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1~2002년 무렵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이인제 의원의 ‘마크맨’이었다. 마크맨이란 유력 정치인을 졸졸 따라다니며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숨소리조차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는 게 주된 업무인 기자를 가리킨다. 그러다보니 이인제 의원이 자주 하는 말은 달달 외울 정도가 됐다. 가장 많이 들었던 대목은 1997년 대선 때 얘기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대략 이렇다. “지난 대선에서 현장을 뛰어다녔습니다. 잠바차림에 애국심이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워 생쌀을 씹으면서 뛰었습니다. 국민들은 저에게 대통령 자리는 주지 않으셨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정권을 출범시켰습니다.”
이인제 후보의 500만표와 대선 승부 갈린 39만표
이 의원이 이런 말을 하면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는데, 나는 번번이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준 보수 세력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지금은 잊혀진 낱말이 됐지만 당시는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말이 유행했더랬다. 1997년 이회창-김대중 대결에서 당연히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믿었던 한나라당은 단 39만 표로 다 잡았던 정권을 한순간에 놓치고 말았다.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뒤 맨몸으로 500만 표를 얻은 이인제 후보만 아니었다면 정권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보수 세력은 ‘이인제 학습’을 두고두고 되새김질했다. 중요한 건 국회의원 등 상층부만이 아니라 일반 지지층도 철저하게 ‘심화 학습’을 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죽어도 탈당을 해서는 안 된다’를 배웠다면 지지층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탈당한 사람은 찍지 않는다’를 체득한 것이다.
2000년 총선 때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공천에서 중진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조순 김윤환 이기택 이수성 김광일 신상우 등 쟁쟁한 정치인들이 탈당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다. 처음에는 이들이 영남에서 더 큰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민주국민당의 주역들 대부분이 영남이 키워낸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민주국민당은 지역구 1명, 비례대표 1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한나라당 유권자들이 ‘분열은 안 된다’는 걸 단단히 보여준 것이다.
박근혜의 미래연합도 외면당해
2002년 지방선거 때 분열의 주인공은 박근혜였다.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을 ‘제왕적 총재’라고 비판하면서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그런데 성적은 형편없었다. 광역 기초 단체장, 광역 기초 의원을 단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비례대표 광역의원 2명만 당선시켰다. 보수층은 아무리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 할지라도 당을 떠나면 철저히 외면했던 것이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신화는 당과 박근혜가 혼연일체가 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 경험 때문인지, 박근혜는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라고 절규할망정 당을 떠나지는 않았다.
2008년 탄생한 ‘친박연대’라는 정당은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였다. 보기에는 분열이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아니었다. 그 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숭앙의 대상이 한나라당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연대라는 이름 자체가 분열을 걱정하는 지지자들의 불안을 달래주는 배려가 있었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공천 칼날을 맘껏 휘두를 수 있는 건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공천 탈락자들이 탈당한다 하더라도 새누리당 자장권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 새누리당 지지층은 다시 한번 단결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야당이 새누리당이 공천 후유증으로 분열될 걸로 기대하는 건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걸려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거나 진배없다. 설사 상층부가 일부 쪼개지더라도 잘 훈련된 지지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표의 분산을 막을 것이다. 게다가 무소속으로라도 나오려는 공천 탈락 의원들은 대부분 영남이다. 수도권은 기껏해야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게다가 정의당과의 연대마저 물건너간 야권 형편에 비하면 새누리당의 분란은 ‘찻잔 속의 태풍’이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기보를 학습한 것과는 별도로 스스로 128만 번 대국을 통해 실수를 줄여나가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새누리당 지지층에게 이인제 학습효과는 애초 입력된 기보와 같다. 그리고 이후 수십 번 수백 번의 크고 작은 선거를 치르며 지지층은 진화했다. 특히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한 재보선에서는 ‘40 대 0’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승리의 비결과 자신감을 터득해갔다. 그런 점에서 이인제 의원은 단기적으로는 야당의 정권교체에 기여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여당의 체질을 강화하고 그 지지층들에게 단결의 위력을 체득하게 해 준 훌륭한 교사다. 그가 지금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을 하고 있는 건 어찌보면 응당 받아야 할 대우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오른쪽)와 안철수 의원이 지난 2015년 12월 30일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의장 4주기 추도미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야당의 분열은 진단이 어려운 속병
야당의 분열이 여당에 비해 결코 적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여당의 분열이 ‘드러난 분열’이라면 야당의 분열은 ‘감춰진 분열’이었다. 여당의 분열은 눈에 확 들어오는 외상이었다면, 야당의 분열은 진단이 어려운 속병이었다. 원인을 알기 어려우니 내놓는 처방도 제 각각이었고 계속 병만 키웠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은 지역구도를 탈피해 전국정당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명분이 있었다. 당시 구 민주당 세력이 발목을 잡았던 정황에 비춰보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지지층이 쪼개졌다는 점에서는 분명 분열이었다. 그런데 그 분열이 탄핵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분열의 상처가 은폐됐다. 총선 승리 뒤라도 스스로의 약점을 냉정하게 짚어보고 보완책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당시는 다들 승리에 취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정치인도 지지층도 이때 뿌려진 분열의 씨앗이 이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지 못한 채 넘어갔다. 교훈을 얻지 못했기에 그 뒤에도 야당은 번번이 당을 깨고 새 당을 만들었다. 2007년 민주당 계보 정당들의 출현과 소멸은 아찔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현란한 정치공학이 난무하는 사이에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지층까지 서로가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20012년 대선도 ‘은폐된 분열’이었다. 겉보기에는 분명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후보를 사퇴할 때 보여준, 그렁그렁 맺힌 ‘안철수의 눈물’은 단일화 효과를 가로 막았다.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두 세력 사이에 쫙 금가는 소리가 들렸다. 패배 뒤에도 누구의 책임인지가 선명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난했고, 지지층 사이에 감정의 앙금은 더 깊이 쌓여갔다.
그러다 드디어 ‘진짜 분열’을 맞았다. 국민의당 출현이다. 나는 안철수 대표가 실질적 주인인 국민의당을 보며 자꾸만 1997년 이인제 후보가 이끌던 국민신당이 떠오른다. 국민의당과 국민신당, 이름이 비슷해서만은 아니다. 세력이 비등하고 구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인제 후보가 대선에서 얻은 19.2%만큼은 아니지만 안철수 대표 또한 전국적으로 10% 안팎의 표를 얻고 있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부산(30%) 경남(31%)에서 높은 득표를 했다. 안철수 대표는 호남에서 절대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국민의당 위력은 최소한 새누리당 공천 탈락 의원들이 만들 수도 있는 ‘비박 연대’와는 파괴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박 연대’는 주로 영남지역에 근거할 게 분명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대결은 전국적이다.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은 대부분 지역에서 ‘1여다야’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이대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다같이 망한다. 그런데도 두 야당이 연대할 가능성은 까마득히 멀어졌다.
여당 지지층은 반복된 투표 전략 준비
이제는 야권 지지자들의 선택밖에 남은 게 없어 보인다. 야권 지지자들이 과거 여권 지지자들이 보여준 ‘전략적 투표’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여당 지지층은 이번에도 반복된 투표 전략을 구사할 준비가 돼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각 당의 후보공천에 대해 야당 지지층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 지지층은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새누리당 지지층은 ‘만족’ 응답이 60.3%로, ‘불만족’ 응답 25.9%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더민주나 국민의당 지지층에서는 불만족 응답이 월등히 높은 것과 비교된다.
과연 야당 지지층은 이번 총선에서 야권 정치인들이 못해낸 ‘단결’을 해낼 수 있을까? 과거 ‘은폐된 분열’을 통해 얻은 교훈을 이번의 ‘선명한 분열’에서 되살릴 수 있을까? 총선 승패의 결론은 전적으로 거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