의혹 사건 등을 언급하며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인권의식이 부족한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 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여러 차례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은폐 사실을 폭로했다가 모해위증 혐의로 재판 중인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이승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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